[공감통신] 순간과 연결 –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늘 이런 건 아니죠?” 올해 초봄, 인권활동가대회에서 만난 한 활동가가 그랬다. “활동가대회에서 볼 때마다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요.” 그랬었나? 곰곰 생각해보니 통상 활동가대회가 있는 2~3월에는 국회가 열려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무슨 법인가를 두고 씨름하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테러방지법이 있었고 올해는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안이 문제였다. 화가 나게 되는 건, 늘 지는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희망을 좀먹는 절망감과도 싸워야 했다. 어떤 목소리로 외쳐도 세상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의 분노는 공적 정의감의 발로만은 아니었다. 자존감이 매우 무너진 상태여서 툭 치면 그야말로 울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국회에서 입법 대응을 하다 보면 노골적인 권력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정부와 사회단체, 남성과 여성, 전문가와 평활동가 간에 격차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동원할 수 있는 물적, 인적 자원, 심지어 시간에서도 차이가 크다. 개인적인 모욕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 관계에서 격차는 호소력과 발언력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나는 오랫동안 어린 사회단체 여성 평활동가였다. 지금은 늙어가는 아줌마 사회단체 평활동가이다. 매년 2월이면 내가 선택한 길의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낮은지 여실히 느끼면서, “내가 이러려고 활동가를 했나” 울화를 벼리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내 ‘활동력’의 대부분을 울화에서 충당하는지도 모른다. 울화는 경험을 재현하는 것이다. 신체에 새겨져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경찰에게 들렸을 때 무력했던 손과 발의 기억이 있다. 모욕감에 얼굴이 붉어진 것이 느껴졌던 때가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때 부들부들 떨리는 그이의 고통을 전달받은 적이 있다. 그런 경험과 기억들이 나이테처럼 내 신체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다.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울화를 느낀 순간은 스무 살 때였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통학을 시작하였는데, 성추행이 만연했다. 충격과 공포였다. 세상이 교과서와 다르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이 경험을 말할 수 없는 현실이야말로 공포였다. 끔찍했던 입시를 통과하면 나라에서 세상을 누릴 자유와 온전한 한 사람 몫의 시민권을 줄 것이라는 암시 속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견뎠다. 그러나 마침내 만난 세계에서 나는 폭력을 경험했고, 이것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지나가는 이야깃거리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 모욕적인 경험을 명명할 단어조차 알지 못했다(‘성폭력’이라는 말을 나중에 알았다). 세상에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크게 “하지 말라” 말하지 못한 나의 소심함만을 탓하며 전전긍긍하다 어느 순간, 내가 이등 국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등 국민의 경험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었고,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었으며, 닥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지위였다. 경험과 문제와 분노를 말하는 것은 과민하거나 과도한 것으로 간주됐다. 당신의 순간은 언제였는가. 이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아마도 언제쯤엔가 자기가 이등 국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가난해서, 여성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성소수자라서, 이주민이라서, 나이가 적어서, 비혼이라서, 혹은 아줌마여서. 주류와 다른 쪽에 서 있음을 여실히 느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체벌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순간, 회사에 저항하는 순간, 채식주의를 결심한 순간, 정치적으로 소수인 입장을 선택한 순간.
그때 우리는 무엇을 결심했을까? 아마도 어떤 이들은 더 노력해서 주류에 편입하고 싶었을 것이다. 편향적이라거나 부차적이라거나 과민하다는 지적을 피해서 더 주류적으로, 때로는 정치적 입장을 바꾸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경우에는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여자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무척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주받은 호기심과 환대받지 못한 질문들'(책 「페미니스트 모먼트」에 나온 표현이다)이 품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여자로 취급되는 것일까? 왜 여자는 그렇게 취급되는 것일까?
활동가로서 이십 년은 어찌 보면 이등 국민성에 대한 의문과의 실존적 싸움이었다. 사람 사이 등급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체해야 할 것인지. 무척 좋아했던 말 중에 “강한 객관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내게는 주류의 객관과 다른 관점이 있다. 상처받은 시각은 주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것이 강한 진실이다. 억압받은 가슴에 울화가 치솟는 것은 당연하다. 울화는 세상과 불화하게 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불화의 길에 나설 때, 그것은 이 세상 진실의 참된 부분을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을 바꾸기도 할 것이다. 괴롭지만 기꺼이 불화하자.
하지만 울화만으로는 부족하다. 혐오의 시대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트럼프의 당선을 보면서 그것이 머지않은 우리 미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줄어드는 일자리 때문에 이주민이 미워졌는가. 생각할 때이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가.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억압적인 병영 생활과 금수저 열외자에 대한 박탈감이 재입대 악몽으로 살아난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병역거부자와 여성과 장애인을 미워하고 싶은가. 이 억압을 끌고 가는 진짜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울화’들’이 연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자신만의 진실에 그친다. 진실의 일부일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문제는 다면적이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다. 나는 여성이지만, 비장애인으로, 이성애자로, 서울사람으로, 비채식주의로, 빚 없는 중산층 집안 출신으로, 수많은 주류의 혜택 속에 있었다. 억압받은 자신을 위한 해방 운동은 옳다. 그러나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분노가 해석되지 않을때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헌정사상 처음 사건을 만든 우리의 힘을 느껴 보자. 그리고 조금 더 내디뎌 보자. 정의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이 넘칠 때, 우리에게 연결이 필요하다. 나의 정의가 다른 이의 정의도 될 수 있도록 연결해 보자. 더 큰 역사를 만들어 보자. 내년 2월에 아마도 나는 또다시 국회에 화를 내겠지만 나의 등급 때문은 아니기를. 혐오의 시대에 새 정부를 그런 전망으로 맞으면 좋겠다.
글_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