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포커스] 불법적인 해외입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1.
돌아오는 해외입양인들, 그들이 찾는 것은 ‘뿌리’와 ‘진실’
해외입양인도
재외동포와 똑같이 한국에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도록 F-4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한국을 찾는 해외입양인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국을
찾는 해외입양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 즉 ‘뿌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의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더
나아가 고국은 왜 어린 자신들을 너무도 쉽게 내팽개쳤는지, 혹시 입양과정에 불법적 요소는 없었는지 그 ‘진실’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해외입양에 관여하였던 자들 중 불법행위를 한 자들과 불법행위를 묵인·방조하거나 심지어 권장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영역에서도 그들은 큰 장벽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입증의 문제’와 ‘시효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입증의 문제’와 ‘시효제도’와 관련하여 과거 유사한 문제에 봉착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진행형인 과거사 청산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법률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출발선에서, 과거사 청산에 관한 우리의 기존 입법례, 과거사사건의 소송상 쟁점에
관하여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
입증의 문제: 해결의 시작과 끝은 ‘진실’이다.
과거사사건들은
공통적으로 수십 년 전의 사건이고 오랫동안 역사의 뒷길에 묻혀 있었기에 현시점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피해자
개인에게 통상의 민사소송에서 필요한 수준의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현행
「입양특례법」 제36조는 신청에 따른 입양정보의 공개를 규정하고 있으나, 공개대상정보의 범위가 좁고 그마저도 당시의 기록이나 자료보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즉 일차적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 또는 배·보상 청구 여부 등을 결정하려면, 각 입양인이 어떤 경로와 절차를
거쳐 해외입양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가 지켜졌는지, 그 과정에 개입한 자가 누구인지,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였는지 등의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져야 하나, 위 정보공개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결국,
입양절차 전반에 관한 기본적 사실관계의 규명을 위해서는 국가의 선의에 기초한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다른 과거사사건들의
경우처럼 입법을 통하여 독립된 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위원회에 강력한 조사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해양입양과 관련된 진상을 규명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법원은
과거사사건에서, 설령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진실규명 결정이나 조사결과가 유력한 증거가 됨은 별론으로 하고
거기에 사실상 또는 법률상 추정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특별한 증명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과거사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내용일 수 있지만, 위원회의 조사결과가 유력한 증거가 된다는 점과 과거사사건의 특성상 그 입증부담을 완화·경감시킬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입법을 통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최소한의 유력한 증거마저 없어,
입증에 심각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소멸시효의 문제
우선
해외입양 과정에서 서류 위·변조 등 직접적인 불법행위를 행한 개인 또는 입양기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피고가
국가가 아니면 소멸시효의 예외를 인정한 판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가를 피고로 삼지 않는 이상, 개인을 상대로 하여서는
소멸시효의 벽을 넘기가 무척 어려워 보인다.
물론
피고를 국가로 삼더라도 시효는 여전히 문제다. 그래서 과거사사건 소송에서는 소멸시효 문제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주장들이 개진되었으며, 이러한
주장들은 해외입양사건 소송에서도 똑같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국가가 불법적인 해외입양의 실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은폐하거나 진상규명에 나아가지 아니한 부작위가 그 자체로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한 소극적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러한 위법상태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청구원인을 이렇게 구성하면 국가가 불법적인 해외입양에 적극적으로
가공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아도 되고, 이러한 위법상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상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구체적 법령에 따른 국가의 작위의무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추상적 기본권보호의무의 위반만으로 국가의 직접적·구체적 배상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상, 이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둘째,
입양인들이 해외입양 절차에 존재하는 불법성을 인지한 시점부터 비로소 소멸시효가 진행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원은 권리행사의 ‘사실상
장애’만으로는 시효의 진행을 방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고, 기존 판례들에 비추어 보면 입양인들이 어린 나이로 인해 또는
제한된 정보 접근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없었다는 사정은 단지 권리행사의 ‘사실상 장애’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입양인들이 불법적인 해외입양으로 인하여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당하였으며, 이러한 손해는 현재까지도 계속 발생하고 있으므로 국가의 불법행위는
이른바 ‘계속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입양인들에 대한 불법행위는 입양절차가 마무리되면서 종료되었고 그 이후에는 이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 상태가 계속되는 것일 뿐, 불법행위 자체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이러한 주장이 인용될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최종길 교수 사건(서울고법 2006.2.14. 선고 2005나27906 판결)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같은 이유로
배척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시효완성의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소멸시효를 이유로 한 항변권의 행사도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①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②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③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채권자가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④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받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대법원이
과거사사건과 관련하여 위 ②유형 및 ③유형을 인정한 사안들이 있으며, 특히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한 사안에서는 앞서 본 2012다202819 판결 이후 ②유형보다는 ③유형을 주로 적용하고 있다.
즉,
국가가 과거사정리법의 제정을 통해 역사적 사실관계를 다시 규명하고 피해자와 유족에 대하여 피해회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였다면, 거기에는
구체적인 소송사건에서 새삼 소멸시효를 주장함으로써 배상을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사까지 내포되어 있으므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한편
②유형을 인정한 판결들은 위 판결 이전에 선고된 것들이 많고, 특히 2010년 이후부터는 ②유형을 인정함에 있어 대법원이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현재로서는 우리 법원이 과거사사건과 관련하여서 ③유형을 인정할 가능성이 비교적 가장 커보인다. 이는 해외입양
사건의 소송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대법원이 과거사사건 소송에서 ③유형을 적용함에서는, 과거사정리법의 제정과 그에 따라 설립된 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전제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입법을 통한 진실규명과 배·보상 문제의 일괄 해결
이상과
같이, 입법을 통한 진실규명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이후의 손해배상소송에서 ‘입증의 문제’와 ‘시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입법을 통한 진실규명 + 소송을 통한 피해회복”이라는 해결방식이 가장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는 진실규명
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를 제기하여 입증에 성공한 사람만 배상받는 결과가 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민사재판을
통할 경우 희생자 유족들에게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됨은 물론이고 배상의 통일성과 균형을 담보해낼 수도 없는 등 또 다른 불합리와 불평등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사정리법은 정부가 피해자와
유가족의 피해 및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지만, 법 제정 후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마칠 때까지도 정부와
국회는 배·보상을 위한 추가 입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결국 피해자들은 어쩔 수 없이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들어 소를 제기하기에 이른
전례가 있다.
결론적으로,
애초에 진실규명과 배·보상 문제가 하나의 특별법을 통하여 일괄적으로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해결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글_박기범
변호사(공감 펠로우)
편집_허자인(공감 23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