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의 변]국가와 지자체가 염전노예 책임져야 한다 – 염형국 변호사
2014년
1월, 수많은 장애인과 노숙인들이 전남 신의도에 팔려가 염전 밭에서 노예로 부려진 염전노예 사건이 사회에 알려져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최근에 일어난 염전노예 사건은 정말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경찰은 신안군 일대 염전뿐 아니라 전국의 염전과 양식장 등에 대한 일제 점검을 하였고, 전라남도에서는 사회적 약자 보호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가혹 행위와 학대가 밝혀진 극히 일부의 염전주들이 구속되었고, 염전노예 피해자들은 일부 임금을 보전받았다. 장애인 인권단체들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이제는 이러한 충격적인 일들이 한국사회에서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많은
염전주들은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3년 치 임금을 지급하면 형사처벌이 면제되었고, 형사입건된 염전주들도 검찰과 법원에서 ‘(염전노예가) 지역의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줄줄이 풀려났다. 맞지 않는 노숙인시설에 보내진 일부 피해자들은 시설생활을 견디다 못해 탈출하여 염전으로 되돌아갔다.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도,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지원도 없었다. 결국, 염전노예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바뀐 것은 실은 없었다. 피해
장애인들의 인권은 여전히 삭제된 상태로 머물러 있다.
섬에 있던
모든 주민도, 면사무소에서도, 파출소에서도, 지방노동사무소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노예를 부리는 관행은 철저하게
조장되거나, 묵인되고, 방조 되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음에도 국가와 지자체는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일부 경찰에 대한 서면경고와 인사이동이 따르기는 했지만 누구에게도 법적인 책임은 추궁되지
않았다.
헌법
제10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의 인권보장의무는 인권 존중의 의무, 인권 보호의 의무, 인권 실현의 의무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인권 존중의 의무는 국가가 직접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 인권을 누리는 데 방해요소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권 보호의
의무는 국가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방지하고 조치를 취할 의무이다. 인권 실현의 의무는 국가가 인권의 충분한
실현과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염전에서 벌어지는 학대와 노동력 착취를 묵인하지 않았더라면,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들을 인신매매하는 직업소개소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더라면, 염전노예 장애인들에게 표를 팔지 않는 선착장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사회복지 담당자가 염전노예 현장에 대해
고발조치를 하였더라면, 그 이전에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과 노숙자들에 대한 충분한 복지조치가 이루어졌더라면 염전노예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염전노예 사건은 국가와 지자체의 철저한 묵인과 방조, 무책임으로 인해 발생하였고, 염전노예 사건 발생 이전과 이후에 변화된 상황은 사실상 없다.
2007년에도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이 발생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고, 2014년에도 판박이처럼 똑같은 사건이 발생했고, 머지않아 또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으려면 국가와 지자체가 인권존중의무, 인권보호의무, 인권실현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단지 몇몇 책임질 공직자를 밝혀내고, 몇 푼 배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
국가의 인권보장의무는 구체적으로 개개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는 작업이다.
우리는
호소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염전노예사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글_ 염형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