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의 변] 도가니 열풍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광주 인화학교 내 성폭행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가 우리 사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학교 내에서, 시설 내에서 집단적으로, 상습적으로 벌어진 성폭력에 대해 끝내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소설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은 그 상황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찼다”고 표현하고 있다.
2005년에 불거진 사건에 대해 경찰은 전면적인 재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하였고, 광주교육청은 특별감사반을 구성하여 인화학교에 대한 감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하였다.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에 이처럼 철저한 수사와 감사가 진행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치권과 수사기관 그리고 관할교육청의 때늦은 호들갑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2005년 당시 13~14살된 청각장애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가했던 인화학교 교사들 2명에게 1심과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법원은 성추행 당시 학생들이 수화로 싫다고 표현했고, 몸을 비틀어 저항한다는 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성폭력특별법상 ‘항거불능’ 상태는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무죄라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저항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으면 무죄이고, 그런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어야 유죄라는 법원의 판단은 과연 우리의 법감정에 부합하는 것인가? 이러한 법원의 판단 근거가 된 ‘항거불능’ 문구는 성폭력특별법 6조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은 형법 제297호(강간) 또는 제298호(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에 근거하고 있다.
원래 이 규정이 도입된 입법취지는 일반적인 강간죄의 경우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장애인들은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장애 자체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서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장애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법원에서 ‘항거불능’ 상태를 좁게 해석하면서 원래 입법 취지와 상반되게 이 규정을 근거로 무죄판결을 내림으로써 오히려 성폭력특별법 조항이 장애인들에 대한 성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문제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부족, 장애인 성폭력 상황에 대한 이해의 결여에 기인하는 것이다. 몸을 비틀어 저항한다는 의사를 표시한다거나 혼자서 대중교통 이용할 수 있고 먹고 씻는 등 일상생활이 가능하면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심신상실자에게만 항거불능을 인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법해석이라기보다는 궤변에 가깝다.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 최영희 의원 등이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여 지난해 10월 제출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은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학생에 대한 치유 및 보상, 법인 정상화 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폭력 제보자는 해고됐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은 가해자는 아직 학교에서 버젓이 일하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관리․감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들만의 성역을 이룩한 사회복지법인의 극단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업은 막대한 공적 재원이 투여되고 있는 공적 영역이다.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에서의 비리와 인권침해 문제로 인해 대다수의 선량하고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의 운영자와 종사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적 통제장치가 작동되어야 하고, 시설과 회계의 투명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 한다.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입에서 “10년 이상 외출해본 적이 없다.”, “바로 아래에 있는 슈퍼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진술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차제에 일부에서 벌어지는 사회복지법인에서의 비리와 인권침해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서비스 이용자의 개별적인 상황과 욕구를 충분히 파악하여 개별적인 상황과 욕구에 부합된 개별화된 복지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즉, 복지시설에서 거주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에 거주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이들을 위해서는 그에 맞는 주거지원 및 활동보조서비스, 취업지원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복지시설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로 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또한 장애인 인권의 사각지대를 없애 끔찍하고 시대착오적인 장애인 인권침해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역에 장애인 권리옹호를 수행하기 위한 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영화 ‘도가니’ 열풍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대한 분노에 크게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도가니’ 열풍이 인화학교 자체에 대한 분노로 끝나지 말고 사회 곳곳에서 차별받고 인권침해 받고 있는 장애인들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 사회에는 들리지 않게 울부짖고 있는 장애인들이 아직 너무 많다. 슬프다.
글 _ 염형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