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의 변] 세월호 참사, ‘2주기’가 아니다. 계속되고 있는 참사 3년째, 그 잔혹사를 기억하며
파편화된 우리의
기억
딱 1분만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4.16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어떤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가. 기억해야 하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가. 피로감에 지쳐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 피로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가.
유병언과 구원파 사냥 쇼쇼쇼
세월호 침몰로 수백 명이 수장당하는 상황에서 선원들은 가장
먼저 탈출했고, 해경은 제대로 구조하지 않았고, 정부는 손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정부와 다수 언론이 집중한 것은 유병언과 구원파에
대한 사냥쇼였다. 국민적 분노 표출의 대상이 선원들, 해경, 정부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종편 등 다수 언론의 준비된 막장 선정성, 주류
기독계와 다수 국민의 이단/사이비종교에 대한 혐오 등에 기댄 권력의 생존전력은 주효했다.
그러나 선원들의 잘못이 유병언 일가 털기, 구원파 죽이기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었다면, 국가공무원인 해경의 잘못은 대통령 일가 털기, 정부여당 실세세력 죽이기로 이어졌어야했고,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는
이건희 일가 털기, 세습재벌세력 죽이기로 이어졌어야 했다. 일선 해경의 작은 권력에서 청와대 대통령의 거대 권력에 이르기까지 그 책임을 회피하고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광기의 행진곡 속에 책임져야 하는 권력은 가장 먼저 참사에서 탈출했다.
대통령의 기억 :
대통령의 심기와 의중이 중심이 된 참사 대응
2014년 4월 17일, 진도체육관을 찾은 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물러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역설적으로 모든 공무원들의 책임지지
않기 경쟁이 시작됐다. 19일 밤, 피해가족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하는 정부를 접하며 피해가족들은 지휘체계 확립, 구조인원 증원이라는 소박한
요구사항을 가지고 청와대행을 결정했다. 경찰은 버스를 타러가는 가족들을 “야간에 위험해서”라는 이유로 가로막았다. 해수부장관은 허겁지겁 달려와
트럭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고 잠시 후에는 국무총리가 진도체육관에 나타났다. 청와대만은 가지 말라고. 모든 정부 관계자가 이야기하는 ‘최선’의
본질은 그런 것이었다.
5월 16일, 피해가족들은 진상규명에 관한 입장을 정리해
발표했다. 피해자 의견 반영, 진상규명의 범위와 기간, 대상과 방식, 정보공개, 독립진상조사기구, 기존 진상조사결과 반영, 책임자 처벌 등,
재발방지시스템 구축 등 반드시 필요한, 그렇지만 너무도 당연하고 합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날 대통령과의 면담이 있었고, 피해가족들은 그
면담의 내용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했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녹취록을 공개하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피해가족들은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순세력이 되어버렸다.
가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국회의 추억
수백만 명의 특별법 서명운동, 피해가족들의 국회
농성이 이어졌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100명 중 몇 명을 죽여야 ‘최선’을 다한 것인가. 모두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가족들은
계속 질문을 던지며 나름의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귀 기울이는 국회는 없었고, 그 질문에 답하려는 국회는 더더욱 없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2014년 8월 피해가족들은 모르는 사이에 여야의 특별법 타협이
이루어진다. 가족총회가 열렸다. 절대다수가 여야의 타협안을 거부했다. 한 가족이 말했다. “너무 힘들지만 죽은 아이를 생각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특별법 제정과정에서 정부여당은 단지 가족들의 목소리를 소극적으로 듣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야당에 위임하라.”며 가족들을
몰아붙였다.
정부가 앞장 선
피해자 죽이기 : 특별법 시행령, 시행규칙 논란 등
법률은 국회의 몫이라서 세월호 특별법 관련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무 것도 없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특별법 통과 후 특별법 시행령, 시행규칙으로 법률 무력화에 나섰다.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해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 트라우마 치료 등 관련 여야 합의를 왜곡시키는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여당조차도 이것은 너무 심하다며
특별법 시행령, 시행규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수정 및 관련 국회법 개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순간에 대통령의 한마디로 여야/국민적
합의정신의 존중, 법률적 사고, 상식적 접근은 ‘배신의 정치’가 되어버렸고 여당의 태도는 돌변했다.
여당은 ‘세금도둑’ 운운하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월호
특조위 죽이기에 나섰고, 정부는 전례 없는 뻥튀기 보상계획 발표로 피해가족들에 대한 ‘시체장사’ 낙인찍기에 나섰다. 이처럼 정부, 국회가 나서고
대통령까지 앞장서서 전방위적으로 피해자 죽이기에 나선 적이 있었던가.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화되는 과정이 아니라 권력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자
죽이기를 주도하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책임지는 국가는
없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은 없다. 법치주의는 죽었다.
2015년 11월 28일, 세월호 부실구조를 이유로 해경
123정장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유죄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었다. 비록 지극히 제한된 정보와 측면에 관한 것이었지만 수백 명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법적 책임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정부, 여당 그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사과, 입장 표명이 없었다.
국가가 죽였다. 그러나 국가는 침묵했다. 책임지는 국가는 없었다.
2015년 11월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
방안』이라는 해수부 문건이 공개됐다. 조사대상인 해수부가 조사위원회를 좌지우지하려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고, 해수부장관과 여당추천 특조위
위원들의 부적절한 만남, 위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까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문건의 해수부 관련성도 어느 정도 알려지고
형사고발도 이루어졌지만 주류 언론은 침묵했고, 검찰을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이렇게 국가가 나서 이중으로 법치주의를 죽이고
있다.
2014년 9월 30일 여야 양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수석부대표는 특조위의 특검 요청 시 “양당 합의하에 4인의 특별검사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에 제시하고 특별검사후보군 선정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는 후보는 배제한다.”고 합의했다. 10월 31일에는 추가합의를 통해 “특별검사 후보군 선정에 있어서 새누리당은 사전에
유족들과 상의하여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후보는 제외하도록 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특별법TFT의원과 유족대표,
유족대리인을 구성원으로 하는 ‘5인 협의체’에서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 특별검사후보군을 선정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2016년
2월 특조위의 특검 요청을 정부와 여당은 거부했다. 최소한의 정치적 합의, 최소한의 국민, 특히 피해자들과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미수습자 인양은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이미 2014년에
끝난 인양에 대한 기술적 검토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계속 검토’ 중이어야 했다. 인양과정에서의 제대로 된 피해자들의 접근은
배제됐고, 피해가족들이 동거차도라는 섬에서 멀리 있는 세월호 인양현장을 감시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예산이 너무 많다.’ ‘왜 많이 조사하느냐.’는 식의
여당추천 세월호 특조위 위원들의 주장과 회의불참, 기자회견 등 집단행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어이없고
극단적인 진상규명 방해 행위였다. 정부여당은 상식적 법률해석상 불가능한 특별법 해석을 내세우며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기간과 권한 축소에 혈안이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차례 이루어진 청문회. 진정으로 사과하는 이들은
생존자를 구해 낸 민간잠수사들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증거를 통해 국정원의 관련성이 밝혀지고 있지만, 더 밝혀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인지
국정원과 정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갈등도 없고 책임도 없지만 갈등을 유발하고 책임을 물어대는 피해가족과 그 동조자라는 불순분자들이 소소한
소란을 피울 뿐인 아름다운 나라는 이렇게 완성되어갔다.
당신의 기억은
무엇인가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고 진실에 대한 권리가 갈기갈기 찢기고
짓밟힌 폐허에서, 누가 어떻게 감히 기억과 치유, 극복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진실만이 확인되어 온 4.16
세월호 참사 2년,
2년간 계속되어 온 참사 중 있었던 모든 일 하나하나의
전모가
반드시 밝혀져야 할 진상규명의 대상이다.
글_황필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