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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 아태지역 난민 네트워크 만들기 – 황필규 변호사


 


인권활동을 하다보면 관련 단체나 개인 간의 네트워크가 항상 화두다. 인권문제라는 것이 워낙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고, 한 단체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사회에 조그마한 변화라도 가져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성공적이고 실질적인 네트워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네트워크 자체는 유명무실한 상태에서 몇몇 활동가들이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하는 형태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그런 활동가들조차 없는 네트워크는 그 존재 자체가 의심받는다. 특히 한 국가의 틀을 넘는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경우에는 그것의 성립과 유지 자체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국제적인 난민 네트워크의 경우, 개인적으로 후회스런 경험이 있다. 아는 것 하나 없이 난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에 뛰어든 후 1년이 조금 넘은 2006년 6월, Canadian Council for Refugees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주최한 난민의 권리에 관한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Refugee Rights)에 주최 측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참석하였다. 각국에서 난민의 권리를 위하여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 난민과 관련된 다양한 법적, 사회적 쟁점에 대하여 배우면서 적어도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깨닫게 된 좋은 계기였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나는 난민 관련 아시아 네트워크를 구성을 제안하였고, 나와 말레이시아 HAKAM이라는 인권단체의 Alice Maria Nah 활동가, 홍콩 Christian Aid의 Raquel Amador 변호사, 필리핀 Community and Family Services International의 Ana Marie Siscar 변호사 등이 모여 아시아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고, 전체 네트워크의 구성 및 유지에도 일익을 담당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던 것 같다. 폭주하는 국내 업무 속에 회의 때의 구상은 잊혀져갔고 회의 참가자들과의 연락도 단절되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올해 9월, 공감 사무실을 방문한 Japan Association for Refugees의 Eri Ishikawa 사무총장으로부터 11월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태지역 난민의 권리에 관한 국제회의(Asia Pacific Consultation on Refugee Rights)가 열릴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민업무를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 지역의 몇몇 나라들과는 네트워크 구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고, 이번 회의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난민 관련 NGO들의 최초의 회의라는 점에서 참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던 차에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회의 참가와 관련한 재정적인 지원의 의사를 밝혀왔다. 공감에서는 나와 Y. K. Anne Kim 펠로우(캐나다․영국 변호사)가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회의 주최 측에 연락을 취했는데 회의와 실무 총괄을 Alice가 담당하고 있었다. Alice와 반갑게 이메일을 몇 번 주고받은 후 2년 전 제안만 해놓고 책임지지 못했던 아시아 난민 네트워크의 구성과 활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리라 마음먹고, 법무법인 소명의 김종철 변호사,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 국현정 간사 등과 함께 쿠알라룸푸르로 향했다.


 


11월 19일 오전에는 말레이시아에 소재한 유엔난민기구(UNHCR) 아시아 사무소를 방문하여 Thomas Verghis 대표 등과 아시아 지역 난민 현황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는데, 한국 사무소와는 달리 상당한 규모였고, 말레이시아가 난민협약을 가입하지 않은 관계로 UNHCR이 난민접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사무소 정문에 난민신청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후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난민변호사 네트워크의 구성을 구상하고 있는 Southern Refugee Legal Aid Network의 Martin Jones 코디네이터가 ‘국제난민레짐과 국제인권레짐의 교차점’이라는 주제로 난민 관련 국제기준을 소개하였고, Act for Peace, Council of Churches Australia에서 정책과 인권활동을 담당하는 James Thomson이 ‘UNHCR 집행위원회의 역할, 구조, 절차에 대한 소개’라는 주제로 의미 있는 권고들이 이루어지는 UNHCR 집행위원회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다음 프로그램을 앞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쿠알라룸푸르에 소재한 버마 아라칸족 난민단체인 Arakan Refugee Relief Committee에서 온 회의 참가자가 쪽지를 전했다. 한국기업의 버마 가스개발사업의 인권침해가능성에 대한 대응활동을 하면서 한국과 인도에서 만났던 Arakan National Council의 Ny Ny Lwin이 마침 쿠알라룸푸르에 와 있으니 한번 보자는 쪽지였다. 바로 Arakan Refugee Relief Committee 사무실로 가서 Ny Ny Lwin을 만났다. 말레이시아 내의 난민공동체들의 구체적인 상황과 어려움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20일에는 이 회의의 주관단체인 Forum Asia의 사무총장권한대행인 Yap Swee Seng의 인사말이 있었고, 이어진 전체세션은 아태지역의 난민상황에 대한 개관이었는데, Thomas Verghis가 아시아지역에서의 UNHCR의 활동에 대하여, 인도 Jawaharlal Nehru University의 Priyanca Mathur Velath가 남아시아의 상황을, Alice가 동남아시아의 상황을, 호주 Refugee Council of Australia의 John Gibson대표가 호주 상황을, 그리고 내가 일본과 홍콩 참가자들의 도움을 받아 동아시아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지역별 세션 중 동아시아 세션은 내가 주재를 하였고, 한국 참가자들과 일본, 홍콩 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하였는데, 난민의 대량유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적은 난민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 난민인정절차 중심으로 난민에 관한 쟁점이 형성되고 있고 어느 정도 난민 관련 결정례가 축적되어 있는 점 등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하고 동아시아 난민 네트워크 구성에 합의하였다. 피난처 등 3개 단체가 이 네트워크의 대표를 맡고 공감이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정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3명이 참석한 홍콩 단체인 Hong Kong Refugee Advice Centre의 대표가 2년 전 캐나다에서 만난 Raquel 변호사이고,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참석한 단체인 Community and Family Services International 역시 캐나다에서 만났던 Ana 변호사가 속했던 단체라는 점이다. 오후에는 난민 지원과 관련된 전체 세션이 있었고, 태국내 버마 친족 단체인 Chin Human Rights Organisation의 Victor Biak Lian 이사장이 ‘난민과 함께 일하는 데 있어서의 윤리: 공동체의 관점과 협력의 원칙’, Eri가 ‘난민 지원에서의 인권딜레마의 대한 대응’, 그리고 FAHAMU의 난민프로그램 책임자인 Barbara Harrell-Bond가 ‘남반구에서의 난민의 권리 보호의 기반 구축’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21일에는 난민지원에 관한 다양한 인권활동의 내용과 방식에 대하여 아태지역 단체 활동가들과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위원인 Shanti Dairiam이 ‘국제인권메카니즘’, 인도네시아 Human Rights Working Group의 Rafendi Djamin이 ‘지역 내 국가간 절차’, 그리고 호주의 James Thomson이 ‘UNHCR 집행위원회’를 중심으로 그 활용방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주제별 세션들이 이어졌는데 나는 법률지원을 주제로 한 세션에 참석하여 한국의 최근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고 난민법과 관련된 긴밀한 정보 교환과 협력체계를 구축을 역설하였고 난민의 인권옹호활동을 펼치는 아태지역 각국의 변호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정보 교류 및 교육 등의 사업을 펼쳐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오후에는 말레이시아 UNHCR 아시아 사무소와의 대화 시간에는 있었는데 난민신청접수 거부 등 몇 가지 현안에 대하여 UNHCR를 비판하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이 회의의 마지막 공식 프로그램인 향후 전망을 논하는 전체 세션에서는 아태지역 난민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운영하기로 결의하고 University of Sydney의 Ana Samson 변호사가 앞으로 1년간 이 네트워크의 상근실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이미 관련된 재정을 확보한 주최 측의 치밀한 준비가 돋보였다.


 


귀국일인 22일 오후에는 이 네트워크의 운영위원회에 참석하여 공감은 이 네트워크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역할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Alice를 도와 운영위원회의 보조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기로 했다. 이 운영위원회에서는 난민이 주체가 되는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였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귀국하여 다시 정신없이 국내의 현안들에 챙기는 동안 Anne 펠로우가 관련 회의록 등을 정리하여 주최 측과 관련 단체에 배포하였다. 꿈같은 네트워크를 이야기하고 마쳤던 지난 여러 회의들, 아직 그 네트워크들이 현실화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그리고 앞으로는 나의, 공감의, 혹은 한국의 필요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 있건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기 위해, 그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 필요한 네트워크의 구성과 운영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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