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의 변]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공감이다
시설에서의 하루일과는 새벽부터 밤까지 4~5차례 진행되는 종교행사와 일을 좀 할 줄 아는 사람 위주로 동원되는 밭농사일 (하루 일당이 담배 몇 개비와 봉지커피 한 잔이라고 들었습니다.) 외에는 없는 1년 내내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풍경입니다. 생활자 한 사람, 한 사람씩 면담을 하였습니다. 저도 여러 생활자들을 면담하였습니다. 그중의 한 분은 사회에서 아버지와 둘이서 생활을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정신분열증세가 있어서 십수 년 전에 장애인 시설을 들어오게 되었고, 이 시설 저 시설을 전전하다 그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주 잠시 몇 개월 정도 집에서 살 기회가 있었으나, 아버지가 다시 시설로 들어가라고 하셔서 그 이후로 계속 장애인시설에 살고 있습니다.
면담을 하면서 몇 번이나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 당신네들을 도우러 왔다.’는 얘기를 하고 그분들이 하시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드렸더니 조금씩 경계심이 풀리셨나 봅니다. 면담 말미에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자신은 꼭 시설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책상 밑으로 꾸깃꾸깃 접은 손때 묻은 편지를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적혀진 주소로 꼭 보내달라고 하셨지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 순간 시설에서 한 평생을 보낸 그분의 아픔이 고스란히 제가 전해져 왔습니다. 감옥도 아닌데, 죄라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뿐인데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 제대로 못하고 바깥세상 구경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한 평생을 시설에서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요.
작년에 그때까지도 미신고시설로 남아 있는 전국의 22곳의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권실태조사가 있었습니다. 시설 생활자 면접조사 결과 생활자들 중의 상당수가 “10년 이상 외출해본 적이 없다.”, “바로 아래에 있는 슈퍼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진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복지시설에서 생활자들을 때리거나 가두고 성폭행을 하고, 생활자들의 수급비로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노골적인 인권침해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무런 희망과 기대도 없이 시설 안에서 평생을 보내도록 하는 것 자체가 생활자들에게는 고통이고 아픔이요, 인권침해에 다름 아님을 인지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사회 복지 사업법에 규정되어 있는 사회 복지 서비스 신청권을 실질화 시키기 위해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었고, 지난 1월에 서울행정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소송에서 원고로 나섰던 중증의 장애인 분이 관할 구청에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복지서비스 내용을 복지시설 거주서비스에서 지역사회 거주서비스로 변경해달라고 청구하면서 청구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누워서만 지냈습니다. 21살부터는 18년 동안 시설에서만 살았습니다. 시설에서 나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물론 힘들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저를 설레게 만듭니다. 저는 시내를 활보하고, 혼자서 시장도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러 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저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정상적으로 살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제 희망이 과분한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최소한의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시내를 활보하고, 혼자서 시장도 다녀오고,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러 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분의 글이 심금을 울립니다. 21살부터 18년 동안 아무런 의지도 희망도 없이 살아온 그분의 삶이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공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결국 이런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