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의 변] 영주“권” 있기 없기?
우리나라엔 영주권이 있을까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엔 영주 ‘자격’만 있을 뿐 영주 ‘권’은 없다. 현재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비자 종류는 삼십여 가지. 2002년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의 개정으로 영주자격(F-5)이 그 중 하나로 추가되었다. 말 그대로 ‘영주’ 거주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시민적‧사회적 권리 보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다. 그런 상태로 최근 정부는 ‘영주자격 전치주의’를 도입하겠다며 국적법과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영주자격 전치주의’란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주자격을 취득하고 일정 기간 국내 체류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에 대하여 결혼이주민, 난민, 이주노동자, 중국 동포 모든 이주민 커뮤니티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왜 그럴까.
무엇을 위한 영주자격 전치주의인가. 2008년 12월, 제1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자리에서 영주자격 전치주의 도입이 언급되었다. ‘건전한’ 국민을 확보하기 위해서 귀화 허가할 때 검증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영주자격 대상자로 결혼이주민과 재외동포 이외에 우수능력 보유자, 특별 공로자, 투자가가 포함되었다. 정부는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자 고액투자자, 전문 자격자 등에게 귀화신청과 영주자격 요건을 지속적으로 완화해왔다. 그러나 현재 영주자격 취득자의 96% 이상이 국민의 배우자, 재외동포, 재한 화교인 점에서 알 수 있듯 실질적 효과는 미미하다. 반면 이주노동자와 난민, 국내에서 출생한 이주아동 등은 영주자격자 대상자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영주자격 신청을 못 하면 귀화 신청도 할 수 없다. ‘국익’을 기준으로 선별한 결과이다. 전체 이주민 중 5분의 1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를 배제한다면 사회통합이 저해되어 사회 불안이 증대될 것이다. 난민과 이주아동의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비준 가입해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국제인권규약에 반하는 조치이다. 이러한 방향의 법 개정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 것일까.
특히 결혼이주민의 경우 법적 지위가 더욱 불안해진다. 결혼이주민에게는 처음에 1년의 체류기간이 부여된다. 체류연장 신청을 위해서는 한국인 배우자와 동행해야 한다. 애초 비자 발급 시 한국인 배우자가 해 준 신원보증이 철회되면 한국에서의 삶이 불안정해진다. 언제든 단속되어 강제추방될 수 있다. 한국인 배우자에게 의존해 있는 체류자격 때문에 결혼이주민은 가정폭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2011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같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결혼이주민의 국적 취득을 위한 거주기간을 2에서 3년으로 상향 조정하고 있다. 또한, 국적 취득 전 단계로서 영주자격 심사를 통과하도록 해 이중심사제로 운영하려 하고 있다.
법무부는 별도 거주기간 없이 영주자격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이주민의 법적 지위가 안전해질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주자격 심사 기준으로 한국어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능력 심사를 통과하려면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1~2년은 거주해야 한다. 또한, 법무부는 모든 나라에서 시민권 취득 전에 영주자격으로 거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근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경우 영주자격자에게 시민권자와 동등한 시민적‧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권을 취득하기 전 영주자격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하등 사회통합에 저해되지 않는다. 우리의 영주제도는 어떠한가. 아무런 권리보장 없는 영주제도이다. 외국 사례에서 알맹이는 버리고 형식만 따온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영주자격 전치주의는 외국에도 유례가 없다. 영주자는 그 사회에 대한 귀속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국적자와 같은 수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인권과 사회통합의 차원에서 타당하다.
글_ 소라미 변호사
2012. 11. 30. [영주자격 전치주의 도입,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자료집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