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의 변] 제주 예멘 난민들, 정부가 다르게 답해야 하는 것들
전사(前史) 혹은 전조(前兆)(?) – 외국인․난민․무슬림 혐오 방치·생산의 역사
2004년 10월, 한 국회의원이 “국정원이 방글라데시 이슬람 반한 단체를 첫 적발”했다고 ‘폭로’했다. 방글라데시인들의 한 종교단체가 자국의 반미․이슬람 성향 정당에 송금을 했다는 것이었다. 언론은 ‘이슬람’, ‘반한’을 강조하며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송금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고, 문제가 된 정당은 방글라데시 집권정당 중의 하나였고 국정원은 침묵했지만, ‘이슬람’, ‘반한’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한 공영방송은 메인뉴스 헤드라인으로 “이 단체의 활동양상이 알카에다와 흡사했다”고 주장하며 총을 들고 산악훈련을 하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배경화면으로 깔았다. 그런데 정작 그 내용은 “도심에서 돈을 모았다”는 것이었다. 이를 내보낸 공영방송도, 처음 이 상황을 ‘폭로’한 국회의원도 도심에서 돈을 모으고 있는데… 정부는 침묵했고, 언론은 흥분했고, 국민들은 공포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슬람’과 ‘반한’이 동일시된 채 관련 방글라데시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한국에서 없어져야할 혐오의 대상이 됐다.
2012년 10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난민법’이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난민법은 2011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하여 2013년 7월 시행 예정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난민법’이 급상승 검색어가 될 이유가 없었다. 이 상황은 외국인 혐오주의 경향이 강한 온라인 카페 일간베스트저장소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개입한 결과였다. 며칠 동안 인터넷과 트위터 등 SNS에 ‘난민은 성범죄자들이다’, ‘난민은 AIDS를 한국에 퍼뜨린다’ 등의 수만 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난민에 대한 악선동이 조금이라도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가십거리 정도로 여겼다. 적어도 댓글을 올리거나 이러한 댓글들에 노출된 수만, 수십만 명은 내용도 거의 모르는 난민법이 나라를 망치는 법이라는 확신 혹은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됐다.
2015년 11월,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한 직후 국정원의 중대(?) 발표가 있었다. “‘테러분자’ 유입루트 시리아 난민 국내 200명 유입”, “시리아 난민 200명 국내 유입…국내 테러 가능성 철저히 대비해야”, “시리아 난민 10월에만 70명 국내 입국… IS대원 잠입 우려에도 심사–관리 허술”…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국정원은 국내 시리아 난민의 존재 자체를 테러방지법의 필요성과 연결시켰고, 언론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논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불과 두 달 전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사망 소식으로 전 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일었을 때, 시리아 난민을 500여명이나 ‘인도적 체류’를 부여해 보호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정부와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던 언론은 보이지 않았다. 시리아 난민과 테러는 동일시됐다. 곧바로 난민신청을 한 시리아 성인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30여명이 인천공항에 법적 근거 없이 구금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BBC와 CNN 등 외신들은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보도했지만 이들은 6개월이 지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정부의 사과는 없었고, 테러방지법은 제정됐다.
지난 10여 년간 인터넷상 반다문화 카페들, 공격적 댓글로 대변되는 한국의 반다문화 담론, 외국인혐오주의, 인종주의는 정부로부터 그 어떠한 통제를 받지 않고 대중매체와 인터넷에서 더욱 확산되고 노골화되어 왔다. 이주민 혹은 난민에 대하여 우호적인 기사가 나오기만 하면 수백, 수천 개의 악성댓글이 올라오는 패턴이 수년간 지속되어 왔다. 반이주민 집회가 열리고 , 반무슬림 국회토론회가 개최되고, 조직적인 움직임에서 비조직적인 움직임까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까지, 개별적 사례에서 제도적 문제까지 외국인, 난민에 대한 두려움, 편견 등에 터 잡은 이들에 대한 혐오적 표현은 확산 일로를 치달아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인 흐름에 대해 이를 방치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편승하거나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외국인들의 범죄 및 쓰레기 무단투척, 주취폭력 불만”, “反 다문화현상의 표출”, “‘국민에 대한 역차별’, ‘다문화 정책 반대’정서”, “‘한국적 가치’를 확립하지 못한 이민자 및 이민 2세의 국적취득 등에 따른 정체성 혼란 우려 증가” 등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여야 할 객관적인 ‘국민의 인식’으로 판단하여 외국인 혐오주의, 인종주의 경향을 방치하고 오히려 부추겨왔다. 상당 부분 법무부의 정책 실패로 기인하는 외국인 혐오주의와 인종주의라는 파괴적인 경향의 발호에 대해 그 어떠한 정책 마련이나 대응 조치 없이 피해자격인 이주민, 난민을 갈등의 주범, 갈등유발자로 낙인찍고 이들에 대한 억압과 통제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정부는 자유롭지 못했다.
제주 예멘 난민 – 무슨 일이 있었나
예멘 국민인 낯선 이들이 제주에 왔다. 난민 신청을 했고 정부는 법에 따라 난민인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박해나 생명, 신체의 위험으로부터 피해 온 것이라면 전 세계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한국 국민을 보호했듯이 한국도 이들을 보호할 법적, 인도적 의무가 있다. 예전과는 달리 다소 많은 이들이 동시에 난민신청을 했기에 정부는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법에 근거하여 이들이 난민인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도 취했다. 이것이 제주도의 예멘 난민신청자들의 상황과 관련된 기본 팩트이고 여기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없다.
평소와는 달리 한꺼번에 입국한 많은 난민신청자로 인해 정부도 당황했다. 제주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출도제한 조치를 취했고 무사증 입국대상에서 예멘을 제외했다. 전 세계는, 그리고 대한민국은 난민 보호를 위한 의무를 분담하고 있다. 출도 제한 조치는 충분한 고민과 계획 없이 대한민국 특정 지역에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과도한 난민 보호의 의무를 사실상 강제하였다는 점에서 적절한 조치였다고 볼 수 없다. 시리아 난민들을 인천공항에 가뒀듯이 예멘 난민들을 제주도에 가두려 했지만 제주도가 고립된 구금시설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집단을 형성한 낯선 이들의 모습에 제주도민들은 두려움을 표시하기도 하고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제주가 전 세계 국민들이 방문하는 국제적인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이들에 대한 거부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국민들이 난민이 누구인가를 이해할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정부에 책임이 있다. 국민들의 난민에 대한 우려, 불편함, 두려움 등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 난민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그저 보통 사람임을, 난민은 다만 박해받을 위험성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놓였고 따라서 특별한 보호를 필요한 사람들임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의 난민 범죄 우려’에 특별순찰을 돌겠다고 답했고, “지나친 온정주의와 무조건적인 반대 모두 문제다”, “국민보호가 최우선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의도와는 무관하게 난민은 잠재적 범죄자이며 경계와 통제의 대상이라는 인식을 확인,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아직 정부는 부분적인 조치만을 언급하거나 취했을 뿐, 제주 예멘 난민 상황에 대하 전반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단순한 불안감과 편견에 불과했던 난민들에게 대한 인식은 반이주민, 반난민, 반무슬림 세력들의 조직적인 움직임과 책임지지 않으려하거나 난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정부의 모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적대적인 공포와 혐오로 발전해오고 있다. 단순한 불안감이 혐오로 발전하고 이러한 혐오가 공포감과 더불어 국민들 인식에 충분히 안착하여 사실상 여론으로 만들어질 시간을 부여하는 치명적인 정책실패를 정부는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모든 책임을 난민에게 돌리는 것이고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곤란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국익과 인권에 철저하게 반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가난과 싸울 의사나 능력이 없는 정부는 가난한 자들과 싸운다고 한다. 난민문제와 싸울 의사나 능력이 없는 정부는 난민과 싸운다. 그 성립과 존립, 그리고 그 지도자와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난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에 기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그리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꾼다는 현 정부에서 난민들의 보호에 어떤 전향적인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정부가 천명해야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다르게 말하고 실천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난민의 보호는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의무이자 자랑입니다.
GDP, 인구, 국토면적 대비 난민에 대한 보호의 정도가 전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한국은 그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난민인정/보호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고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적절히 배분해야 합니다. 난민인정절차의 공정성, 투명성, 신속성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이것이 제도의 남용을 방지하는 가장 현명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 위상에 걸맞은 난민 보호 규모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난민정책을 수립,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특정 사회적 신분, 인종, 종교, 성별 등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 혐오와 차별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 평화와 인권, 안전과 번영의 가치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 낯선 종교 등에 대한 불안감과 불편함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그것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극복되어야할 문제이고 정부가 이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이 아닌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혐오와 차별의 경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평화와 인권, 안전과 번영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글_황필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