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변의 변] 죄는 미워해도 ‘상관없는’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 박영아 변호사
2007년 4월 16일. 거의 10년도 지난 일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된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날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당시로써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의 총격으로 교수와 학생을 포함하여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당했다. 처음에는 범인이 “아시아인처럼 생겼다”는 목격자 진술만 있었다. 다음날 경찰이 범인의 신원을 공개했을 때 충격에 휩싸인 것은 미국보다 한국이었다. 범인은 초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을 취득한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범인의 신원이 밝혀지자마자 한국대사관측은 “파장과 악영향에 대해 크게 우려하면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고 발표했고, 국내 언론은 “미국 현지 유학생들과 교민들도 최악의 교내 총기사건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며, 이것이 다인종 국가인 미국 내에서 한국인과 아시아계에 몰고 올 부작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당국은 “미국과의 외교적 문제와 더불어 현지 교민과 유학생 등에 대한 우발적 테러 가능성 등 안전문제에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외교통상부 장관은 “워싱턴 주미대사관에 비상근무를 지시하는 한편, 자세한 현지 피해 상황과 수사 내용 등을 파악하도록 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외교 당국은 이번 사태가 한미FTA 체결 후 더욱 친밀해진 한미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 손상 등 부작용이 심각할 것으로 우려”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은 “이번 사건이 인종적 편견이나 갈등을 일으키질 않기를 바란다”는 한국 외교당국의 우려를 전하며, “이 사건은 모든 장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슬픔은 모두의 것이다. 편견이나 불관용을 실천하려는 핑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 버지니아 주지사의 발언을 소개했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미국 버지니아 공대학생들이
풋볼스타디움 총기난사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참가해 흐느끼고 있다. (출처: AP연합)
한편, 미국 내 언론보도의 초점은 처음부터 범인의 국적이나 인종이 아닌 범행동기, 그리고 정신질환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규제 없이 총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든지, 학생의 정신질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학교 당국의 대처나 관련 제도의 허점, 사건 당일 경찰 당국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에 맞추어져 있었다. 범인의 신원이 처음 공개된 후 나온 보도의 제목은 “버지니아 총잡이 재학생으로 밝혀짐(Virginia gunman identified as student)”이었다. 미국대사관도 “한 개인의 행위이며 양국 간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버지니아 공대의 백인 재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캠퍼스의 아시안 커뮤니티가 매우 크고 우리 모두 하루 종일 같이 수업을 듣는다. 잘 통합되어 있어서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한국 내 분위기를 전하며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나 집단적 수치심이 개인보다 집단적 정체성을 더 중시하는 한국문화의 소산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2007년에 있었던 총기난사사건에 관한 언론보도를 굳이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외국인에 의한 범죄사건을 다루는 국내의 언론기사를 볼 때 항상 드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범인의 국적을 대서특필하고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임을 부각하는 것도 위와 같은 문화의 발로일까? 아니면 범인이 특정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이 범죄의 원인파악이나 대처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라는 언론과 당국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외국인범죄”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사람들까지 벌벌 떨게 만드는 것은 현명한 대처방법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글 _ 박영아 변호사
(*이 글은 ‘머니투데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