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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주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주민에게 돌아온 것은 – 박영아 변호사


2007년 12월 말 서울시 구의회들은 경쟁적으로 구조례를 개정하여 의원 총 급여를 3,000만원대에서 5,000만원대로 대폭 올렸다. 이유는 대게 유능한 인재가 지방의회에 진출하여 충실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2006년 5월 31일 제4회 지방선거가 실시된 지 1년 반 만에, 그리고 제5회 지방선거까지 아직 2년 반이라는 기간이 남은 시점에서,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보수를 현실화해야 한다면서 자신들이 받는 월정수당을 인상한 것이다. 


  이에 도봉구, 금천구, 양천구 등 서울시내 각 구의 주민들은 서울시에 주민감사를 청구했다(「지방자치법」과 관련 조례에 따르면 주민감사 청구를 위해 해당 구 주민 200명 이상의 연서가 필요하다). 서울시는 감사 결과, 각 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의정비심의위원회 구성 및 운영의 부적정성, 월정수당을 정할 때 각종 임금 및 물가상승률, 재정자립도, 주민소득수준 등을 고려하여 인상액을 결정하여야 함에도 특별한 요인 없이 인상한 점, 주민여론조사절차의 부적절성 등을 지적하며 의정비심의위원회 재구성, 여론조사 재실시, 조례재개정, 담당공무원에 대한 징계 등을 내용으로 한 조치요구를 하였다. 
 

  하지만 위 조치요구에 이미 부당하게 지출된 의정비의 환수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포함되지 않아, 이에 불복한 14개구 주민들은 「지방자치법」제17조제1항에 따라 주민소송을 제기하였다. 각 구 구청장을 상대로 부당하게 지급된 의정비를 해당 의원들로부터 다시 환수해서 구 재정을 회복시켜 달라는 내용의 소송으로, 승소한다 하더라도 원고가 된 주민 개개인에게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그야말로 구의 재정회복을 위해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선 공익 소송이었다. 


  2009년 5월 20일 서울행정법원은 도봉구, 금천구 및 양천구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선고했다. (위법한 지방의회 의원 의정비 지급, 부당이득 환수를 위한 주민소송 승소 링크, 2008)  의정비 인상 조례가 절차적으로, 내용적으로 위법하므로 무효이고, 따라서 무효인 조례를 근거로 지급된 의정비가 부당이득이라는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심의위원회가 시행한 지역주민 의견수렴절차는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주민의 의사를 왜곡하거나 편향되게 할 위험이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이 분명”하고, 해당 구 주민들의 소득수준, 재정자립도, 예산증가율, 근로자 임금상승률, 공무원봉급인상률, 물가상승률 등과 비교할 때 의정활동비 인상폭이 지나치게 높고, 지방의회 연간 회기일수는 100일 이내에 불과하고, 구의회 의원들은 겸직금지 범위가 상당히 좁아 의원 개인의 영리행위에 거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므로 적정한 보수 수준을 지방자치단체의 일반 공무원들의 보수수준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점 등이 판단근거였다. 그 후 같은 이유로 주민소송을 제기한 다른 구 주민들의 승소소식이 이어졌다. 주민감사 및 소송을 계기로 지방자치법 시행령의 관련 규정들이 개정되어, 구 의원들의 무분별한 자기 보수 인상에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들이 뒤집혀지기 시작했다. 항소심 재판부들은 대부분 자치단체가 제정한 조례를 무효화시키는 데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는지, 계속해서 조정을 권유했고, 조정이 성립되지 않자 결국 주민의견 수렴절차를 거치도록 한 시행령 규정이 “지역주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절차적 의무만 부과한 것에 그치고, 의정활동비 등에 관한 지역주민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확인하여 그 결과를 반영하여야 할 것까지 요구한다고 볼 수 없다”며, 지역주민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이상, “그것이 다소 미흡하다 하더라도, 그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관계 법령의 취지를 명백히 저버린 채 진행되었다고 평가할 수 없는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는 등 행정법원과 정반대의 판시를 하며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고, 이러한 판시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어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원고가 된 주민들 앞으로 한 장의 최고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승소한 구청장들이 원고인 주민들에게 적게는 450만원, 많게는 600만원에 달하는 변호사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물론 판결 확정 후 승소한 측이 상대방에게 관련 규정에 따라 변호사비용 등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것이 보통이고, 일반적으로 형평성에도 맞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까? 우선,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의 판단은 의정비심의위원회의 구성 및 심의, 주민의견 수렴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가 아니다. 단지 의정비 조례 제정 과정에서 관련 절차를 형식적으로나마 거쳤다면, 즉 의정비 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거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정도의 하자가 없다면, 조례가 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매우 소극적인 판단을 한 것에 불과하다. 


  주민소송은 「지방자치법」에서 일반소송요건과 별도의 요건을 정한 전형적인 공익소송, 객관소송으로서, 감사청구를 한 주민을 대표하여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의 사익을 위한 소송이 아니다.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취지에는 소제기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으나, 현행 지방자치법상 주민소송 규정에는 이미 엄격한 요건을 규정하여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만약 주민소송의 원고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원에 이르는 소송비용 부담이 뒤따른다면, 어느 누구도 패소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민소송을 제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주민소송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주민감사청구의 실효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임이 자명하다. 


  원고들은 해당 구의 주민인 것 말고, 소송의 결과에 대해 아무런 개인적 이해관계가 없었다. 이렇듯 주민감사와 주민소송은 지역주민들의 지방행정에 대한 자발적 관심과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원고들은 주민감사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구의 재정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던 것뿐이고, 관련 조례 및 시행령 개정 등 문제가 개선되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런데 현재 의정비심의위원회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구성하고 운영한 책임이 있는 구청장들이 재정회복을 위한 조치를 요구한 주민들에게 오히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구청장들이 변호사를 선임해가며 열심히 방어한 것은 구의 재정이 아니라 의정비를 과다지급 받은 의원들의 개인재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소송비용을 주민으로서 책임을 다한 원고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이나 형평의 이념에 합치된다고 할 수 있을까?


글_박영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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