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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변의 변]LGBTI 난민에게 피난처는 있는가 – 장서연 변호사



LGBTI 난민에게 피난처는 있는가


  내가 LGBTI* 난민 이슈를 처음 접한 것은, 2007년 공감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한국인 레즈비언 커플이 호주에서 난민인정신청을 했을 때,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국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제도적 차별, 가족문화 등 객관적인 내용으로 의견서를 보냈고, 난민조사관과 전화 인터뷰도 하였다. 그들이 난민으로 인정되었는지, 불인정 되었는지 결과는 통보받지 못했다. 그렇게 아주 가끔 호주나 캐나다에서 난민인정신청을 하였다는 사건을 접하고 의견서를 보내주거나 언론을 통해 한국인 LGBTI 사람들이 호주 등 외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박해를 피해 자유와 안전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박해를 피해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국에서 난민인정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민’ 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전쟁난민이나 기아 난민과 달리,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은 난민의 개념을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국제난민협약에서 정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난민협약에서 정한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강제송환금지 등 난민지위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국제적 보호는 특정 박해로부터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하여 보충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한국은 1992년에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하였으나, 2000년 UNHCR(국제연합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의 집행 이사국이 될 때까지 단 1명의 난민도 인정하지 않았고, 2001년에 최초로 1명을 난민으로 인정하였다. 한국의 난민신청 대비 인정비율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하여 여전히 현저히 낮다. 2013.12.31. 기준으로 6,643명의 난민신청인 중 377명만이 난민으로 인정 받았다.


  LGBTI 난민들은 난민협약에서 정한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에 해당하여 난민으로 인정되고 있다. UNHCR은 2008.11.21.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과 관련된 난민신청에 대한 지침서(UNHCR Guidance Note on Refugee Claims Relating to 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를 발간하여, 출신국가에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는 경우, 사회문화적 규범에 따라 사인들이 LGBT 사람들에 대해 박해를 가하는데 국가가 이러한 박해로부터 LGBT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 난민 요건에 해당할 수 있고, 심사관은 성적 지향 또는 성별정체성과 관련된 주장의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신청인의 성적지향 등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그 주장과 관련된 증거수집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의심스러울 때는 난민신청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이후 UNHCR은 2012.10.23.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9호’(Guidelines on International Protection No. 9: Claims to Refugee Status based on Sexual Orientation and/or Gender Identity within the context of Article 1A(2) of the 1951 Convention and/or its 1967 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를 통해, 성적지향 및/또는 성별 정체성에 기반한 난민지위 여부의 판단 기준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인권규범과 현실적용 사이의 간극은 크다. 한국 난민조사관의 질문은 이런 식이다. 

 

“동성애는 역할이 남자와 여자로 보통 나뉘는데 신청인은 어떠했나?” 

“실제로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

“처음 성관계를 할 때 신청인은 어떤 역할이었나?”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신구 착용방법이나 헤어스타일, 옷차림 표식이 있나?”

 

  이러한 질문들은 매우 부적절하다. 한국조사관들이 LGBTI 사람들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하고 이해가 부족한지 드러낸다. UNHCR의 지침에 의하더라도, 면접관은 신청인의 성적 행동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신청인 개인의 관념, 감정, 경험적 차이, 낙인, 수치심과 관련한 요소들을 탐색하는 것이 신청인의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생에서 경험한 바는 굉장히 다양할 수 있고, 이성애자만큼이나 LGBTI 사람들을 유형화할 일반적 특징이나 자질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특정 고정관념에 해당하는 행동이나 용모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신청인의 성적지향 혹은 성별 정체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신청인의 성적지향에 대한 의학적 “테스트”를 하는 것은 기본적 인권에 대한 침해이며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LGBTI 난민신청인들이 어려운 난관을 거쳐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증명하였다고 하더라도, 바로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난민심사관들은 LGBTI의 ‘박해 가능성’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본국에 동성애에 대한 형벌규정이 있고 광범위한 사회적 차별 정황이 있으나 실제로 정부에 의한 기소가 거의 없고, 본국과 한국에서 신청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적이 없기 때문에’ 박해를 받을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을 기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과거 외국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신청인이 과거 조심스럽게 살았으니 귀국해서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신중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UNHCR의 지침은 난민신청인이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숨기거나 “신중하게” 처신함으로써 박해를 피할 수 있다거나, 전에 그렇게 했다는 것은 난민지위를 부인할 수 있는 유효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LGBTI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 의견 또는 특징을 바꾸거나 숨겨야 한다는 조건에 기반해서 난민지위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13.7.1. 난민법 시행 이후, 난민 신청자 수가 1,000명을 넘어 매년 증가추세라고 한다. LGBTI 난민에 대해서도 종종 보도가 나온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난민신청 초기부터 충분히 안전하고 지지적인 환경을 제공받고 있는지 우려된다. 이들은 난민들의 일반적인 특성에서 볼 수 있듯이, 출신국의 커뮤니티로부터도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난민심사관, 난민지원단체 등은 LGBTI 인권단체들과 연계하여 전문적인 인권교육 및 훈련을 받아야 하고, LGBTI 난민신청인들에게 충분한 지지환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 LGBTI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간성(Intersex) 등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글_장서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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