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이라 이름 붙이고 자격을 묻는 정서에 대하여 –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조직 내 젊은 정규직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인천공항이나 서울교통공사 정규직들이 나서서 정규직 전환 반대 집회도 하고, 내부 통신망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험담을 쏟아냈던 것처럼, 최근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최근에 입사한 정규직을 중심으로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이들이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핵심적인 근거는 ‘공정성’이다. 시험을 보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 반대 논리로 사용되는 ‘공정성 위배’ 주장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공정성은 ‘경쟁’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쟁의 룰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규직 전환에 ‘경쟁’을 전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이윤을 창출하고자 한다면 그 기업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 권한을 가진 자가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이다. 원청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인천공항, 서울교통공사 등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는데 하청이나 민간위탁, 외주화로 노동자를 고용하면 원청은 책임에서 멀어진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은 ‘경쟁’과 관련 없이,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구조를 되돌리는 것이다.
일자리를 직접고용으로 바꾼다고 해서 그 일을 했던 모든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를 질문할 수는 있다. 그런데 고용의 원칙은 ‘상시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콜센터의 업무나 스크린도어 수리, 경정비 업무는 상시업무인데도 이 노동자를 간접고용으로 채용한 것이 잘못이다. 또한 공공기관은 공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업무를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에 운영하도록 맡기는 것도 문제이다. 따라서 정규직 전환은 잘못된 고용형태를 되돌리는 것이며, 승자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경쟁’을 전제로 한 ‘공정성’ 논리를 도입할 수는 없다.
두 번째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공정성 논리’는 출발선이 동일한가, 짐의 무게가 동일한지를 질문하지 않고 오로지 공정한 룰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공정성’은 불합리한 조건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제기한다. 이를테면 외주업체의 노동자들이 정규직들에게 ‘당신들이 우리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했는가’를 질문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조건은 누구에게나 공정했는지, 생계와 학업을 함께해야 하는 이들에게 하게 안정적인 공시 공부가 가능한지를 질문할 때 ‘공정성’이 의미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정규직들이 내 자리로 올라오는 사다리를 치워버리기 위해 ‘공정성’ 개념을 동원한다.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의 ‘공정성’은 아마도 ‘자격’을 일컫는 것일 게다.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당신들이 나와 같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인 것이다. 그런데 ‘자격’의 기준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공립학교 교사 임용에 시험을 도입한 것은 90년대 이후였다. 그 이후에도 사립학교 교사들이 특채로 공립학교의 정규 교원이 된다. 공공부문에서 일할 ‘자격’은 절대불변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기마다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시험’이 아니라 때로는 그 일을 하는데 적합한지, 경험이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콜센터 업무나 정비 업무를 하는데 토익점수가 자격 기준이 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공정성’의 잣대라고 이야기하는 한 번의 시험이 일자리의 안정성과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근거로 정당한가를 질문해야 한다. 사회가 공공부문 일자리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이유는 이들이 ‘공적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사회가 용인한 것이다. 비리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권력에 굴복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처음부터 공공기관의 노동조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만큼 좋은 일자리가 된 것이다. 공공부문의 좋은 노동조건은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이 아니다. 그러니 시험에 통과한 자들만 이 조건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민영화, 외주화, 민간위탁 등으로 인해 공적 업무조차도 이윤논리에 휘둘려가고 있다. 박근혜정부에서 시도한 저성과자 해고제도, 그리고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등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경쟁체제로 밀어 넣어 노동자들을 통제하려는 의도였다. 현재 일부 공공기관과 보수언론이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정성’ 주장을 적극 옹호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위계화를 통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데 적합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은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선호한다. 자회사는 정규직과의 차별구조를 유지할 수 있고, 언제라도 구조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가 용역회사와 다를 바가 없고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기관들은 이 요구를 억누르기 위해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공정성’ 주장을 활용했다. ‘공단의 구성원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강력한 근거가 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고 있다.
위계적 구조가 만들어지면, 낮은 위계의 직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다. 높은 위계에 있는 노동자도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만약 회사가 매달 시험을 봐서 임금을 결정하자고 한다면, 성과가 낮은 노동자는 해고하자고 한다면, 성과가 나지 않는 곳은 외주로 돌리자고 한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성과 측정이 객관적이지 않고, 결과적으로 기업 말을 잘 듣는 노동자만 살아남는 구조가 되겠지만, 노동자들이 ‘공정성’ 논리를 신봉한다면 이런 정책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주장과 분석이 사실은 쓸모없을지도 모른다.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도 지금의 시험구조가 공정하다고 진실로 믿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인정 여부이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왔고, 그 결과로 지금의 안정된 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이들이 정규직이 되면 자신의 노력과 삶이 부정당한다고 느껴지는 것일 게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오히려 ‘공정성’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자’고 더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까지의 삶이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더라도 앞으로의 삶은, 앞으로의 사회는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모든 노동은 연결되어 있다. 한 공공기관의 업무는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노력과 소통을 통해 완성되고, 그 일의 결과로 공공성을 실현한다. 필요한 일을 하는 노동자 모두에게 권리가 있어야 공공성도 지켜질 수 있다. 노동자 모두가 경쟁상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우리 모두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자. 함께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글_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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