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은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 장서연 변호사
[공변의 변]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은 국가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장서연 공감 변호사
어제, 오늘 겨울바람이 매섭다. 외출하기도 싫을 정도로 추운 요즘, 명동성당 앞 들머리에서 인권활동가 및 인권단체들이 노숙농성을 시작하였다. 천막도 치지 못하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밤샘 농성중이다. 그 이유는, 지난 1. 16.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안을 내놓으면서 현재 독립적 기구로 되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인권단체, 시민단체, 법학교수들이 반대논평을 내고, 국제앰네스티, 유엔고등판무관의 반대서한이 이어졌다. 하지만 통일부, 여성부 통폐합방침에 비하여 인수위원회의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 방침 발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떤 기구인지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그 심각성을 함께 공유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훼손의 위기를 지켜보며, 지난 1년 동안 공감에서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했던 일들을 돌이켜봤다. 공감에 출근한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작년 6월경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보호외국인의 처우 및 시설과 관련한 방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외국인보호소는 강제퇴거대상자들을 수용하는 시설로서 명칭은 ‘보호소’이지만 작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실질적으로 철창이 쳐진 구금시설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구속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보호’처분에 대하여 적게는 1개월에서부터 길게는 1년이 넘는 수용기간 동안, 외부로부터 견제 장치와 감독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외국인에 대한 보호처분은 사법부의 통제 없이 법무부 소속인 각 출입국관리사무소장에 의하여 결정과 집행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미흡하나마 국가기관으로서 국가인권위원회 정도만이 외국인보호소 내 인권침해 및 처우문제 정도를 감시, 견제하고 있다.
여전히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현재진행형이며,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이처럼 국가인권위원회는 구금․보호시설에 대한 방문조사나 진정조사를 통하여 국가기관 및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일을 중요부분의 일로 한다. ‘설마, 요즘이 어느 세상인데 수사기관이나 교도소 등 구금시설에서 가혹행위를 하냐.’며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구금시설 내 인권침해의 경우는 적발이 어려운 반면 그 결과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 구금시설 내에 수용되어 있는 피구금자의 신분이거나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피의자의 신분으로서 당하게 되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일상생활에서의 침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압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루는 공감사무실에 검찰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였다는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2001.년경 인천지검 특수부에서 심지어 참고인신분으로 불법체포를 당해 4일 동안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석방된 며칠 후 정신적 충격을 받고 쓰러져 현재까지 그 후유증이 남아있다. 다행히 그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조사를 거쳐 진실을 밝힐 수가 있었고, 가해자는 고발조치를 당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만약 그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상대로 혼자서 싸워야 했다면,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을까. 또는 피해자가 같은 소속인 검찰이나 법무부를 믿고 진정을 하거나 고소를 할 수 있었을까.
서울구치소 내에서 분류심사과정에서 강제추행을 당해 자살한 여성재소자 사건도 있다. 처음 언론에 서울구치소 내 강제추행으로 인한 자살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법무부는 사건을 축소하여 발표하였다. 조직 내에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그 조직이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속성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언론에서 크게 문제가 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직권조사를 통해 동일 가해자로부터 가석방을 무기로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 12명이 더 있음이 드러났고, 성추행예방 및 여성수용자의 인권에 대한 제도 개선을 권고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의 상당수가 수사기관 및 구금시설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들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감시방법으로서 외부기관에 의한 감시와 견제 시스템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감시를 주요일로 하는 국가인권기구의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독립성은 최소한의 조건이다.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보장은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원리
이러한 관점에서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할 때도, 국가인권위원회를 국가기관으로 할 것인지, 독립적 기구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지난한 과정을 거쳐 국가인권위원회를 국가기관으로 두면서 인권적 관점에서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는 입법·행정·사법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구로 설립해야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하였던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보장은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리와도 부합되는 것이다. 1993년 유엔총회 결의로 채택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은 국제사회의 경험들을 축적하여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인권기구가 국가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으려면,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국가인권기구가 정부나 여타 공공기관, 사적 단체로부터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권한과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국가인권기구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설치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인권위를 대통령직속으로 두려는 다른 의도는 없는지…
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직속기구화 방침에 대하여 3부(입법·사법·행정)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위가 헌법의 권력 분립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의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의 본질은 국가권력의 집중을 통한 권력남용을 막고 국가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모든 국가권력이 ‘3부’에 속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인권기구가 3부에 속하지 않는 것이 권력을 통제하고 권력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바람직하다.
한편 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되 직무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은 당연히 같은 행정부 소속이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 받을 때, 그 일이 가능한 것이며, 이는 헌법에서 사법부나 법관 신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다.
오히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이 되어 행정부에 속하게 된다면 국가인권위가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한 것과 국회에 인권과 관련된 법안의 입법 권고 등을 하도록 하는 것이 3권 분립에 위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을 고려하면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지위는 유지되어야 한다.
나아가 인수위원회의 국가인권위 대통령직속화 방침이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인수위원회가 단순히 삼권분립을 오해해서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인수위원회의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 직속기구화 방침에 대하여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노무현 정권시절 지나치게 권력층 코드에 맞추느라 보편적인 인류의 인권개념을 실천하는 역할보다 정권의 시녀 노릇을 충실하게 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업무 수행상의 독립성만 보장된다면 조직의 법적 위상은 문제가 아니라고 평했다. 국가인권위가 그동안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였다고 주장한다면 앞으로 그 기구의 독립성을 더욱 보장해야지 대통령 직속 하에 두겠다는 주장은 무슨 궤변인가. 이번에는 자신들의 코드에 맞추겠다는 의도를 비치는 건가. 이번 인수위원회의 국가인권위의 대통령 직속화 방침은 명분도 근거도 없다. 이는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문제이며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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