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가인권위 축소를 반대하는 이유 – 명숙 활동가
국가인권위가 있다는 것.
한 나라에 인권기구가 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사회구성원들의 인권 보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더불어 사회의 인권보장체계도 발전하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인권기구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부 및 사회 기관이 합리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입법.사법.행정부가 인권이라는 가치에 무게를 둬야 한다. 국민의 건강권을 예로 들어보자.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체계가 있어야 하고, 복지예산 또한 충분하게 책정되어야 한다. 여기에 건강한 생활을 뒷받침 할 노동조건과 주거환경을 보장해 줄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권침해는 발생하게 마련이다. 인권은 사회가 성장하는 폭 만큼만 변화하고 발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가인권기구는 정부 및 사회기관의 인권보장체계가 가진 미비점과 운영미숙으로 발생하는 침해사례를 파악하고 더 나은 정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또 사회구성원의 인권의식을 높이고 인권교육 및 차별관행을 조사하기도 한다. 더구나 많은 독재국가에서 보듯 국가가 인권보장을 해야 할 주체임에도 인권침해의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이 80%에 달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국가인권기구의 필요성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행정안전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조직을 축소하는 조치를 취했다. 여기저기에서 ‘인권후퇴조처’라는 비판을 내놓자 정부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일본에도 인권위가 없는데 이번 조직축소가 무슨 인권후퇴냐”라는 것이다. 정부는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음을 시인해버렸다.
우리가 지향하는 인권위의 역할은, 첫째, 피해자들에게 ‘빠르고 효과적인’ 구제절차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의 권리구제제도가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둘째, 법과 제도를 국제인권기준에 맞춰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 사법부에 강력한 권고를 해야 한다. 국제적 기준으로 바뀌면 많은 인권침해 사례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셋째, 공무원과 기업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의식을 고취시켜 인권에 가치를 둔 사회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인권위 독립성 훼손이자 인권후퇴조치
어떤 정부라도 국가인권위를 달갑게 보지 않을 것이다. 정부정책에 ‘인권’의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인권위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도록 자신들의 권한 아래 두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국제사회는 국가인권기구의 중요한 성격으로서 독립성을 꼽는다. 유엔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논의는 1960년대부터 시작됐고, 90년대에 본격화됐다. 1991년 10월에는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했고,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에서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이하 파리원칙)을 승인했다. 파리원칙에서는 ‘국가인권기구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명시적으로 인권증진 및 보호를 위한 능력을 갖춰야 하고, 가능한 한 광범위한 책무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천명한다. 그 외에도 국가인권기구의 구성 및 위원의 임명, 독립성과 다원성의 보장, 운영방식 등에 대한 세부 지침들도 합의했다. 물론 전 정부에서도 인권위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가 있었고, 인권위가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시도들이 몇 차례 있었다. 첫 번째가 인수위시절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화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작년 말부터는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나서 인권위 조직축소 및 개편으로 독립성을 훼손하려 하고 있다. “정책부서는 이 정도 규모로 교육부서와 통합하라”는 말은 사실상 업무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조직구조를 5본부로 할지 4국으로 할지 2국으로 할지에 대해서까지 행안부가 관여하는 것은 분명 업무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행안부 안대로 하면, 지원조직은 ‘기획조정관’으로, 인권교육본부와 인권정책본부, 홍보협력팀은 ‘정책교육국’으로 재편된다. 또 인권상담센터, 차별시정본부, 침해구제본부는 ‘조사국’으로 재편된다. 더구나 행정부가 인원감축을 마음대로 하는 상황에서 인권위와 인권위원들은 행정부 눈치를 볼 게 뻔하다. 게다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의 차별시정기구인 인권위 인력이 줄면 장차법은 사실상 힘을 잃는다. 이렇게 조직 축소 및 개편으로 인권위의 교육, 정책기능이 약화되면, 정부권력이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는 3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인권위 조직을 축소하는 ‘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령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현재 정원 208명 중 21%인 44명을 감원해 164명으로 줄여야 하고, 5본부 22팀인 조직은 1관 2국 11과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독립성이 생명인 인권위는 행정부가 축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설립 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국가인권위의 법무부 산하 재편안에 인권단체들이 헌법상의 독립을 주장하며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인권위는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구다. 따라서 인권위는 정부의 이번 조처에 항의하며, 헌법재판소에 직제 개정령(대통령령)의 법적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또한 조직 감축안에 대한 대통령령 효력정지가처분신청도 함께 했다.
이제 행정부가 저지른 인권침해와 월권행위에 대한 판단이 헌법재판소로 옮겨갔다. 헌재가 권력에 목을 숙이는 해바라기가 아니라면, 유엔을 비롯한 국내외 인권단체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헌재를 압박하고 인권위의 존재 의미와 역할, 독립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다.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인적 구성원의 독립도 중요한 사안이다. 현 위원장의 임기가 끝나는 10월 이후 제대로 된 검증절차를 거친 위원장을 만들지 못한다면 독립성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인권위의 독립성 훼손을 막기 위한 싸움은 ‘인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싸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권위원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