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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이버 모욕죄는 사이버 보안법 – 진보네트워크 오병일


정치적 의도 개입된 사이버 모욕죄


 


故 최진실 씨의 자살 이후에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정부는 자살의 원인을 인터넷 상의 ‘악플’로 몰고 가며 인터넷 실명제 확대와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촛불에 뜨겁게 데인 정부가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미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으로 故 최진실 씨의 자살을 이에 끌어들이는 것은 치졸한 정치적 수작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사이버 모욕죄는 이미 지난 7월 김경한 법무장관이 도입 필요성을 밝힌 이래 한나라당에서 끊임없이 던져온 이야기이다. 또한 인터넷 실명제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시행령 개정안은 이미 9월 초에 입법 예고된 상태였다.


 


정부가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하겠다는 근거는 ‘악플’ 등 사이버 상의 명예훼손이나 모욕행위를 강력히 단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의사불벌죄로 하여 당사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 및 (당사자가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처벌 수위도 일반 모욕죄보다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민의 언어생활과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의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인터넷 판 막걸리 보안법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억지스러운 측면들


 


우선 무엇이 ‘악플’인가. 또한 어느 정도의 표현이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모욕적인 표현인가? 누가 ‘MB는 무뇌아다.’라고 했다고 치자. MB야 기분이 나쁘겠지만, 부시를 악마로 표현하기도 하는 세상 아닌가. 국민들이 대통령의 실정과 무능에 대해 이런 식의 분노를 표현할 수도 없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머리가 나쁘신 것 같아요’는 악플인가, 아닌가. ‘MB는 지구를 떠나라’는? 무엇이 악플이고 아닌지, 어느 정도의 모욕적인 표현이 형사처벌될 것인지 도대체 누가! 판단하는가. 결국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좌우되지 않겠는가. 어떤 표현이 형사처벌이 될지 모호할 때, 누리꾼들은 자기표현에 대해 검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법률은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명백히 위헌이다.


 


또한 이미 형법에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있고, 정보통신망법에서도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에 대해 가중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이미 피해자가 원한다면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 더구나 객관적인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는 명예훼손과 달리 주관적인 명예감 또는 체면만을 보호하는 모욕죄는 대부분의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알아서 인터넷 상의 게시글이나 덧글에 대해 모욕 여부를 판단하겠다니!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 고발이나 하는 게 민망하게 느껴졌을까.


 


사이버 모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하는 것은 뉴라이트 단체의 토론회에서도 비판받은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경찰이, 고발도 없이 일반 시민들이 당하는 모욕을 수사해 주리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이버 모욕죄가 정부 관료나 정치인, 기업 등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통제하는데 정치적으로 악용되리라는 사실은 명확하지 않은가.


 



‘감시와 처벌’의 사회로 가는 지름길


 


영화 <데몰리션 맨>에서 미래로 간 실베스터 스탤론이 욕을 하자 즉석에서 벌금이 부과되는 장면이 나온다. 정치적인 악용 여부를 떠나, 정부가 특정한 표현의 허용 여부를 통제할 수 있는 사회는 엄청난 감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도덕 기준을 타인에게 강제하는 사회, 사람들의 언어생활까지 통제하는 사회. 정말 두려운 것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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