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인사회의 현실과 공익법률 활동_채지현 변호사
“이민사기를 당했습니다. 3만 달러를 주면 영주권을 받게 해 준다고 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고용주가 더 이상 영주권을 후원인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거금을 들이고 부당한 조건에서 일 해 왔는데… 영주권이 없어 아이는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13년 동안 단 하루 시민권 선서를 위해 반나절 조퇴를 한 것 외에 주 7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12시간 초과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몇 년전 뉴욕시 정전 사태 때는, 모든 교통이 마비된 상태에서 고용주가 일을 나오지 않으면 해고 시키겠다는 말에 퀸즈에서 맨하탄까지 4시간을 걸어서 출근을 했습니다. 그랬음에도 해고를 당했습니다. ” “집주인이 임대 계약서는 안 주고 임대료만 인상했습니다. 집수리를 요구하면 나가라고만 합니다.” 청년학교에 도움을 원하시는 분들의 사연이다. 청년학교는 미국 내에서 유일하게 인권, 이민, 노동, 주택 등의 종합적인 분야에서 한인들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단체이다. 여는말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들, 특히 신규 이민자들은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인 법률 서비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현재 뉴욕시 퀸즈의 플러싱 지역에 상당수가 거주하는 한인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공식 인구 집계인 ‘인구 조사 2000’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0년 사이에 뉴욕시 플러싱 지역의 아시안계 인구는 67%가 증가했다. 이러한 급속한 증가율은 신규 이민자의 대량 유입에 기인한다. 현재 플러싱 지역의 아시안계 인구는 약 67,000명이며 이중 2/3를 중국계(50%)와 한인(27%)이 차지한다. 이 지역의 아시안계 대다수가 평균적인 중산층 수입 이하의 소득수준을 보이고, 1가구당 수입이 다른 인종(백인, 흑인, 히스패닉)에 비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5가구중 1가구가 빈곤선 이하) 게다가 아시안계 가정의 54%가 영어 미숙자로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신규 이민자들과 그들이 처한 삶의 조건은 이들이 사회생활에서 제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고 많은 경우 부당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민자들은 법률 서비스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언어 문제나 이민 신분 미비, 그리고 고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편 미국 주류 사회엔 수많은 공익 법률 단체들이 활동하긴 하지만, 의사소통의 불편함과 정보 부재로 인해 이민자들이 용이하게 이용하기 힘든 실정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청년학교와 같은 커뮤니티 단체를 지원하여 법률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주, 시정부의 예산 편성과 집행에서, 뉴욕주의 발전을 이끌고 있는 주역인 이민자를 위해 소요되는 이민 서비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한인사회의 현황 아직도 미국 주류사회와 심지어 한인 사회조차도 이민자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민자가 미국 출생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실업률을 높인다는 불평을 하곤 한다. 이는 이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임금, 노동시간, 작업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 예로 필자가 2005년에 산업재해보상 개혁을 위한 컨퍼런스에 참가해, 13년 동안 주 7일,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고 초과수당도 지급받지 못한 한인 노동자의 경우를 소개하자 장내가 술렁거리며 사람들이 놀라워하던 일을 기억한다. 대부분의 반응은 아직도 그런 조건에서 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이민 노동자들이 기본권 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방 및 뉴욕주 노동법은 공히 주당 40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그 외의 노동시간에 대해선 평균 수당의 1.5배를 포함한 초과수당을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인 임금은 이민 신분에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받도록 보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과 초과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고의적으로 법을 어기는 고용주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인 사회의 경우는 법에 근거하지 않은 임금책정을 하고, 고용주는 물론 대부분의 노동자들도 이에 수긍을 하고 있는 관행이 만연되어 있다.
임대료는 수직 상승하고 임차인 개인에 주어지는 주거 공간은 줄어드는 가운데, 이 마저도 부족하여 기본적인 주거 조건을 갖추지 못 한 주택이라도 찾는 임차인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임차인들이 이민 신분이 없는 서류미비자라는 사실을 악용하는 임대인들도 많다. 또한 서류미비자의 숙원인 영주권을 취득해 주겠다는 이민사기 “변호사” 또는 “브로커” 등에 거액을 지불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이민 신분 부재를 이유로 본인의 억울한 사정을 말 못하는 이민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민자들은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법을 몰라서, 이민 신분 부재 등의 이유로 본인이 당하는 어려움을 해소하지 못하고 절망하고 있다. 결국 이들에게 유일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언어소통이 가능하며 비용의 부담이 없는 공익 법률 서비스이다. 해마다 400명이 넘는 한인 변호사들이 뉴욕·뉴저지에서 배출되고 있다. 이 중 대부분은 로펌에 취업하거나 개인 사무실을 개업하고 매우 적은 수의 신규 변호사들이 공익 법률 활동의 길을 택한다. 그나마도 공익 변호사가 되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미국 주류 사회의 공익법률 단체를 찾아가고, 실제 한인단체 등에 남아 헌신하는 변호사는 아직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그 수가 적고 또 좀처럼 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신규 이민자들의 증가로 한인 커뮤니티 내에 공적 법률 서비스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인 사회에 대한 인식은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지니고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라는 ‘편견’이다. 그러다보니 위에 열거한 한인 사회의 정확한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법률 종사자가 드물다. 그래도 공익법률 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한인 사회 내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해마다 미국 내 주류 공익법률 단체에서 일하는 한인 변호사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렇게 공익법률 단체에서 일을 시작하는 한인 변호사들은 단체의 성격에 따라 한인 사회에 교육 홍보 활동에 노력을 하고 직접 대변을 하기도 한다. 또한 현재 로펌 또는 개인 법률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변호사들도 한인 사회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익법률 변호사들과 연계해 무료 대변(pro bono)을 하기도 한다. 맺음말 공익 법률활동은 각 개별 의뢰인을 위한 정의 실현이 목적인 ‘법률부조/구조(legal aid)’보다 더 광범위하다. 의뢰인 개인의 침해당한 권리를 회복하는 정의구현은 기본이며, 교육 홍보 활동을 함께 수행하고 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이민자, 노동자, 임차인서의 권리를 보장받고, 시민적 의무를 다하면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한인 사회의 공익 법률활동은 확대 되어야 한다. 공익 법률활동의 길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고 도움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이 있고, 개인과 사회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