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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총괄이사

만나고 싶었습니다

공감이 만난 사람 –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총괄이사

공감 : 공감이 내년 2월로 2주년을 맞이하는데 따뜻한 세상을 향해 시작된 바람인 공감의 성장을 처음 설립의도에 비추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원순 : 공감에 대하여 뭐라고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고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감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크고 우리사회에 공감과 같은 공익적 모임이 없다는 점에서 공감은 그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러한 점에서 공감에 대해 기대와 관심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공익적 활동을 하는 로펌이 아니라도 개인적 단체가 많지만 우리의 경우는 변호사들이 공익적 공헌을 하고 싶어도 그러한 공간이 없습니다. 비록 법률구조공단 등이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민간기관으로서 공익활동을 모토하는 공감 같은 곳이 좀더 생겨나야 한다고 봅니다.

공감 : 외국의 프로보노 활동과 관련하여 우리사회의 공익법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주 * 프로보노란 라틴 문구인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의 약어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무료봉사를 뜻하며,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 법률서비스 등 공익활동을 말한다.)

박원순 : 외국의 프로보노활동은 큰 의의가 있지요. 실제로 외국에서는 법학과 학생들이 공익활동을 하는 곳으로 진출하려 하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택의 기준이 돈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김창국 변호사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할 때 제가 건의 하여 우리나라의 경우도 변호사에게 의무적으로 30시간의 프로보노활동을 강제하고 불이행시 벌금을 내게 하는 법안을 마련하였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벌금마저도 잘 내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공감 : 요즘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인권인데 변호사님이 생각하시는 인권이란 무엇이며, 이와 관련하여 변호사님이 특별히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원순 : 저는 유신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수감생활을 했었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독재시절의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활동의 경험들이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 생각합니다.
인권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그 중에서도 소수자의 인권이 핵심입니다. 유태인으로써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엘리비젤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림이 세계의 중심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민주주의에서는 고통 받는 소수가 소중하고, 소수라 하여 부당하게 인권을 억압 받아서는 안됩니다.

공감 : 변호사님이 변호사 활동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고, 변호사가 되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박원순 : 먼저 변호사가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하였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기보다 저에게는 제가 맡은 모든 사건이 다 소중합니다. 법정에 선 사람에겐 그 개개의 사건 자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니까요.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라는 책에서 구속은 개인 생활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법정에 선 사람에게 그 사건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요. 아마 제가 지금 변호사활동을 계속 했다면 전 아마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사건을 맡을 당시에 변론이유서를 쓸 때도 그냥 쓰지 않고 자료를 찾아 각주를 넣을 정도로 그 사건에 혼신을 다하였습니다. 이렇듯 변호사는 사건마다 혼신의 힘을 다 쏟아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당사자 같은 심정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변호한다면 10년을 버티기 힘들 겁니다.

공감 : 법조인이시면서 참여연대부터 희망제작소까지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셨습니다. 과거 검사생활도 하셨는데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사회개혁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텐데 민간 활동에 주력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원순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검사시절 경험을 보면 검사실에 있으면 늘 강도 , 절도 등 한정된 사람들만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경찰서 유치장 감찰을 위해 경찰서를 들렸는데 그곳에서 한정된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일선 검사로 청춘을 바치기엔 너무 소모적이라고 느꼈고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었죠. 자기일과 열정에 따라서 보람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것이 보람있다고 느꼈습니다. “High Risk, High Return” 이란 말도 있듯이 여러분도 남들이 가는 곳만 가지 말고, 남들이 힘들어 하는 새로운 곳으로 많이 진출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통해 세상을 보는 기회가 많게 되겠죠, 솔직히 요즘 사람들은 실력을 기르기 전에 자리를 먼저 탐하지만 그런 사람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감 : 총선시민연대의 참여연대부터 희망제작소까지 법과 시민운동 사이에 틈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법이 시민운동을 억압하고 감시하는 것도 같은 데요 법과 시민운동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원순 : 사회를 앞서가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에 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100여 년 전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던 운동가들은 감옥을 갔지만 현재 여성의 권리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습니다. 또 1950년대 미국의 흑인에 대한 “Equal but Seperate” 정책에 항의했던 루터킹 목사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 중에 한 명이 되었습니다.
실정법과 자연법 실정법과 이상에는 간격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지난 낙선운동에는 이러한 간격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참정권과 표현의 자유는 선거권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니까요

공감 : 앞으로 더 큰 날개를 펼칠 공감의 성장에 대해 기대하시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원순 : 공감은 개척적이고 실험적입니다. 단순히 소송지원이나, 법률자문 등의 법률적 지원의 차원을 넘어선 상징적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을 바탕으로 앞으로 또 다른 기관이 생길 수도 있고, 이러한 새로운 기관에게 공감은 그 자체가 모범이 되고 시발이 될 것입니다. 현재까지 변호사라는 것은 출세를 위한 자리고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을 배운 사람에겐 사회적 책임감이 존재합니다. 구한말 매천 황현 선생님은 한일 합방을 보고 자결을 하기 전 절명시를 남기셨는데, 그 시에 “가을 등불 아래 책을 펴고 있으니, 글 배운 자 노릇하기 어려워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글을 배우고 사회를 인식하면 그만큼 책임감이 커지게 되는 것이 지요, 이것이 곧 선비의 길이고, 독립운동가와 민주운동가 선배들의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인식이 법률가에겐 더욱 중요하고 이것이 바로 공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 공감 이형근, 백두산, 정수정 인턴, 염형국 변호사, 전영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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