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평택 대추리 사람들
만나고 싶었습니다
-평택 대추리에 다녀와서-
사진_ 전영주 간사_아름다운재단 공감
평택으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보이 풍경에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싶어……”라는 어느 가수의 노래가 떠올랐다. 그러한 감상은 잠시 뿐, 마을에 들어서 보이는 농경지 바로 옆에 둘러쳐진 철조망과 낮게 나는 비행기 소리, 평화를 부르짖는 플랜카드들이 ‘여기가 바로 대추리’임을 알 수 있었다.
대추초등학교 근처에 차를 대고 있는데 어깨에 삽을 맨 흙빛 얼굴의 남자가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에게 낮선 외부인은 더 이상 ‘손님’의 의미만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공감의 염형국, 소라미 변호사님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운영하는 대추리 평화법률상담소를 찾아갔다. 아직 상담을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는지 상담소를 찾는 이가 없어 잠시 상담소 문에 큼지막하게 메모를 남겨두고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차 한잔의 여유로움,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바로 평화
평화법률상담소 바로 옆에는 대추리에서 유일한 찻집이 있다. 찻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긴 머리가 인상적인 한 남자가 우리를 반긴다. 평화바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밀씨가 바로 이 찻집의 주인장이다. 전기가 끊겨 어두컴컴한 찻집에 앉아 1000원짜리 차가 준비되길 기다렸다.
“전기와 물을 끊어졌어요. 전기는 발전해서 쓰고, 물을 필요할 때만 모아서 쓰고 있어요. 화장실 이용수칙 보이시지요? 물이 귀해서 매번 물을 내릴 수 없어요. 물은 주인장이 모아서 한번에 내립니다”
봄인데도 찻집 안이 한기가 가득했다. 너무 냉랭했다. 법률상담하러 왔다는 말에 농번기라 모두 일하러 나가 상담 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우리가 찻집의 유일한 손님이었던지라 주인장은 이런 저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외부에서는 보상비 많이 받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편향된 시선으로 대추리를 바라보려 해요. 나 태어난 곳에 살다 죽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대추리는 1952년의 미군기지 신설로 강제추방 된 주민들이 인근 땅과 갯벌을 개간해서 만든 땅이에요. 이미 한 번의 뼈아픈 추방을 경험한 마을입니다. 옥토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 인줄 아세요? 힘들게직접 땅을 일구고 이제야 그 결실을 맺고 있는데 그 땅에서 나가야한다니……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찻집에 걸려있는 사진들 보이세요? 대추리 주민들이에요. 이렇게 착한얼굴을 가진 분들이 요즘은 세상에서 가장 큰 짐을 진 사람의 얼굴이 되버리셨지요.”
평화를 부르는 그림과 노래, 그 울림이 세상 끝까지 퍼지기를……
찻집 주인장의 도움을 받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가보기로 했다. 마을회관과 노인정을 지나니 포크레인으로 흙을 고르는 것이 보였다. 나무에 톱질을 하는 사람은 조각가, 삽을 들고 땅을 파는 사람은 뮤지컬 기획자, 나무를 심고 있는 사람은 단편영화 감독, 그리고 한 무리의 농활대 학생들, 깊게 파인 주름이 인상적인 할아버지…… 공사를 감독하는 사람은 가수 정태춘 씨였다. 원래 묘지 자리였던 땅을 평화 공원으로 바꾸기 위해 공사 중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정태춘씨의 고향은 대추리의 바로 옆 마을인 도두1리.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대추리 도두2리 주민 주거권 옹호를 위한 문예인 공동행동’이라는 긴 본명을 가진 ‘들사람들’의 회원인 것은 확실하나 정태춘씨가 대표나 회장이신지는 알 수 없다.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집행이나 실무부서도 없다는 이 알쏭달쏭한 문예인들의 모임. 그러나 이들의 흔적은 마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써 놓은 벽시, 화가들이 그려놓은 담벼락의 벽화, 찻집에서 본 주민들의 인물사진.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던가?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이곳에서 보여지는 예술의 흔적들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은 감히 무너뜨릴 수 없는 그것이 되어버렸다.
들 사람들의 어느 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대추리에서의 예술 활동의 목표는 높은 예술적 성취가 아닙니다. 이곳에 연고를 남겨 마지막에 주민들이 공권력 앞에 섰을 때 주민들과 똑같은 주체로서 나서기 위함이지요. 주민들을 돕는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상화하는 방식이 아닌 주민들과 같은 이 마을의 주체입니다.”
들사람들과 제주민예총, 영화인들, 그리고 우리 공감 식구들이 모두 정태춘씨를 따라 마을을 둘러보며 그의 고향인 이곳의 역사와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아기자기한 문패와 벽화들이 예쁘게 그려진 집들을 지나 곧 너른 평야를 만났다. 길 한복판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미사일, 저 멀리 커다랗고 울긋불긋한 허수아비가 보이고, 그 다음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강인 아산호, 지평선 저 끝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이 솟아있다. 강 안쪽으로 보이는 가장 흐릿한 저 멀리까지가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수용예정지다.
왼쪽을 돌아보니 미군기지가 보이는데 5시 정각이 되니까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몇 마디 연주하고 끝내겠지, 했는데 약 2~3분간 지속된다. 이곳 사람들은 매일 5시마다 싫든 좋든 트럼펫연주를 들어야 한다. 논을 따라 걸어가는데 마을 주민들이 씨를 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국가에서 용수로를 자꾸만 차단하기 위해 레미콘을 동원해 콘크리트를 부어대서 결국 모내기를 하지 못하고 바로 씨를 뿌리는 직파의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작년 농사가 잘 돼서 기대가 컸어요. 이런 땅을 두고 나가라니 기가 막혀요.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땅에서 농사 지으렵니다. 물을 길어다라도 농사 지을터요. 보셔요. 이 넓은 땅을…”
시골마을에서 흔히 짓는 농사- 올 봄의 농사 역시 수 십 년간 주민들이 해왔던, 그저 수십 한 번째의 농사일 뿐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미군기지의 존재는 이제 ‘자각’의 의미다. 그들에게 미군기지는 반감이라기보다 인근에 있는 그 무엇, 접근은 못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무엇일 뿐이었다. 푸른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오색 낙하산은 아이들에게, 미군 기지촌 내에만 있던 작은 수도꼭지는 어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 그러한 미군 기지를 주민들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다.
처음에 국가에서 토지수용에 대한 결심을 밝혔을 때 저항했던 곳이 황새울 영농단이다. 두어 대의 농기계가 있는 마당을 앞에 두고, 천장이 높은 1층 건물 오른쪽으로 난간도 없이 옥상으로 뻗은 계단을 올라가 이제는 수용예정지라고 불리는 마을의 너른 논을 다시 한 번 구경해보았다. 처음에는 이곳도 갯벌이라 바닷물을 막아 둑을 쌓고 짠물을 빼기 위해 민물을 담갔다 빼는 과정을 거친 후 높은 데 흙을 퍼서 낮은 곳에 메우면서 평평하게 만드는 ‘작답’까지 하여 농사지을 터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저 한가로운 시골마을인 것 같은데 정말 질곡이 많은 마을 역사다. 정태춘씨가 어릴 적에 초등학교 앞으로 돌맹이를 싣고 다니는 트럭이 끝도 없이 지나다녔다고 하는데 그걸로 기지 내에 활주로가 만들어지고 마을에는 커다란 돌산이 하나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농지가 미군기지로 수용되면 미군 측에서는 기존 150만평의 대지보다 낮다고 하여 이 넓은 땅을 2.5m씩 높이겠다고 하는데 그럼 저 멀리 보이는 산 몇 개가 없어져야 할까.
대추리 투어 해주시며 마지막에 부르셨던 정태춘 씨의 노래가 가슴에 남는다.
저 들에 불을 놓아 그 연기 들판가득히
낮은 논둑길 따라 번져가누나
노을도 없이 해는 서편 먼산 너머로 기울고
흩어진 지푸라기 작은 불꽃들이
매운 연기속에 가물가물
눈물 자꾸 흘러내리는 저 늙은 농부의 얼굴에
떨며 흔들리는 불꽃들이 춤을 추누나
초겨울 가랑비에 젖은 볏짚 낫으로 끌어모아
마른 짚단에 성냥그어 여기저기 불붙인다
연기만큼이나 안개가 들판 가득히 피어오르고
그 중 낮은 논배미 불꽃담긴 짚더미
낫으로 이리저리 헤짚으며
뜨거운 짚단 불로 마지막 담배 붙여 물고
젖은 논바닥 깊이 그 뜨거운 낫을 꼿는다
어두워가는 안개들판너머 자욱한 연기깔리는 그너머
열나흘 둥근 달이 불끈 떠오르고
그 달빛이 고향 마을 비출때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소작 논배미엔
짚더미 마다 훨훨 불꽃 높이 솟아오른다
희뿌연 달빛 들판에 불기둥이되어 춤을 춘다
※ 공감에서는 지난 4월 민변 평화법률상담소의 상담을 위해 평택 대추리에 다녀왔습니다. 대추리에서 만난 많은 분들과 나눈 이야기를 지면 관계상 모두 담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방부는 5월 4일 새벽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대의 미군기지 이전예정지에 군병력과 경찰력을 전격 투입, 대추분교에서 농성자를 퇴거 시킨 뒤 시설을 철거하고 기지이전 예정지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행정대집행을 시행했습니다. ※ 평택 대추리 관련 법률쟁점들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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