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방울 빛 한줄기’도 가질 수 없다는 것
1. 법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이 바뀌었는가. 시민단체들도 이제는 법의 지배를 이야기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은 시민단체들에게 일종의 휴지기였다. 한 해를 결산하고 다음해를 계획하는. 그러나 근래 들어서는 연말 정기국회 막바지에 이르러 이러저러한 요구를 가진 집단들이 국회 앞으로 모두 몰려들어 천막을 친다. 시민단체 핵심인사들은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을 설득시키는 데 힘을 집중하고 긍정적인 반응에 고무되기도 한다. 운 좋게 법이 통과되거나 개정된 집단은 기쁨을 마음껏 표출해보지도 못하고 머쓱해하며 천막을 접고 여의도를 떠나고 남은 이들은 믿었던 국회의원들에 대한 배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허탈감으로 어디로 가야할 것이지를 고민한다. 법의 지배는 무엇인가. 법은 어디에 있는가.
2. 법의 눈으로 보는 세상, 그리고 단전단수
불완전한 세상에서 나눔이나 시민운동 등이 필요한 이유를 법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법이 없거나 잘못되었거나, 있는 법이 지켜지지 않거나 접근이 어렵거나, 법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사회문제가 존재하는 등의 이유일 것이다. 서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단전단수’ 문제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의 평면이 존재한다. 생존과 직결된 공공재인 전기와 수도를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제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그것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의 연체를 이유를, 동시에 50%라는 높은 연체이자를 물리면서. 한전도 아니고 관리사무소에서 단전을 하는 경우도 빈번한데 민간업체에 가까운 관리사무소가 대체 어떤 근거로 입주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할 수 있는가. 공공재, 그리고 사회복지와 인권, 많은 논의와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한 영역이다.
법이 그 정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도 않은 영역이 우리사회에는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영역이 이주노동자 영역이다. 그것이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공감 때문이건 세계화시대의 ‘국제적’ 감각에 대한 동경 때문이건 많은 사람들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우선순위를 정할 때에는 투표권 없는 이들의 문제는 가장 후순위로 놓여지게 된다. 단전단수의 문제도 이러한 영역이 존재하는바 관리사무소가 직접 단전단수조치를 행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한전이 단전하는 것은 괜찮다는 말이냐, 왜 높은 연체이자에 대하여는 문제제기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우리가 이 문제로부터 단전단수를 접근하는 것은 법의 무지와 무시의 영역과 우선적으로 부딪침으로써 우리사회의 수준을 ‘원시’에서 최소한 ‘전근대’의 수준으로 올려보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임대주택 관리비 등의 연체를 이유로 한 관리주체의 단전단수조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단전단순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을 삼고자한다.
3. 임대주택 관리비 등의 연체를 이유로 한 관리주체의 단전단수조치
‘임대주택 관리비 등의 연체를 이유로 한 관리주체의 단전단수조치’의 문제점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 사실행위의 구성요소를 특정하여 그 적용법령을 명확히 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관련 판례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위 사실행위는 ① ‘임대’ ② ‘(공동)주택’ ③ ‘관리비 등의 연체를 이유로 한’ ④ ‘관리주체의’ ⑤ ‘단전단수조치’ 등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지며 이들 구성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사실행위만이 검토의 대상이 된다.
4. 법령 및 판례의 검토
우선, 검토의 대상은 (공동)주택이지 상가인 집합건물이 아니다. 양자는 적용법령을 달리할 뿐만 아니라 그 적용 법리에 있어서도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대법원은 “공동주택과는 달리 상가에 대한 단전 등의 조치는 구분소유자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적고 단지 영업을 하지 못함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해만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4. 5. 13. 선고, 2004다2243판결). 따라서 구분소유자가 집합건물의 규약에서 정한 업종준수의무를 위반한 경우, 단전, 단수 등 제재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집합건물 규약의 내용이 무효가 아니라고 한 판단(대법원 2004. 5. 13. 선고, 2004다2243 판결), 시장번영회 회장이 이사회의 결의와 시장번영회의 관리규정에 따라서 관리비 체납자의 점포에 대하여 실시한 단전조치는 정당행위로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한 판단(대법원 2004. 8. 20. 선고, 2003도4732 판결) 등은 (공동)주택의 경우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아니한다.
‘(공동)주택’의 관리관계 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법령으로는 주택법, 동법 시행령, 동법 시행규칙, 임대주택법, 동법 시행령, 동법 시행규칙, 공동주택관리령, 공동주택관리규칙 등을 들 수 있는데, ‘임대주택’의 관리 등에 대해서는 임대주택법이 주택법 및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우선하여 적용되고, 공동주택관리령과 규칙은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적용된다.
임대사업자 또는 주택관리업자가 임대주택의 관리주체가 되는데(임대주택법 제17조), 이러한 관리주체가 관리비 등의 연체를 이유로 한 단전단수조치를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① 관리주체가 수도, 전기에 대한 처분권한이 있는가의 문제, ② 임차인들과의 관리규약 등의 제정을 통해 위와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강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검토되어야 한다.
전기료, 수도료 등 사용료와 일반관리비 등 관리비는 명확하게 구별되며, 사용료 등에 대하여는 관리주체가 임차인의 징수권자에 대한 ‘납부를 대행’함에 불과함이 법문상 이론의 여지가 없으므로(임대주택법시행규칙 제7조), 전기료 또는 수도료징수권자의 처분은 별론으로 하고 관리주체는 수도와 전기에 대한 처분권한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한국전력공사가 혹서기(7월-8월), 혹한기(12월-1월)에 계약해지를 유예하고 전기료 연체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계속 공급하는 경우(한국전력공사 기본공급 약관 제15조, 한국전력공사 공급약관 세칙 제8조)에는 관리주체의 단전은 최소한의 명분조차도 찾기 어렵다.
임대사업자 등은 임차인대표회의와 임대주택 관리규약의 제정 및 개정 등을 협의할 수 있고(임대주택법 제17조의2) 그 협의 내용에는 공동주택의 관리에 관한 사항도 포함한다(임대주택법시행령 제15조의2). 그러나 이러한 조항이 임대사업자 등의 단전단수조치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임대주택에 대한 임대차계약은 임대사업자 및 임차인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는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사용하여야 하는데(임대주택법 제18조 제1항-제3항) 여기에는 관리비 등의 연체가 있는 경우 연체료를 가산 납부하게 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단전단수에 관하여는 어떠한 언급도 없는바, 법문의 해석과 임대주택의 공공성에 비추어 표준임대차계약서 혹은 관리규약 등에 이질적인 단전단수권한을 규정함이 적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은 “임대사업자와 임차인 간에 체결된 임대주택에 대한 임대차계약이 같은 법 제16조, 제18조, 같은법시행령 제14조 등에 위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법적 효력까지 부인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0.10.10. 선고, 2000다32055 판결). 그러나 위 사안은 추가표준계약서 작성과 변경된 임대조건의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 절차상의 하자가 있는 경우로서, 처분권한을 가질 수 없는 전기, 수도 등에 대하여 임대사업자에게 처분권한을 부여하는 경우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또한 주택임대차보호법보다 임차인에게 불리한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임대주택법이 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고(임대주택법 제18조 제4항) 동법 제3조가 임대주택의 ‘관리’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된 사항 외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관리주체에 의한 단전단수조치를 관리규약 등에 규정하였더라도 이는 임대주택법 뿐만 아니라 강행규정으로서의 주택임대차보호법(동법 제10조 참고)의 취지에 어긋나게 된다.
한국전력공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임대주택의 경우에는 ‘아파트 종합계약’의 의하도록 되어 있는데 ① 계약의 주체가 관리주체가 아닌 입주자이고 ② 그 계약서에 관리주체에 의한 단전 등에 관한 어떠한 규정도 없을 뿐만 아니라 ③ ‘표준 아파트 종합계약서’ 제8조(약관의 적용 및 해석)가 “본 계약서에 명시되지 아니한 사항은 을(한국전력공사)의 전기공급약관, 전기공급약관시행세칙, 신규업무처리지침 및 요금업무처리지침에 의하며 해석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상호 협의하여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한국전력공사와 관리주체 간의 계약(?)에 근거하여 관리주체가 단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 하겠다.
5. 법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법을 바꾼다는 것
‘임대주택 관리비 등의 연체를 이유로 한 관리주체의 단전단수조치’는 임대주택법 뿐만 아니라 주택임대차보호법 취지에 어긋나고 관리주체의 권한 없는 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형법 제366조, 전기사업법 제100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임대주택 임차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는 사회복지관, 관리사무소, 한국전력공사 그 어디에 연락을 하여도 위와 같은 단전조치에 관련한 뚜렷한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당연히 합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깝다는 반응,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반응, 자체규약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냐는 반응. 법에 대한 무지는 법에 대한 무시를 낳고 피해를 입은 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는다.
한국전력공사, 지방자치단체, 국회 할 것 없이 특히 겨울철이 다가오면 단전단수가구에 대한 온갖 대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부 시혜적인 지원이 좀 이루어지다가는 다시 잠잠해진다. 우리는 사회문제를 바라봄에 있어서 과연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진지한 만큼 얼마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법을 지킨다는 것, 그리고 법을 바꾼다는 것, 매일매일 곱씹어야하는 화두다.
공감지기
- 이전글 : 개미변호사의 공익 활동기
- 다음글 :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의 변호사로서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