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권석천 (JTBC 보도국장)
제길.
지금 생각해도징그럽게 더웠다.
올 여름 얘기가 아니다.
한 해의 끝에 무슨 일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했던 2016년 여름 얘기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흘러내렸다.
무더위 탓만은 아니었다.
그해 여름 내내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이용훈 코트(2005~2011)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힘이 들었던 건 박시환 전 대법관(이하 경칭 생략)과의 인터뷰였다.
삼성 에버랜드, 국가보안법, 긴급조치, 조봉암 재심, PD수첩, 위법 압수수색….
박시환은 그가 주심을 맡았거나 소수의견을 썼던 전원합의체 판결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배경을 설명해줬다.
인터뷰는 한 번에 4~5시간씩 걸렸다.
기진맥진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와 헤어진 다음엔 카페 의자에든, 사무실 소파에든 몸을 뉘어야 했다.
그 이유는 논쟁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엄청난 감정 노동이란 것이 컸다.
“어휴. 대법관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나쁜… 말도 안 되는 짓들을.”
판결문 읽다가 박시환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몇 년이 지난 일인데도 오늘 일어난 일처럼 흥분했다.
소수이기에 당해야 했던 설움과 좌절, 분함 때문이었을까.
그때마다 감정의 쓰나미가 나를 덮치곤 했다.
(8~9 차례의 인터뷰가 끝난 뒤 박시환은 “덕분에 속이 시원해졌다”고 말했다. 그에게 ‘박 대법관님, 제가 받은 트라우마는 누구에게 보상받아야 하나요?’라고 묻고 싶다.)
박시환이 다수 대법관들과 맹렬하게 부딪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압박감 때문’이라고 했다.
“권 기자. 내가 대법원에 들어갔을 때 동료·후배들의 기대가 컸어요.
‘그 난리를 치고 대법원 들어가더니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느냐’는 말은 죽어도 듣기 싫었지.
대법관 6년간 한시도 그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진보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악을 쓰곤 했지.
다수 대법관들은 소수가 말할 기회조차 빼앗으려 하고….”
국가보안법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을 앞두고 소수의견을 쓸 때는 한 달 가까이 밤을 새워야 했다.
눈의 핏줄이 터지고 안구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선고 직전까지 갔던 ‘전교조 시국선언 무죄’ 판결이 일부 대법관의 표변으로 무산됐을 때는 절망감으로 곤두박질쳤다.
‘선고 연기’로 결론나자 그는 김지형 대법관에게 말했다.
“김 대법관, 우리 둘이서 죽어버리자.”
사람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박시환이 전형적인 법조인 상(像)은 아니라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까.
흔히 말하는 ‘좋은 법조인’은 점잖고 냉철하며 균형감각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머리카락을 둘로 가를 만큼 날카로운 지성에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고, 손짓 하나에도 교양이 넘치는….
내가 본 박시환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점잔을 빼지도 않고, 균형감각 쯤은 우습게 여긴다.
기분이 좋을 땐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감정이 복받칠 땐 굵은 눈물을 흘린다.
세련된 면모는?
글쎄, 미안하게도 발견하지 못했다.
교대 전철역 부근을 반팔셔츠 차림으로 출몰하는데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다.
음…솔직히 말하면 존경스럽지는 않다.
(존경스러움이란 범접할 수 없는 뭔가를 발견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알면 알수록 존경스러운 구석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논리도 감정의 깊이에 따라 그 울림 폭이 달라지는 것임을 그를 만나고 알게 되었다.
박시환은 자신이 믿는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개인적인 인연이나 정에 이끌려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사사키 아타루)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을’ 사람이다.
만약 내가 박시환과 생각이 다른 동료 대법관이었다면 그에게 넌더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언젠가 점심 식사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달리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내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하게 됐을 때였어요.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나 자신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잘못한 게 드러나
후배들이 내게 침 뱉고 돌아서면 어떻게 하지…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지요. 이게 최후의 유혹이구나. 내 이름 지켜야겠다고 하는 것이. 이름까지 내던질 각오가 돼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고, 뭐든 해낼 수 있는 거구나.”
그 말에 많은 게 담겨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일정한 위치까지 올라간 많은 사람들이 권력이나 돈의 유혹을 넘으면 마지막에 스스로의 이름을 어떻게 남기느냐는 물음과 직면한다.
대개는 이 물음 앞에서 머뭇거린다.
보라.
얼마나 많은 위인들이 위기의 순간에 타협과 절충을 택했는가.
원칙대로 돌파해야 할 때 ‘조직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물러서곤 했는가.
차라리 그때 이름을 걸고 결판을 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차례 파국을 맞는다 해도, 상당기간 시련이 이어진다 해도 그것이 조직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길 아니었을까.
그들이 진짜 지키고 싶었던 것은 조직이 아니라 자기 명예, 자기 이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혹은 조직이나 명예, 이름에 가려진 자신의 자리였거나.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놓친 뒤 임기 채우고 결국 그리 명예롭지 못한 퇴장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위기일수록 흔들림 없이 원칙에 따라야 한다.
김명수 코트에 하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수사의 한복판에서 “협조하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장 전담 판사들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을 왜 대법원장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이의 제기에도 일리가 있다.
다만 사태를 방관하는 듯한 모습은 실망스럽다.
하긴 김 대법원장 뿐이랴.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나를 포함한 먹물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몇 푼 안 되는 지식도, 명예도, 이름도 사회에서 받은 것이다.
떠날 때는 모두 돌려주고 가겠다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
수 없이 불렀지만 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명예와 이름이 다른 게 뭘까.
명예는 남들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면, 이름은 내가 나에 대해 갖는 이미지 아닐까. 당신은 명예는 물론이고 자신의 자화상도 과감히 내던질 수 있는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버려야만 “산자여 따르라”며 앞서서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아, 이 얘기 하려고 박시환을 등장시켰냐고?
덧붙이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우리는 결코 완벽하지도,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얼굴도 각양각색이고, 성격도 천차만별이다.
법조인은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거나 늘 기품 있게, 절도 있게 살아야 한다는 꼰대 말씀은 잊어버리라.
저마다의 개성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하라.
‘동네변호사 조들호’
‘무법 변호사’
‘미스 함무라비’
‘친애하는 판사님께’….
TV 드라마들은 시민들이 얼마나 기존 법조인들 모습에 식상해하는지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법조인 이미지는 엘리트들의 그것이다.
엘리트들은 입으로는 봉사와 헌신을 이야기하지만 눈은 ‘다음 자리’를 향하고 있다.
그들이 봉사하고 헌신한 것은 윗사람 혹은 자기 자신이다.
숱한 ‘검란’(검찰 분란)이나 ‘사법농단’ ‘재판거래’ 의혹이 그 증거다.
인정하자.
우린 모두 이상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지금 법조계에 필요한 것은 기암괴석들이다.
어쩌면 그런 어벤져스들이 자기 이름에 흠이 갈까 걱정하는 수퍼, 울트라, 엘리트들을 대신할 때만이 지구에도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지 모른다.
글_권석천 (JTBC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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