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성공회 뒤뜰에서 벌이고 있는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농성장에서 젊은 변호사 두 사람을 만났다. 아름다운재단의 변호사그룹 “공감”에서 이주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해 변호사를 파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기다 그 자리에 여성변호사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었으니,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력히(?), 그러나 간절하게 우리 센터에 여성 변호사가 필요함을 협박(?)에 가까운 역설을 하였다. 그 결과 소라미 변호사가 이주여성인권센터라는 이름이 길어서 이여인터로 줄여 부르고 있는 우리 센터에 파견이 되었다.
처음 농성장에서 보았을 때 농성장 분위기도 우중충 했고 소라미 변호사도 겨울옷을 입은 터라 상큼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랬는데 초봄이 되어 소라미 변호사가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그야말로 봄기운을 가득 담은 하얀 아기 나비 같은 모습이었다. 이를 어쩌나? , 순간적으로 우리 이여인터는 아기 나비가 앉기에는 너무 거친 꽃 같아 염려가 되었다. 솔직히 아름다운 재단에 변호사 파견신청을 하면서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변호사가 와서 도움을 준다면 얼마나 주겠는가? 그 기간 동안에 의식화교육을 해서 이주여성문제에 관심을 갖는 변호사 한 사람 만들자” 하는 불순한 동기 하나에 기왕 여성 변호사가 오니까 “때는 이 때다!” 하고 맡길 일을 한보따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니, 내심 찔린 것도 사실이다. 시치미 뚝 떼고 그 무거운 짐을 소변호사 머리에 올려놓았다.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마다 오는데, 올 때마다 짐을 한가지 씩 더 보탰다. 아니, 이건 분명 우리 때문이 아니라 소라미 변호사가 일거리를 몰고 다니는 팔자인 것이 분명하다. 소변호사가 온 후로 우리 이여인터에 상담건수가, 그것도 법률적으로 처리해야 할 상담건수가 날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얀 아기 나비는 우리 상담팀과 손발이 맞아 열심이다. 소변호사 선배님이 안쓰러워 한대로 이 찌는 여름에 에어컨은 커녕 간신히 선풍기 한대 있는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상담내용을 정리하고 법원으로 뛰어다니고, 하얀 나비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더위에 뛰어다니느라고. 자연히 의식화교육은커녕 우린 소변호사가 일에 질려 도중에 도망갈 까봐 은근히 걱정을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소변호사는 어느덧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이주여성들은 생산직에서 일하는 여성과 국제결혼이라는 방법을 통해 한국에 이주하는 여성들, 성산업에서 일하는 성매매여성들 세 부류가 있다. 우리 이여인터는 이들 여성들의 산전산후 건강관리와 다문화 여성들의 결혼생활에서 생기는 갈등과 법률적인 문제해결, 한국사회에 통합하기 위한 한국어교육과 문화교육에 도움을 주는 일, 이주 여성들을 위한 정책 개발과 법률제정운동, 지구화시대 이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법률적인 문제는 여간 골치 아픈게 아니다.
국제결혼을 한 이주여성들 문제는 대부분 이혼과 아이 양육권, 면접권, 국적법 문제 등의 문제인데, 상식을 넘어서는 전문적인 법률영역 앞에서, 우리 비전문가들은 이만저만 당혹스러운 게 아니다. 소라미 변호사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법률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기술을 하나씩 습득해가고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 과정에서 가끔씩 소변호사에 대한 질투도 일어난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온 내담자들이 소라미씨가 변호사라고 소개하면 태도가 싹 변해서 어찌도 그리 적극적인 태도로 변하는지, 변호사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위력에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다. 변호사가 존재하는 것 자체로, 변호사가 자신들의 문제를 듣고 있다니까 우리 이여인터에 대한 신뢰도 글자그대로 업그레이드 되기도 한다. 이건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부수효과다.
얼마 전부터 소라미 변호사와 우리 이여인터가 의기투합해서 일을 하나 벌였다. 이주여성을 위한 법률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이 막 시작되었는데 일차로 정한 파견기간 6개월이 다 되어가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소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일상적인 변호사 현장으로 돌아가는게 이익이 되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젊을 때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하고 함께 지내는 것이 팔십 인생 길게 보면 삶에 유익하지 않겠느냐고 괴변(?)을 토하기도 하지만, 소변호사를 놓칠 것 같아 우리 입장에서는 참으로 애석하고 속 쓰리다. 공감에서 나온 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주여성을 위한 여성변호사의 필요성과 역할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잘 될려나? 이 참에 아름다운 재단과 공감에 데모하러 갈까?
소변호사 계속 남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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