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도 언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최근 한국농아인협회를 통해 청각장애인이 우리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알 수 있는 한 사례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상담을 한 청각언어장애인(대개의 청각장애인은 언어장애인이기도 합니다)은 서울 근교의 신도시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있었던 그날도 그는 노점을 준비하기 위해 도로가에 차를 정차시키고 짐을 내리고 있던 중 주차단속원들에 의해 주차위반딱지를 떼일 처지가 되었습니다. 노점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차위반으로 인한 과태료는 하루 매상에 해당할 만큼 적은 돈을 아니어서 주차단속원들에게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들을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으니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손으로 빌고, 몸으로 막고, 분절되지 않은 음성으로 소리를 지를 수밖에요. 이러한 실랑이 속에서 청각언어장애인임을 안 주차단속원들이 거친 말과 심지어는 폭행까지 하였는데, 경찰의 수사과정에서는 희안하게도 도리어 공무집행방해의 혐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화를 내지 말고 한번만 봐 달라’는 의미로 양손 검지를 세워 머리위에 가져가며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머리를 흔들며 소리치는 모습과 답답함에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때리는 행위는 협박으로, ‘무작정 외면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달라’는 의미로 걸어가는 주차단속원들을 잡은 행위와 주차단속원들의 폭행에 ‘때리지 말고 말로하자’는 의미로 때리는 주차단속원들을 껴안은 행위는 폭행으로 둔갑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처음 파출소에 연행되었을 때는 수화통역사도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조서작성 요구를 받았고 유치장에 감금되어 서너 시간이 지난 후에야 수화통역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 사건은 수사가 끝나고 법원에 폭행죄로 약식명령이 청구된 상태입니다. 약식명령결정이 내려지면 정식재판을 통해 이 분의 억울한 사정을 변론해 보기로 했습니다. 주차단속원들의 적법한 공무집행, 수사과정에서의 청각언어장애인의 권리나 적법절차의 준수를 문제 삼기 이전에, 일반인과 청각언어장애인과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부재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권력의 배려 없음이 더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수화(手話)도 언어다
덧붙여 제가 최근 알게 된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 수단인 수화는 농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농인의 생애 전반에 걸쳐 통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언어라고 합니다. 언어와 문화는 인간의 주요한 특징입니다. 언어의 주요기능이 정보의 전달과 의사소통에 있다면 지금과 같은 정보화시대에 언어란 곧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청각장애인들은 손짓, 몸짓, 얼굴의 표정 등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수어(手語)는 인지(人智)가 미분화된 원시시대에 인간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을 법한 손짓, 몸짓에 견줘볼 때 언어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구화교육과 수화교육 중 어느 것이 청각장애인의 사회적응 능력에 있어 더 효과적이냐라는 논쟁이 있기도 했지만, 수화는 또다른 의사소통의 수단을 필요로 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모국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화언어는 비언어로 치부하거나 저급한 의사소통양식으로 매도되기도 하였는데, 수화는 일반 언어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대체수단이 아니라 엄연히 언어로서의 문법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고, 일반 언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수화는 음성체계를 따르지 않고 시각운동체계를 따른다는 것뿐이라 합니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농아인들의 뇌는 수화를 받아들이게 구조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는 손이나 몸짓으로 표현되는 수화가 단순한 시각․공간적 행동과는 별개로 언어영역에 속하고 음성언어의 보조수단이거나 서비스가 아니라 지구상의 수많은 언어중의 하나임을 의미합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이 조금 불편한, 비유하자면 우리사회에 익숙한 외국인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불편함과 차이가 차별로 확인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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