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하나]장애인방송, 함께 쓰는 희망노트가 갖고 있는 작은 희망 – 김동희
김동희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마포라디오DJ)
요즘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장애인이 출연하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불편하다’는 여론 때문에 방송에 나올 수 없었던 장애인들이 이제 심심치 않게 나오니 그렇다.
어릴 적 방송을 향한 꿈을 꾸었고 모 단체 활동을 하면서 시각장애인 녹음 도서를 10년간 제작하면서 방송의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2003년 장애인방송아카데미를 수강하고 KBS3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 리포터로 3개월 활동한 것이 나에게는 방송에 대한 열망을 더욱 크게 만들었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넘치는 끼와 자질을 갖고 있는 장애인들을 많이 볼 수 있고 방송을 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은 더욱 많이 있다. 그러나 정작 메이저 방송에서는 “방송을 할 수 있는 검증된 장애인이 없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장애인들의 방송 접근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방송의 검증된 장애인이 있으려면 어디선가 방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정작 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출구가 확보되지 않은 시점에서 장애인 방송 검증이란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요즘 장애인 방송국을 추진하자는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고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곳도 있다. 장애인들만의 방송국에서 장애인들끼리 방송을 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역에서도 통합이 아닌 분리란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수밖에 없다. 현존하는 방송 프로그램 중 장애인이 출연하거나 장애인 프로그램이 공존해야만 진정한 사회통합이라고 할 것이다.
2006년 마포구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건립하고 난 후 나는 공동체라디오 마포FM을 만났고 장애인 프로그램을 제안하게 되었다. 비장애인이 만드는 시혜와 동정이라는 획일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방송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의 시각으로 제작되는 편견 없는 프로그램, 그것을 만들고 싶었고 방송을 경험하며 검증할 수 있는 방송 그래서 타 방송에 접근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다.
2007년 1월 1일 첫 방송을 내 보낸 이후 1년이란 시간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첫 방송을 할 때 떨림과 설렘은 회를 거듭하면서 엉성한 대본과 리딩을 수정하고 연습을 거듭하는 과정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속에서 방송팀원들은 힘들어 했다. 방송팀원 모두가 아마추어로서 열심을 내었지만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했다. 그런 중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을 준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를 통해 우리 장애인 방송 ‘함께 쓰는 희망노트’는 라디오 어워드 대상을 받게 됐다. 라디오 어워드는 전국 여덟 개 공동체 라디오 협의체인 커뮤니티 라디오 협의회에서 주는 상이었다. 방송 7개월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방송팀원들의 실력은 점점 향상되었고 기쁜 일은 그로부터 계속 되었다.
함께 쓰는 ‘희망노트’ PD는 KBS3라디오 꼭지 작가로 활동하게 됐으며 방송팀원 중 3-4명이 인터넷 방송국 MC로 리포터로 활동을 하게 됐다. 방송을 하는 팀원 중 50세가 훨씬 넘은 중증 장애인이 있는데 평생에 글이란 것을 써본 경험이 전무했고, 글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읽어본 경험도 없었는데 우리 프로그램에서 조금씩 경험을 쌓은 결과 타 인터넷 방송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성과를 얻게 됐다. 그렇게 그 사람은 스스로를 매우 대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일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제 2008년이 밝았다. 나는 이제 ‘함께 하는 희망노트’에 함께 하고 있는 팀원들에게 일정한 출연료를 지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공동체 라디오는 자원봉사 시스템이어서 지금까지 우리 팀원들은 거의 출연료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도 열심히 하는 우리 팀원들 노력에 상응하는 댓가를 마련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또한 좀 더 많은 장애인 방송인들이 기존 방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이루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올해 들어 공동체 라디오도 광고방송이 허용되었다. 광고 수주를 하려면 내용적 경쟁력은 물론이고 장애인 방송인들의 역량 또한 상승해야 한다.
기존 방식처럼 연예인들을 출연시킴으로서 청취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방송인들이 좋은 내용의 방송을 만들어 연예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장애인 방송인들이 기존 방송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때문에 경쟁력을 기르고 광고를 수주함으로서 또, ‘우리는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우리는 당연히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대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방송팀원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또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고 그 어려움으로 인하여 좌절을 맛보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낙오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우리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방송을 꿈꾸는 많은 장애인들의 희망을 밝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방송팀원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월 ․ 수요일 방송과 화 ․ 목요일 재방송으로 편성 돼 있지만 일주일 내내 하는 줄띠방송, 녹음 방송에서 생방송으로 그 영역을 계속 넓혀 가면서 지금 함께하고 있는 13명의 방송팀원이 15명 20명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고 아마추어 방송인을 뛰어 넘어 프로 방송인으로 하나, 하나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나와 우리 마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모두는 아낌없는 지원을 해 나갈 것이며 방송위원회의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건의를 해 나갈 것이다.
※ 지금까지 우리 ‘함께 쓰는 희망노트’를 제작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신 마포 공동체라디오 마포FM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애정을 갖고 청취하시는 마포주민과 인터넷을 통해 다시듣기를 하시는 전국에 장애인 청취자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마포 FM 홈페이지 : http://www.mapofm.net/)
정리 – 이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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