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갈래? – 염형국 공감 변호사
[공변의 변]
어린이집에 갈래ς
염형국 공감 변호사
우리집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인권변호사(?)
얼마 전의 일이다. 아내가 나에게 딸아이를 2월달에 어린이집에 안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어차피 현재 다니는 어린이집이 2월말이면 문을 닫아서 어린이집을 옮기긴 옮겨야 되는데 2월은 설연휴가 있어서 노는 날도 많고, 막내도 그동안 심심하니까 같이 집에서 놀게 하다가 3월에 같이 보내자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연락해 딸아이를 2월에는 안 보내기로 하였다고 얘기를 하니 끝까지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어찌나 서운해 하시던지 다시 고민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린이집에 다니는 사람은 딸아이인데 정작 우리 딸아이 본인의 의사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고 어른들끼리만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고 있었다. 딸아이에게 2월에 어린이집에 계속 다닐 건지 아니면 한달 쉬고 싶은지 물어보니 얼굴을 찡그리며 안 다닌댄다.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의 원장님께서 욕심이 많으셔서 이것저것 많이 시키고,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다니셔서 부모인 우리는 감사해하면서 만족해 하고 있었는데 그게 많이 힘들었나보다. 반성이 많이 되었다. 소수자의 인권옹호를 위한다며 활동하고 있는 내가 정작 우리 가정에 있는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었던 것이다.소수자들 그리고 우리들의 자기결정권
우리는 너무 쉽게 부모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 교육을 강요한 것이 아닌지, 친권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의사도 확인하지 아니하고 아이들에게 너무도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해 온 것이 아닐까. 장애인의 문제, 노인의 문제, 더 나아가 국민들의 문제를 그렇게 처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장애인의 경우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수용시설로 보내지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수용시설에 보내져 선택권은 일체 봉쇄당한 채로 주는 대로 먹고, 입고, 잔다. 심지어는 장애인들 개인에게 국가로부터 지급되는 장애수당도 시설 측에서 관리를 한다. 잘 관리만 해주어도 괜찮을 수 있는데 그 수당으로 시설에 필요한 시설 집기들을 구입하고, 시설 운영경비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니 괜찮은 것이 아니냐고 한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들도 있을 텐데 자기 돈으로 시설 집기를 사고 시설운영경비로 사용해도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게 말하였다가 시설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장애인들이 더 억울한 것은 성폭행을 당하고, 범죄피해자가 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피해자 자신의 진술을 믿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왜 피해자 본인의 진술보다 가해자의 진술이 더 우선시되고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올 4월부터 시행되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제7조에서는 ‘장애인은 자신의 생활 전반에 관하여 자신의 의사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한 집안과 마을의 어른으로서 존경받고 권위를 인정받았던 노인들이 급속한 변화와 경쟁의 시대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였다. 요즘 들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행각이 증가하면서 일부에서는 노인들이 스스로 매매 등 법률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반드시 자식들의 동의를 얻도록 하여 사기피해를 사전에 예방하자는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사기 피해를 미리 막을 필요는 있지만 노인들이 물건을 살 때마다 일일이 자식들에게 동의를 구해야한다는 것은 해답이 아닌 것 같다. 노인과 지적 장애인을 위한 성년후견제도의 도입도 최대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지원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그러면 일반 국민들은 어떠한가. 자기 동네에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오고, 화장터가 들어오며, 국토 전체를 관통하는 대운하가 뚫리는 일에 있어서도 일반 국민들은 자기 의견을 내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한 일들은 나랏님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는 일이므로 일개 국민들이 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최근에 벌어졌던 하남시에서의 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의 진행과 대운하에 관한 논의를 보면 예전과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기의 일을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되어 있던 그렇지 않던 간에 당연히 권리로서 보장받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러한 자기결정권이 이제 법에 규정되어야만 보장이 된다. 아니 법에 규정되더라도 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자기결정권도 법에 규정하여야만 하는 시대가 오기 전에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의 의사를 꼭 물어서 결정해야 한다.
ps. 결국 우리 딸은 서운해하시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요청에 못 이기는 척 2월에도 어린이집을 다녔다. 하지만 설 연휴도 끼고 가기 싫다는 때가 많아 반도 채 못 다니고 말았다. 아깝기는 하지만 우리 딸의 결정이니 따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