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와<공감>– 황의중
난 참 눈물이 많다. 혼자 눈물을 잘 흘린다. 나이 오십이 넘어도. 고등학교 때인가 남자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 눈물 흘리며 망설인 기억이 한 번 있고 그 이후론 별 거리낌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린다. 자연스러운 즉 꾸밈없는 일이고, 또 건강에도 좋단다. 남성주의에 대한 저항도 좀은 묻어 있을 테고. 하다못해 수능시험 감독하면서도 울었다. 1교시 언어영역의 듣기평가 방송을 듣는데 눈물이 주르르 나온다. 시험감독이 이래도 되는 건지? …. ‘뭐 아무도 안 봤으니..’ 오늘 낮에도 마찬가지였다. 운전하면서 들었던 라디오 방송 때문이다. 작년 이맘 때 겨울이었다. <공감> 2주년 기념식이 있다고 해서 갔다. 가고 싶었다. 아니 가야 될 이유도 있었다. 일본의 어떤 공익변호사단체가 한국 변호사들과 교류하고 싶다며 주선을 부탁 받은 것도 있어. 한국일보사 강당이었는데, 그 날의 감흥을 적어 둔 것이 있다. “야, 일본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 훨씬 위에 있다.” 산뜻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노래를 두어 곡 부른 뒤, <노찾사>의 인사말, 모두 공감했다. 그 날 우리가 <노찾사>에게 보낸 박수 속에는 노래에 대한 답례보다 이 말에 대한 공감이 더 많이 담겨 있었으리라.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과 힘.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여기까지였다. 지금 다시 말을 조금 수정했지만. 산뜻한 충격, 따뜻한 희망이었다. 5년간 일본생활에서 돌아 와, 늘 일본과 우리를 비교하고 있었을 때였다. 물론 그 자리에서 후원회 입회원서도 써 냈고 교류 대상도 정해졌다. 오늘 오후 <공감>에서 전화가 왔다. 뉴스레터에 글을 하나 써 달라고. 바로, “예, 좋습니다”라는 답에 상대가 오히려 의외라는 듯,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슨 <쉼표하나>라는 난인 듯한데, 기획의도도 모르고 내가 경솔하게 즉시 O.K한 것은, <공감>에 대한 이 애정, 아니 우리 사회에 이런 ‘웃기는 년놈들’이 있다는 이 뿌듯한 마음을 언젠가는 주위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아니 알려야 된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또 작년 뭔가 써 둔 것이 있다는 기억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오전 라디오에서 들은 <한나>의 이야기도 겹쳐지면서.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뭐 <공감>이 아름답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음, 모르겠다. “얘들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다. 이것도 꽤 강렬한 열망이다. 그래서 내년엔 담임을 다시 맡을 마음 준비도 하고 있고, 또 머릿속 리스트에 이 사람 저 사람을 집어넣고 있다. 그 중에 <공감>의 변호사님들도 들어 있다. 술 마다 않는 정정훈 변호사님이. “내가 <공감> 말했나?” 아니. 며칠 전, 마누라에게 한 소개이고, 사람들 만나 하는 소개의 첫 머리다. 일본 변호사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들도 <공감>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이다. 어찌, 그런 일들이 가능한가? 어찌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 질 수 있는가? 이 땅에. 큰 자랑거리이다. 다시 <한나>로 돌아올까? 세상이 어둡고 힘들다고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세상(한국사회)이 어둡다는 것은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인식이다. <한나>와 <공감>이 그리는 사회 역시, 입에 침 튀기는 그런 사회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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