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별도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인가 – 박종운 변호사
공감포커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장애인차별철폐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날입니다. 2006년 장애인의 날을 맞으며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준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2005년 9월 민주노동당 등 국회의원들을 통해 발의되어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도 함께 제정하라는 것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에서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안 된다. 독립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함께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사회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도 쉽지 않은데 장애인차별금지법까지 제정하자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인권위가 있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별도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필요 없는 것 아니냐,”, 심지어는 “결과적으로 일이 잘못되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2002년에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을 내놓기 시작했고 2003년 3월 15일 법제정위원회 구성, 4월 15일 공식적인 장추련 출범을 통해 장애인 개인 및 단체들의 연대를 통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차별 문제에 관한 한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히 진전된 논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① 차별의 문제가 간과하고 무시해도 될 사회 현상이나 관행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는 각성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남에 따라, 기존의 남녀 성차별뿐만 아니라 장애인차별, 노동차별(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특히, 장추련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안)을 마련하였다는 점, ② 제2기 인권위에 들어와서는 사회권이 강조되면서 차별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와 동일한 무게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 ③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정책에 따라 인권위법이 개정되면서 차별행위에 대해서도 차별시정위원회를 통한 구제가 시정권고 차원에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 ④ 최근에 인권위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인권NAP)을 수립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 성격을 지닌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차별금지법(안)을 마련하여 전원위원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그러합니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최근의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① 참여정부의 차별기구 일원화 정책에 따라 차별시정에 관한 기능과 권한이 인권위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과연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가 필요한가? ② 인권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 이에 대한 장추련의 공식 입장은 별도의 장애인차별금지법도 필요하고, 인권위와는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 또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의 바램은 “어떻게 하면 장애인 차별을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시정하고 금지하며, 이미 차별받은 장애인 당사자의 침해된 권익을 구제할 것인가”입니다. 따라서 장추련에서는 기존의 인권위 보다 한층 더 강력한 기능과 권한을 가진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정책에 따라 개정된 현재의 인권위법에 의하면, 기존의 인권위의 위상과 권한은 그대로 둔 채 차별시정과 관련한 기능을 덧붙여주고 있을 뿐이어서 여전히 ① 조사 대상의 한계, ②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의 부재, ③ 전문성 및 감수성의 부재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 인권위에서 내놓은 차별금지법(안)에 따르면 차별시정기구의 기능과 권한, 사법적 권리구제방법 등이 과거에 비해 월등하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고, 이는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2003년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 4개 장애인 단체들로부터 취합한 장애인 인권 상담사례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준비하면서 논의되었던 사례들 중에서 차별사례들만 모은 500여건을 검토한 결과에 의하면, 가족과 시설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교육장소, 사업장 등 사회 모든 현장에서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온갖 언어적ㆍ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감금과 착취, 교육과정에서의 배제와 제한, 은행업무와 같은 일상적 활동조차 접근할 수 없는 접근권 박탈, 성적 자기결정권 박탈 등 대다수의 장애인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참담한 장애인차별의 현실을 장애인 당사자의 시각에서 조명하고(감수성의 문제), 전문성을 통해(전문성의 문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실효성의 문제)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장애인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인 요청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차별시정기구에 대해서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마다, 각 나라의 현실에 따라 별도의 장애인차별 시정기구를 설치하는 곳도 있고, 차별시정기구 일원화를 통해 해결되는 곳도 있습니다. 차선책으로, 만일 현재 인권위가 제안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안)에 규정된 그대로 차별시정기구의 기능과 권한이 강화되고 사법적인 권리구제수단이 정비된 후, 그에 부응하는 인권위법 개정까지 이루어진다면, 장애인들의 요구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인권위의 차별금지법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다릅니다. 인권위가 내놓은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관한 기본법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인권위법에 규정된 차별 영역 전반에 관한 논의와 차별시정기구, 사법적권리구제방법 등이 규정되어 있을 뿐, 개별 차별영역에 대한 특수성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장애인 차별만 하더라도, 차별의 개념, 장애 및 장애인의 개념, 차별판단의 기준, 차별금지의 내용 등에 있어,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인 내용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기본법이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차별영역마다 필요에 따라 개별법이 필요하며, 특히나 장애인 차별의 경우에는 기본법만으로는 부족하고 개별법을 통해 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인권위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판단, 시정, 권리구제 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별법으로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른 차별 영역과는 달리 장애인차별의 문제는 ① 차별기간의 영구성, ② 차별유형의 총체성, ③ 장애 및 차별 판단 기준의 다양성 등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애인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장애인 당사자의 감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전문성과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을 갖춘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위원회와, 장애인 차별의 개념, 차별판단의 기준, 차별금지의 내용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여야 합니다.
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을 환영하면서, 독립적인 장애인차별금지법 또한 함께 제정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