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미풍양속 _ 김지혜 /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
평창올림픽에서 커밍아웃한 게이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올림픽에는 13명의 선수가 성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올림픽헌장은 성적지향을 비롯해 어떠한 이유의 차별도 없이 헌장상의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성소수자가 올림픽에 출전한다고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국제 행사와 무엇이 달랐을까. 불과 몇 개월 전에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는 개최되지 못했다. 2017년 10월 21일 서울의 한 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시설공단에서 체육관 사용허가를 취소했다. ‘미풍양속’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말을 비쳤다. 주최측은 ‘제1회 퀴어여성 그네타기를 해야 하냐?’며 항의했다. 본래 배드민턴과 풋살 등을 할 예정이었지만, 종목이 문제가 아님은 분명했다. ‘퀴어여성’이 문제였다.
일주일 후,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퀴어문화축제의 장소 사용을 불허했다. 또 ‘미풍양속’이 이유였다.
왜 하필 미풍양속일까. 궁금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법규를 찾아보았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검색해 보니, 2018년 3월 13일 현재 1,660개의 자치법규에서 ‘미풍양속’이란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법령은 17개이다).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미풍양속을 언급하는 조례나 규칙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많은 조례가 공공시설 운영에 관한 것인데, 사용을 불허하는 경우가 있다. “공공질서와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그 이유의 한 가지이다. 미풍양속을 이유로 제한될 수 있는 시설의 종류는 공공기관, 도서관, 문화회관, 미술관, 전시관, 캠프장, 수련원, 공원, 체육시설 등으로 매우 폭넓다.
성소수자의 체육·문화활동이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시설사용을 배제하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 따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성소수자 행사에 관해 미풍양속을 이유로 민원이 제기되고, 지방자치단체는 이것을 받아들인다.
미풍양속의 보존과 함께, 우리 사회는 ‘문화적 다양성’도 보호하고 증진한다. 한국은 유네스코의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고, 그 이행을 위해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그 중 일부 조례에 미풍양속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서울특별시, 광주광역시, 충청북도의 조례에서는 ‘문화적 관용’을 이렇게 정의한다. “국적, 민족, 인종, 종교, 언어, 지역, 성별, 세대, 학력, 정신적·신체적 능력 등의 차이에 따른 문화적 표현과 문화예술 활동의 지원이나 참여를 제한하거나 금지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그런데 단서 조항이 있다. “단, 사회 미풍양속을 침해하는 문화적 다양성은 문화적 관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단서 조항은 조례의 모법인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에는 없는 내용이다. 유네스코의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제규범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인종, 민족, 성별, 언어, 성적지향 등 모든 소수자의 동등한 참여와 존중을 의미한다. 이런 소수자의 문화가 미풍양속에 어긋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 조례에서는 문화적 관용보다 미풍양속이 먼저이다.
미풍양속과 문화적 다양성은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미풍양속이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이상, 두 개념이 충돌할 가능성이 많다. 특정한 문화를 미풍양속이라고 하여 우월한 가치 기준으로 삼으면,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은 낮아지니 말이다.
유교식 가르침을 미풍양속으로 여기면 어떤가. 그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풍속을 보존하려고 한다면,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별에 따라 엄격히 역할과 표현을 분리하고, 여성의 성에 대해 특히 억압적으로 대하며, 다른 문화에 배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런 전통이 미풍양속이라면 문화적 다양성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그래서인지 미풍양속과 문화적 다양성을 동시대에 요구하는 우리 법체계는 마치 시간성이 혼재된 모순덩이처럼 보인다. 근대 민주주의 사상에 기초한 산물인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헌법에서 앞세우고, 최신의 국제규범에 따라 문화적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미풍양속이라는 단어로 근대 이전의 가치를 소환하니 말이다.
그런데 미풍양속이 정말 그런 뜻일까? 나는 도무지 ‘미풍양속’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름답고 좋은 풍속’이라니, 누구의 눈에 아름답고 좋은 것이어야 한단 말인가. 미풍양속이란 모호한 말로, 정부가 누구는 아름답고 누구는 추하다고 판정하는 것, 그런 이유로 공공시설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너무 자의적이고 부당하다. 또 모욕적이기도 하다.
게다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공공의 안녕질서’나 ‘미풍양속’에 관하여 어렴풋한 추측마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각자마다 다른 대단히 주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헌재 2002. 6. 27. 99헌마480 결정). 전기통신사업법에서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금지한 것은 그래서 위헌이었다.
편견 때문에 혹은 낯설어서 어느 소수자 집단의 행사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진다면, 바로 그때 문화적 관용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더 이해하고 가까워지기 위해 체육활동을 하고 문화교류를 한다. 그것이 국제 행사이든 동네 행사이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방식들일 터이다.
미풍양속이 무언가 의미가 있다면,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이런 현재의 가치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을 미풍양속이라고 평가할 것인지는 당시의 가치를 반영하게 되니, 우리 시대의 미풍양속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것이길 바란다.
글_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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