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으로서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보장- 정정훈 변호사
공변의 변辯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라는 목적을 위하여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을 원칙적으로 제한하여야 하는가?
그 대답으로서의 고용허가제 시스템, 그리고 그것에 합의했던 우리의 인식은 목적-수단 범주에 지배된 폭력성의 한 표현이다. 계약의 성립, 특히 근로계약의 성립은 대등한 당사자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사업장변경 제한을 통해 근로계약의 일방 당사자를 사실상 종속적인 위치에 놓고 고용허가제 법의 명시적인 규정을 통해 걸러지지 않는 생활상의 차별들을 감수해야한다는 명령, 사업장을 떠나려면 이 나라를 떠나거나 시스템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적 사형선고의 섬뜩한 강제, 그것이 바로 고용허가제 시스템의 작동원리에 놓인 폭력적 기초이며 형식적으로 평등하고 중립적인 법 규정과 계약의 이면에 놓여있는 칼날이다.
사업장변경의 원칙적 제한은 고용허가제 법으로 규제하지 않거나, 규제할 수 없는 인권침해· 차별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불법체류를 양산하고 있으며, 저임금의 종속적 위치에 강제된 이주노동자를 한 사업장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노동시장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사업장변경의 원칙적 제한은 내국인 고용보호라는 목적을 위해 선택을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며,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도 아니다.
법과 제도를 조금만 이성적으로 관찰하면 현재 외국인력제도의 기초에 놓여있는 근본적인 이해가 그 표면적인 명분인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에 있지 않고 “저임금 외국인력 활용”에 있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정책의 실질적 무게 중심이 “저임금 외국인력 활용”에 놓여 있고 제도들이 이의 실현을 위해 기능하는 한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라는 법의 표면적인 명분과는 끊임없이 충돌할 것이다.
외국인력도입의 주된 취지는 저임금으로 외국인력을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내 노동시장의 인력 부족의 공백을 보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업장이동의 자유를 인정할 경우 더 나은 조건의 사업장으로 계속적 이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제도의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반론은 그 자체가 경제논리, 주권논리에 기대어 제도적 폭력을 가능케 하는 전제 위에 서있다.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부여되어야 하며, 더 나은 조건의 작업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업종별 도입입원 제한을 통한 수량통제, 마켓테스트를 통한 노동시장 보완성 원칙의 유지, 사업장 변경의 업종 제한,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에 의한 노동가격 통제, 사업주 처벌 강화 등이 가능한 대안들로서 논의된 바 있다. 이외에도 사용자에 대한 교육, 노동관계법 및 사회보장관계법의 전면적·실질적 적용, 출국만기보험신탁 및 보증보험의 가입, 수수료의 징수 등 실질적인 고용비용 통제 등도 간접적으로 내국인 고용기회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로서 평가된다. 만약 이러한 규정들만으로는 내국인 고용기회를 보호하기 위해 미흡하다면, 합리적 수준의 고용부담금을(levy) 부과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업장변경과 관련된 그 동안의 논의는 고용허가제와 노동허가제라는 별개의 시스템을 전제하고 선택적·배제적 차원에서 전개된 비생산적인 것이었다.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라는 목적을 위하여 이주노동자의 사업장변경을 원칙적으로 제한하여야 하는가?”라는 문제설정이 실질을 왜곡하는 질문(pseudo question) 인 것과 마찬가지로 “고용허가제인가, 노동허가제인가?”라는 문제설정 역시 적어도 사업장 변경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논의를 비생산적인 차원으로 이끄는 틀로서 작용한 측면이 적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문제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만큼 문제해결 방식으로서 제도화와의 거리가 서로 다른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사업장 변경 자유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원칙적 문제임을 확인하고, 이를 중심으로 논의를 생산하고,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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