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처한 인권옹호자들을 위하여 – 위험에 처한 인권옹호자들을 위한 아시아지역 재배치 메커니즘 국제회의를 마치고
인권을 ‘함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고통 받고 위험에 처한 인권옹호자들이 그 국내적 위험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주장과 활동을 널리 알리고, 재충전하고, 다시 새로운 활동의 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인권을 ‘함께’하는 매우 소중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억압받고 위협받고 있는, 그렇지만 그 국가의 인권의 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인권옹호자들은 늘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권활동가 혹은 인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인권옹호자들(human rights defenders)’. 한국에서는 이들에 대해 너무도 쉽게 ‘운동권’ 혹은 ‘정치적 활동’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이들의 역할, 그리고 이들이 일구어온 인권의 역사를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인권을 위해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이들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2015년 인권옹호자에 관한 유엔총회결의(A/RES/70/161)만 하더라도 ‘인권 증진과 보호에 관한 감시, 보고, 기여를 통해, 대화, 열린 자세, 참여와 정의구현을 통해, 분쟁 예방, 평화와 개발을 강화’하는 인권옹호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0년 유엔인권이사회결의(A/HRC/RES/13/13)에서는 ‘모든 인권옹호자들에 대한 협박, 괴롭힘,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 정부 및 비정부단체에 의한 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고 이러한 협박 등을 종식시킬 급박한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위험에 처한 너무도 많은 인권옹호자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생명과 신체,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념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2017년 7월 15일부터 16일 사이에 태국 방콕에서 열렸던 ‘위험에 처한 인권옹호자들을 위한 아시아지역 재배치 메커니즘 국제회의’는 국내에 머물면서 인권활동을 하기가 불가능하거나 과거의 인권활동으로 인해 박해의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아시아 차원에서 어떻게 가장 적절한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하는 장이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접근 가능한 인권옹호자 보호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이러한 프로그램과 관련한 법적, 정책적, 행정적 장애물은 어떤 것이 있는지, 머지않은 장래에 아시아 차원에서 만들고 도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일지 등등 여러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으로 이틀의 일정은 이루어졌습니다.
‘위험에 처한 인권옹호자들을 위한 아시아지역 재배치 메커니즘 국제회의’에서 발제중인 황필규 변호사
유럽연합의 인권옹호자 메커니즘인 ProtectDefenders.eu은 여러 국제/지역 NGO들과 연계하여 전세계 인권옹호자를 대상으로 유럽과 기타 지역에서 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권옹호자들은 학술기관, NGO 프로그램, 문화예술인 주거 등에 배치되고 이들에 대하여 사회적, 재정적, 의료적, 사회심리적, 법적, 언어적 지원이 이루어집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피난처도시’(shelter city)라고 하여 시 차원의 인권옹호자 보호 프로그램을 다년간 운영하고 있고, 영국의 요크대학의 경우 자체적인 인권옹호자 보호 펠로우쉽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Pan Africa Defenders Network에서 인권옹호자 허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Front Line Defenders라는 국제NGO는 위험에 처한 인권옹호자들에 대한 긴급 지원뿐만 아니라 휴식과 재충전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아시아에서도 포럼아시아 등 지역 혹은 국내NGO들이 유럽연합 등의 지원을 받아 유사한 프로그램을 소규모로 진행해왔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인권 관련 회의를 참석하면 “그래도 한국이 뭐라도 해야지 않겠냐”는 말을 항상 듣습니다. 특히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졌던 대규모 집회시위, 대통령 탄핵, 전 유엔인권고등부판무관의 외교부장관 취임 등의 상황이 벌어진 최근에는 한국이 뭔가 앞장서주기를 바라는 시선이 많습니다. 위험에 처한 인권옹호자 보호의 문제는 모든 국가의 문제입니다. 어느 나라에나 인권문제는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최전선에서 실천하고 있는 소중한 인권옹호자들의 보호는 하나의 국가를 넘어, 지역, 더 나아가 전 지구적으로 공동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이 지금 나서야 하는 이유도 한국이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관심과 도움을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받아왔음에도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인권옹호자의 보호에 대해도 충분한 관심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반성을 이제는 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인권도시를 표방하는 서울, 광주, 제주 등이 나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공간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대학, 예컨대 서울대 인권센터, 고대 인권센터, 전남대 인권센터, 성공회대 메인즈 프로그램 등도 이러한 인권옹호자 보호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안정적인 재원을 가지고 있는 518기념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여러 인권 관련 재단,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련 국가기관도 이러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하는 책임 있는 주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권옹호자들을 구하는 것이 인권을 구하는 길입니다.
글_황필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