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_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최저임금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
한국일보가 2030 성인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그에 따르면 48.7%가 만족하는 임금수준은 월 300만원을 선택했다. 만족할만한 여가수준도 연간 1회 이상의 해외여행을 꼽은 응답자가 46.4%였다. 월 300만원의 임금과 연간 1회의 해외여행이면 만족하다는 답변이니 참으로 소박한 희망 아닌가. 그런데 한국사회 노동자들에게는 이것조차도 바라기 힘든 소망이 되고 있다. 2016년 한국사회는 임금 중위값의 2/3를 기준으로 한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24%나 된다. 월 2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네 명 중에 한 명이다. 이 노동자들에게 월 300만원의 임금과 해외여행은 꿈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고통 받는 것은 경제구조와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세계인권선언 23조는 “모든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이 인간의 존엄에 적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공정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고, 나아가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사회적 보호수단에 의해 보충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한다. 헌법 34조도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최저임금’에 주목하게 된다. 최저임금은 ‘노동자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정임금인 최저임금을 제대로 끌어올리면 전체 노동자의 임금도 오르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최저임금은 노동자 생활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2018년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로 대폭 올랐다. 시급 7,530원, 월급으로는 157만3770원이다. 물론 이것도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은 아니다. 적어도 최저임금은 시급 1만원, 월 209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이것이 지켜질지 불안한 상황이다.
영세사업장 문제의 근원적 해결 계기가 될 최저임금 인상
월 157만원의 최저임금을 두고, 보수언론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이 다 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관심보다는 영세사업장과 기업 걱정에 노심초사 한다. 이 걱정은 참으로 눈물겹다. 그런데 영세사업자들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일까? 영세사업자가 늘어나고 한계상황에 처한 지는 매우 오래되었는데, 이미 너무나 많은 영세사업자들이 폐업을 하고 금융파산자가 되고 있는데, 보수언론들이 이에 대한 대책을 진지하게 보도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자 했다면 또 다른 약자인 영세자영업자 문제에 대한 제도적 대안도 내놓았어야 한다. 그런데 ‘직접 지원’이라는 대증요법만 내놓았을 뿐,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진짜 책임을 져야 할 대기업들과 지대수익자들은 빠지고, 노동자와 영세사업자가 갈등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언론과 기업은 이런 싸움을 부추겨 왜곡된 산업구조를 변화시킬 기회를 막고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나 건물주들의 수탈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정부가 나설 때이다. 카드 수수료를 인하하고, 월세 인상의 상한선을 제대로 만들어서 강력하게 단속하고, 최저임금의 인상분을 원청 도급금액에 반영하도록 하고, 프랜차이즈 본사에 내는 비용을 줄이도록 강제하며, 야간에도 문을 열게 하거나 냉장실을 열어두도록 하는 본사의 시책을 거부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세사업자들이 뭉쳐서 원청이나 본사를 향해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직접지원’만 하면서 구조적 문제를 외면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없애려는 편법을 막아야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없애려고 편법을 동원한다.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휴게시간을 늘리고,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키고, 수당을 일방적으로 없앤다. 재정여력이 있는 대학들이 청소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대학원생에게 청소를 시키려고 한다. 이런 식의 편법 대응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가장 만만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임금에 손대는 것은 범죄라는 인식도 없고, 언제라도 줄여도 되는 비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당연한 조치가 아니라 정부의 시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최저임금 때문에 노동자들이 해고될 수밖에 없다며 걱정 어린 기사를 쏟아낸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에 동의해왔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반대해왔던 보수언론들이 내놓는 이런 기사를 보면 참으로 씁쓸하다. 이들이 이런 기사를 내놓는 이유는 중소기업을 걱정하거나 노동자들의 해고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기업들의 편법대응을 정당화하고 올해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최저임금을 묶어두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최저임금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이런 논의에 휘둘리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말한다. 노동계 대표와 만난 문재인대통령은 “올해 최저임금을 16% 이상 올리면서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사회 일각의 비판이 있었다”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언급했다. 정기상여금을 열두 달로 나눠서 최저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사라진다. 정부가 나서서 이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최저임금의 인상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보수언론과 기업들의 요구에 굴복한다는 것인데, 이 순간에도 정부는 뒤로 빠져서 노사간의 갈등으로 만드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할 때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과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핵심정책이었다. 그런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은 정부가 그 책임을 기관들에게 떠넘기면서, 심의위원회 구성부터 대상선정까지 문제가 생겼고, 결국 ‘정규직 전환 제로정책‘이라는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지금 기업과 보수언론이 최저임금을 문제 삼고 있는데 이에 휘둘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서 후퇴하고, 최저임금에 대한 기업의 편법대응을 용인하게 되면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무력화된다.
지금은 노동자들에게 ‘1년만 기다려달라’고 말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해야 할 때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시혜성 정책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는 기본적 전제임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무력화하는 편법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최저임금 위반을 범죄로 처벌한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또한 영세사업장을 수탈하는 원청대기업과 프랜차이즈 본사의 불공정행위와 지대수익을 단속하여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보여야 한다. 지금이 그 때이다.
글_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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