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법전에 자연을 담다 – 환경법률센터 정남순 변호사
• 글_정정훈 변호사
환경법률센터 부소장을 맡고 있는 정남순 변호사를 만났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만남의 시기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아는 정남순 변호사는 ‘장식’을 좋아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이다. 자신의 표현처럼, 외부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가 최근 환경련 사건으로 매우 ‘바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많이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요즘 심리적 치유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조사 과정에 변호인으로 입회하면서 스스로 피의자가 된 느낌이었다고… 혹독한 자기부정의 시간을 겪고 있노라고… 무리한 인터뷰 요구에 응해준 것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한다.
지는 싸움을 하는 기다림
환경권은 ‘추상적 권리’에 불과하다는 통념은 환경에 대한 국가·사회의 무관심과 무능력을 정당화하는 법적 알리바이였다. 환경권에 대한 법적 통념을 넘어 구체적인 힘을 가진 ‘권리’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소송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환경소송’을 통해, 환경법률센터는 메마른 법전에 자연을 담고, 자연을 보는 법의 눈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남순 변호사는 환경소송의 중요성에 비해서, 아직 그 사회적 기초는 너무나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국회와 정부가 기업의 이해관계 조정이라는 늪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환경을 권리화하는 사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그러나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많은 재판부가 ‘원고적격’, ‘소의 이익’, ‘입증책임’이라는 법의 문턱을 안전판 삼아 결론을 예단하고 귀를 열지 않는다. 더욱이 환경권은 여러 사람들에게 ‘쪼개진’ 작은 이익으로만 평가받는다. 그 ‘작은 이익’들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의 ‘큰 이익’과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입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 감정자료 등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분야에 대한 기초적 연구가 전무하고, 경제적으로 ‘작은 이익’에 불과한 당사자들이 직접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개발을 진행하는 기업은 자본력을 이용해 여러 자료와 의견을 만들어 법원에 제출 할 수 있다. 소송과정에서의 구조적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없고, 구체적 사건에서 재판부마저 소극적이다.
법과 제도의 장벽이 여전히 자연을 보는 눈을 가리고 있다. 그간 적지 않은 성과들이 있었지만, 법전에 자연을 담으려는 환경소송의 노력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남순 변호사는 지는 것도 중요하고, 어떻게 지느냐가 더 중요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는 싸움을 하는 기다림’을 환경변호사의 자질이라고 했다.
최적의 황금비율을 묻다
환경법률센터는 환경운동연합의 여러 전문기관 중의 하나다.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련)과 환경법률센터의 관계에 대하여 그는 아직까지 유기적인 결합이 되지 못해 왔다고 평가한다. 환경련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법률문제가 발생하면, 법률센터에서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떨어지는’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었고, 사업을 구상하고 로드맵을 세우는 초기 논의단계부터 결합하여 법률문제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모색하는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정남순 변호사는 두가지 방향에서 원인을 설명한다. 환경련의 차원에서는 아직은 법률문제를 환경운동의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전체 운동의 연관 속에 배치하지 못하고, 법률센터는 이러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결합해야하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소송을 위주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살리는 운영을 하면서도, 사업 진행에 있어서는 유기적인 ‘내부’가 되는 최적의 황금비율 찾기. 이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전문기관’이라는 환경법률센터 ‘모델’이 갖는 중요한 의미도 여기 있어 보인다. 환경법률센터가 그 난제를 해결하는 지혜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면, 환경운동의 영역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련과 법률센터가 근본에서부터 다시 묻는 논의와 고민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좋은 해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인터뷰 내용]
-> ‘환경 변호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동아리활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연수원에 들어가서는 주저 없이 학회활동을 선택했다. 마치 영화 <카타카>처럼, ‘조’를 단위로 움직이는 연수원은 ‘우량인간’을 만들어내는 경쟁체제의 닫힌 조직으로 느껴졌고, 그 속에서 학회는 내가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었기에 내가 선택한 ‘환경법학회’는 숨 쉬는 공간이고,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20대에 개인적으로 가졌던 많은 고민들은 결국 ‘욕망’이라는 문제로 귀결되는데, 이러한 욕망의 문제와 가장 닿아있는 지점이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5년 정도 일해 왔고, 개인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성취한 것이 많지 않다는 아쉬움도 있다. 현재는 고민하는 욕망이 오히려 너무 비대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다.
-> 환경 관련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면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낄 때, 가령 마을회관 설명회 등을 할 때 즐거움이 느껴진다. 소송 진행 과정은 힘들지만, 환경활동가들 자체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공감을 통해 개인적으로 배우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소송이 있다면
환경법률센터에서 새만금 소송을 빼놓을 순 없다. 당시 수질과 관련해서 대법원에서 공개 변론을 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 환경 변호사로서 활동을 하며 직면하는 딜레마가 있다면
환경법률센터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그리고 나의 능력과 열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책 형성’ 기능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주 업무이자 주 수입원인 소송을 수행하느라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시간 투여를 못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정책형성을 하더라도 국회, 관련 전문가들과 공조가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존재한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정책부문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아직은 ‘구호’에 의존하고, 직접적인 행동을 주요한 사업방식으로 하는 측면이 더 많이 존재했다고 본다.
-> 환경운동연합과 환경법률센터의 관계에 대하여
환경운동연합은 중앙역할을 하고, 환경법률센터는 손발이나 브레인 등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재정적으로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보조금 전용 및 개인횡령 사건을 계기로 내부의 쇄신 논의가 환경법률센터가 환경운동연합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은 어떤가라는 물음을 받을 수도 있고, 현재 독립 여부도 논의 중에 있지만, 실제로 운영비가 늘어나게 되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같은 공간 내에서도 소통이 잘 안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물리적으로 분리될 경우 더 어려워질 거라는 염려가 있다. 이러한 조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딴 살림’을 차리게 되면 환경법률센터 설립 취지에 있어서도 어긋나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환경운동연합이 중앙역할을 하며 조직화를 잘 해서 함께 소통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 환경법률센터의 재정적 현실은 어떠한지
기본적으로 소송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회원 수입은 전체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회원 확대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결국 소송에 의존하다보니 재정에 대한 예측불가능성∙불안정성 문제는 여전한 고민이다. 소송을 환경 부문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도 존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영역 확대에 대한 제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잘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만약 전문성을 희생해서 재정 안전성을 확보한다고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함께 존재한다. 하나의 대안으로는 지자체 등과 법률자문 계약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재정과 정책 기능의 강화를 모색할 수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 보조금 전용 및 개인횡령과 관련된 최근 사건에 관하여
환경법률센터는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최근의 사안과는 직접 관련은 없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 소속이라는 자부심과 신뢰가 컸다. 그래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 자기부정 등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에 있고 심적으로 힘든 것이 사실이다.
보조금 전용 문제나 개인횡령 문제 모두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를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중요하고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실제 진실’이라는 큰 전체보다는 ‘자기가 알고 싶은 진실’이라는 작은 부분에 치우쳐 오해가 확산되는 점은 안타깝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예전에는 신뢰 그 자체가 관리원칙으로써 기능을 했는데 체계적인 점검 시스템 자체가 부재했던 것은 사실이고 이제는 신뢰 그 자체가 원칙으로 기능하는 데 한계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제로 재정적자 상황에서 조직은 규모가 비대해지다보니 활동가들이 직면하는 한계점도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근본에서부터 시작하는 시스템 정비와 내부적 논의가 필요하고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 정부의 환경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서
행정부의 규제개혁∙철폐 관련 정책은 일종의 ‘규제는 부정하면 된다’라는 증후군이 존재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환경 자체가 규제를 기본틀로 하고, 규제가 다른 것을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분명 규제의 긍정성도 존재하므로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한 규제 관련 정책이 제시되는 과정에서 자연훼손에 대한 논의를 할 때 훼손의 ‘규모’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의 생태계에 대한 고려가 실질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고 본다.
-> 법원은 환경 소송에 대해 어떤 경향을 보이는지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알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유형의 판사들을 만나면 힘들다. 주로 환경 소송은 ‘입증’이 관건인데, 맡은 소송 중 대부분을 차지해온 폐기물∙소각장 관련 사건들은 입증하기가 참 어려운 한계점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입증책임의 부담 외에도 실제로 자본을 지닌 사람들의 논리대로 흘러가는, 자본의 벽 또한 직면하는 어려움이다. 결국 ‘조정’으로 해결하라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경우 변호사 입장에서는 참 에너지 소모가 크고 주민들의 요구와 함께 균형을 맞추는 데에도 어려운 지점이 있다.
-> 환경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환경 분야 관련 많은 전문 변호사들이 주로 ‘손해배상’을 다루고 있어 약자∙소수자 보호보다는 강자를 위한 수익성 위주의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환경 분야의 변호사활동을 시작할 때 환상을 갖진 않았다. 당장 폼 나는 것을 기대한다면 힘든 분야라고 생각한다. 환경 분야 변호사로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당한 싸움에선 꼭 이기고픈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에 지면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환경이라는 영역 자체가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고 길게 보는, 지루하게 참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공감에 한 마디 한다면
잘 사세요. ^^
• 인터뷰 정리_ 한영화, 조유나 인턴
• 사진_ 남유정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