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작년에 공감의 인권법 캠프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셨고, 올해 인권법 캠프는 아예 사법연수원생과 로스쿨 합격생만을 대상으로 진행된다는 말에 나는 또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감과 내 인연은 이정도인 것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공감과 소원해졌을 때 우연히 공감 9기 인턴 모집을 알게 되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학생인 내가 감히 공감의 인턴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과연 8월에 치르는 법학적성시험을 앞두고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을 인턴생활을 하면서 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어 사실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정당화시키는 핑계를 대면서 실천보다는 말과 생각만 앞서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항상 ‘공익’과 ‘인권’에 관심이 많아서 앞으로 꼭 공익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얘기해왔지만 그냥 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단지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정신적․물리적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지, 실제 현재 구체적인 실태는 어떻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나 자신의 의지박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려고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고,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서 낙방하더라도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으리란 마음으로 인턴에 지원했고, 그야말로 천운으로 다른 훌륭한 동기들과 함께 공감 9기 인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모두에게서 소외된 곳을 찾아가는 공감

 인권과 공익을 소리 높여 부르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감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내가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하는 반성이었다. ‘공익’과 ‘인권’이라 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 장애인권, 이주민인권, 성적소수자인권 등이었다면(이들의 인권들이 그만큼 잘 보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로 두더라도) 공익제보자 문제, 주민소송 문제, 저소득층의 의료권 문제 등은 평소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조차 간과하거나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아직까지 사람들이 일반적인 인권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이 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예 현재 어떤 현실에 마주치고 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 다시 말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법의 혜택에서 소외된 채 방치돼 있거나, 법의 이름으로 권리의 침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공감은 이렇게 언론이나 사회적 인식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배제된 사람들과도 무릎을 굽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중이다.

눈물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여러 사안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것을 하나 꼽자면 장안4동 ‘아트빌라 공영주차장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주차 수요도 많지 않고 근처에 넓은 공영주차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영주차장 부지로 선정되었다는 이유로 인해 평생을 들여 간신히 장만한 보금자리가 철거될 위기에 처한 주민 분들이 공감에 도움을 요청하신 것이다. 막대한 보상금도 호화로운 아파트도 다 필요 없고, 다섯 식구가 비좁게 살더라도 그저 생활의 터전이 되는 ‘내 집’을 빼앗기지 않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 실례가 될까 싶어 이를 악물고 나오는 눈물을 참았다. 어떻게든 이분들을 돕고 싶어도, 공감 인턴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을 뿐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게 정말 답답했다.

 그러다 미약하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디지털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무작정 현장조사를 나가게 되었다. 주민 분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그저 학생일 뿐인 나를, 사건과 관련해 주변 환경을 보러 왔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왔다며 엄청난 환대를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바람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참 황송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작은 일 하나에도 고마워하시는 그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작은 도움일지라도 법률서비스에서 소외된 서민들에게는 절실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이제 공감 인턴생활은 끝났지만, 앞으로 이런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마주보며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닌가 한다.

 공감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공감의 구성원들과 인턴들은 항상 많은 업무로 여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일에서 순간순간 행복과 보람을 가슴으로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명예나 이익을 위한 것,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에서의 6개월 동안 자료 조사와 토론회, 또 포럼에 참석하면서 지식들만 쌓은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사람과도 공감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두는 태도를 함께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함께 희망을 그리는 길을 걷고 있는 공감! 좋은 사람들과 우리 사회의 인권의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다. 그리고 분명 공감과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약간의 두근거림과 조금은 과도한 의욕으로 맞이했던 공감 인턴으로서의 첫 날을 기억하면서, 가톨릭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기도문 구절 하나를 남겨 본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글/ 9기인턴 홍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