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활동후기] 연분홍치마제작 DMZ영화제 상영예정작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을 보고 와서
열흘 전, 9월 15일 목요일 장서연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조혜인 변호사님과 함께 인턴 근무 후 마포에 위치한 연분홍치마 사무실에 방문하여 지난 23일(금), 25일(일) 양 일간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성황리에 상영된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 상영 전 모니터링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그 날 모니터링의 목적은 영화제 상영 전 마지막 편집을 위해 법적인 자문과 다큐멘터리 내용 전반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용산참사에 대한 심각성을 누누이 들어왔지만, 구체적인 정황이라든가 쟁점에 대하여 알지 못한 상태였기에, 이번 모니터링을 통해 용산참사의 여러 실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오는 길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난 1학기 수강했던 <법과 문학>이라는 수업에서 다루었던 아나톨 프랑스의 <크랭크비유>라는 문학작품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에 쓰여진 이 작품은 ‘역사적, 정치적 내지는 사회적 고찰 따위는 전혀 해본 적 없는’ 야채 장수인 크랭크 비유가 손님이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서 돈을 가지고 나오는 사이 순경의 명령 – 수레를 치우라는 명령 -을 어기고, 모르오 바슈(경찰을 죽여라)라는 순경을 모욕했다는 죄로 구류형에 처한 이야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경찰과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크랭크 비유 직접적으로 ‘모르오 바슈’를 언급한 적도 없고, 수레를 치우라는 명령을 늦게 이행하는 것이 불법적이라는 것도 몰랐지만, 공권력이 순경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서 크랭크 비유는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점점 몰락해 갑니다.
크랭크 비유를 단순히 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64호 순경을 모욕한 전형적 죄인으로 서서히 몰락해가는 그의 일생이 당연하게 보일 것이지만, 법이 기존 질서와 합법성을 가지고 사회의 원칙을 옹호하기 위해 관행적으로 크랭크 비유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크랭크 비유에게 가해진 선고는 무자비한 법의 횡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소설은 지식인 혹은 전문가나 지배 계층이 전유하고 있는 법적언어를 지니지 못한 서민 계층인 크랭크 비유가 줄곧 법 앞에서 무력해 졌듯, 현실에서의 법 또한 개개인에게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으며 법집행에서의 인간적 동정 혹은 불의에 대한 분노 없이 이루어진 재판이 일고의 의심 없이 얼마나 쉽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상기시킵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였던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에서도 이 같은 법정 공방의 진실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두개의 문>은 경찰이 재판 당시 증거로 내놓았던 채증영상과 인터넷에 생중계 되었던 컬러tv 등 인터넷 tv의 영상자료를 엮어 용산참사가 벌어지게 된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대책위원회 담당자와 변호인단을 맡았던 변호사들의 인터뷰를 중간 중간에 삽입하여 당시의 사건이 얼마나 공권력 시스템의 편의주의에 부응했는지를 파헤칩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충격적이었던 것은 크레인을 올려 망루 안에 있는 철거를 반대하며 집회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물대포로 공격하고, 위협을 가하는 모습 이상으로 폭력적인 법정 안에서의 검사들의 의도적 심문 과정이었습니다. 검사는 당시 투입되었던 전경들을 증인심문하면서 용산 참사에 투입된 전경들은 국민들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으며,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로 누차 국가 폭력이 정당하다는 것을 합리화하였습니다.
국가가 살인 면허를 가지고, 살인을 허가하였다는 것, 너희들 국가에 대항하면 목숨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식의 협박이 담긴 국가 폭력이었다는 대책 위원회 관계자의 인터뷰가 마음 속에 사무쳤던 것은 용산 참사로 인해 목숨을 빼앗긴 사람은 철거민 5명과 전경 1명이지만, 법 앞에서는 단 한 명의 전경만이 피해자로 호명되는 어이없는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의 내용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이 할애되고 있는 것은 용산 참사라 불리는 용산4구역 철거 현장 화재 사고가 벌어진 2009년 1월 19일부터 1월 20일 오전8시 즈음까지의 현장을 채증영상 등을 통해 시간 순서대로 재현 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서울시가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반발 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 뿐 아니라 당시 위험한 현장에 아무런 사전 정보를 고지 받지 못하고 투입된 전경들의 이야기까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된 전경들의 증인심문 녹취록과 카메라로 훑어 내려간 진술서 등을 통하여,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핑계로 경찰 고위 관리들의 공명심에 의해 벌어진 용산 참사의 실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관들은 화재가 충분히 발생 할 위험성을 지닌 망루 안의 신나의 양 등 사안의 심각성을 알았지만 현장에 투입되는 전경들에게는 상황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망루로 이어지는 문이 두 개 중에 어떤 것인지, 건물 구조가 어떤지는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전경들이 투입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집회 시위자와 전경을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단순한 구도로 볼 수 없다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 전경을 통해 행해지는 복잡하면서도 교묘한 공권력의 작동방식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니터링을 위한 상영 이후, 변호사님들과 함께 여러 영화에 대한 요소들을 짚어보면서 감독님들의 고충과 연출 의도를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자칫 전경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불편감에 대해 감독님들은 전경들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이용되고 있는 경찰들의 채증 영상을 통해 오히려 어떻게 진실이 밝혀질 수 있는지를 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크랭크 비유가 자신의 행위가 위법행위인지를 고지 받았지만 야채 값을 받아야만 생계를 유지 할 수 있기에 순경의 명령을 곧바로 이행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것은 위법행위입니다. 어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위법행위입니다.”라는 끊임없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지속해야 했던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의 모습은 사회 안정망의 부재한 상태에서 철거민들의 생계와 삶을 보장하지 않고 권력이란 무력적인 힘으로 약자를 탄압하는 처참한 결과 일 것입니다.
정의는 힘이 없는 자와 힘 있는 자 둘 사이의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것 일 텐데, 명백히 목숨을 담보로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이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자기 배부르고 공명심을 채우기 위해 싸움에 뛰어드는 자의 싸움은 마치 개구리의 생명을 재미 삼아 돌멩이 던지며 위협하는 잔인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 또한 남았습니다.
결국 참사로 인해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형을 선고 받았던 피해자를 가엽게 여기는 가족들과 활동가들의 눈물이 여전히 귀에 맴도는 <두개의 문>, DMZ 영화제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 여러 영화제들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_14기 인턴 백배민신
*영화정보
두 개의 문 / Two Doors
Korea|2011|90min|HDV |Color
Production Company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Collective for Sexually Minor Cultures Pinks
시놉시스
2009년 1월 20일, 용산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우발적인 듯 보이는 이 비극적 참사는 인터넷 등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감독은 수많은 자료영상을 일일이 꿰맞추며, 참사로 치달았던 상황의 고리들을 추적한다.
Director
김일란, 홍지유 / KIM Il-rhan, HONG Ji-you
여성주의문화운동과 성소수자인권운동 단체인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기지촌 다큐멘터리 <마마상>을 시작으로, 성전환자의 인권을 다룬 >3xFTM>, 종로구에 출마했던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 최현숙의 이야기를 담은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네 명의 게이 청년들의 사회적 커밍아웃을 그린 <종로의 기적>을 제작했으며 <두 개의 문>은 연분홍치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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