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활동 후기] 나의 인권 감수성을 높여준 ‘공감’
인턴 수료식 후 왠지 모를 허전함에 일주일 넘게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새벽 3시. 나도 모르게 공감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뒤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가까스로 수료한 ‘불량’인턴이었지만 ‘지난 6개월간 공감과 함께했던 시간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수료식이 다가오면서, 담당 변호사님께 정말 여쭤 보고 싶었다. 나를 왜 뽑으셨냐고. 무얼 기대하셨던지 그 이하였겠지만, 그래도 무엇을 바라고 뽑으셨는지 궁금했다. 수료식 뒤풀이에서야 그 질문을 했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인권 관련해서 경력이 많거나, 공감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뽑은 인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사람에게 인턴십이라는 기회를 준다면 이 사람의 인권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겠지, 그리고 이 사람의 인권 감수성이 더 예민해지면 그것으로 인한 나비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뽑은 인턴도 많다고 하셨다. 그것이 나를 인턴으로 선택하신 진짜 이유라면, 그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신 것 같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공감에서 인턴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점심시간에 산책도 하고, 북한산 둘레길도 가고, 단체로 창덕궁 후원 관람도 하러 가면서 구성원들과 인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친목 도모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다른 곳에서 인턴을 했을 때는 운동회나 소풍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귀찮기만 한 일이었는데, 공감에서는 그런 행사에 빠지게 되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바쁜 활동 일정 가운데서도 일부러 이런 여유를 챙기시는 구성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12기 인턴 오리엔테이션에서 변호사님들과 나누었던 ‘삶의 질’과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공감에는 로펌에서 일하다 오신 변호사님들도 있고 검사 생활을 하다 오신 변호사님도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인턴들은 이 분들이 급여도 적고, 항상 기득권 내지 기존 체제에 맞서야 하는 ‘공익변호사’로 바꾼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변호사님들께서는 하나같이 공감에서 일하는 것이 일의 성격뿐만 아니라 ‘근로자’로서의 존엄성을 더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도가 높다고 말씀하셨다. 공감에서 근무를 하면서 왜 그런지 직접 느껴볼 수 있었다.
12기 인턴들이 준비한 첫 월례포럼은 단풍이 곱게 든 정독도서관에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저자인 김원영씨와 함께 했다. 책의 저자로만 알고 있어 멀게 느껴졌던 그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후에 재단 회의실과 정독도서관 세미나실에서 각각 낙태와 여성의 재생산권, 4대강 사업의 법적 쟁점, 주거권과 복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된 월례포럼마다 각 분야의 전문가이신 강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권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월례포럼이 끝난 후에는 그 달의 주제와 관련된 신문기사들을 더 주의 깊게 읽어보게 되었던 것 같다.
공감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본 곳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염형국 변호사님께서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세미나에 강의를 하러 가실 때 따라가서 사법연수원도 처음으로 가 보았고, 소장을 제출하러 서초동 법원과 헌법재판소도 모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뉴스나 신문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장소들을 직접 가 보면서 우리나라의 법조계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을 해 본 것도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공감에서 인턴십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을 영영 해보지 못한 채 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공감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본 곳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염형국 변호사님께서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세미나에 강의를 하러 가실 때 따라가서 사법연수원도 처음으로 가 보았고, 소장을 제출하러 서초동 법원과 헌법재판소도 모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뉴스나 신문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장소들을 직접 가 보면서 우리나라의 법조계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을 해 본 것도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공감에서 인턴십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을 영영 해보지 못한 채 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국제 재활협회 (Rehabilitation International) 한국지부의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는 사실 토론회의 주제였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 모색’보다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강단에 올라 토론회에 참여하셨던 분의 모습, 마이크 음량이 너무 작아서 소리가 잘 안 들리니 소리를 키워달라고 요구하던 분의 모습, 자료집을 PDF파일로 받아서 노트북으로 확대해서 보던 분의 모습… 자신의 삶의 영역을 더 넓히고 자신의 인권과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 당당하게 직접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공감에서 하는 나의 주 업무는 미국 공익법단체, 공익 중개 단체/기관,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을 위한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만든 자료집은 로펌 공익활동 담당자들과 공감 변호사님들이 회의하실 때 쓰였다. 내가 공감에서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미국 로스쿨 지원을 준비하고 있었던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 업무였다. 로펌들에서 ‘프로보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고무적이었다. 공감과 같은 공익변호사 단체들이 더 많이 생기고, 그런 단체들이 로스쿨, 로펌들과 잘 연계되어 법률적 전문지식을 통한 공익활동이 더욱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다.
그 외에도 인턴들이 한 활동들은 깨알같이 많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한 국제인권 워크샵과 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 참석, 고용허가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 방청 등 각자 맡은 업무뿐만 아니라 여러 외부활동도 부지런히 하면서 인권에 대한 인식과 지식, 그리고 감수성을 키웠다. 개인적으로 공연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문정현신부님 헌정공연이자 인권센터 건립에 쓰일 모금을 위한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연극도 함께 관람하고,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피아니스트 윤효간 콘서트를 갔던 것은 공감 인턴십의 즐거운 보너스였다.
숨가빴던 학기도 끝나고 2010년을 마무리하던 송년회 날에 공교롭게도 KBS ‘시사1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공감을 취재한 것이 방영되어서 함께 시청했다. 다음날 아침, 공감 사무실에는 나를 포함해서 5명이 출근했었는데, 공감에서 소송대리를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분, 공감에 기부하고 싶다는 분, 또 개인적인 법률상담을 원하시는 분들.. 정말 그날은 하루 종일 전화만 받느라 다른 업무는 하나도 못했다.
2월 8일에 매일경제 신문에도 기사가 나가서 인턴 근무 마지막 몇 주 동안도 전화응대를 참 많이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억울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새삼 느꼈다. 어떤 분들은 ‘공감이 마지막 희망이다, 제발 도와 달라’며 매달리시기도 했는데.. 인권활동단체의 성격을 띠는 공감의 성격과 맞지 않아 도움을 드릴 수 없었던 분들께는 너무 안타깝고 죄송스러워서 통화를 이어가기 힘든 적도 많았다. 법은 모두에게 공평한 도구여야 할 텐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법은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득히 먼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훗날 내가 법조인이 되어도 전화를 통해 만났던 분들, 혹은 무턱대고 공감 사무실로 찾아 오셨던, 용감하고도 절박한 사연을 가진 그 분들을 기억해야겠다.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단체로서 공감이 해 내고 있는 일들이 정말 많다. (너무 많다!) 인권법 캠프, 로스쿨 강의, 각종 세미나와 정책 토론회 참여, 여러 인권 단체들과 연대 활동 등등… 여러 인권단체와 연대하는 모습은 정말 훈훈했고, 이를 보며 한국의 시민사회는 정말 생동감 넘치는구나 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공감 같은 단체들이 더 많이 생겨나서, 인권침해적인 상황에서 고립된 채로 있는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가치 있는 일들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공감에서 느꼈던 점들을 잘 기억하고, 공감에서 만든 소중한 인연들을 잘 간직하면서, 앞으로의 삶에서는 더욱 더 치열하게, 존엄하게, 자유롭게, 더 많이 겸손하고 더 많이 사랑하며,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 하며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글: 12기 고한나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