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칼럼]나는 활동가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나는 활동가다. 그것도 인권활동가다.
그게 나의 직업이고, 정체성이다. 활동가가 아닌 내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30년 가까이 활동가로서 살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활동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활동가로 살다가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활동가는 ‘현장과 대중’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인권침해가 벌어진 현장은 즐비하다. 인권 문제가 없는 곳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곳에는 인권침해로 아파하는 대중들이 있다. 그들과 같이 울고, 호흡하고, 부대끼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 내가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대중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벌써 넉 달이 훌쩍 지나버리도록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열사들의 시신이 모셔진 병원 장례식장 4층을 한발도 나가지 못했다. 수배자 신세인지라, 경찰들은 우리를 잡겠다고 장례식장 주변에서 철통 같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오늘도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덤프트럭 30대가 몰려들었고, 철거와 잔재 처리작업이 진행됐다. 철거민들과 용산범대위 활동가들은 당연히 이를 막으러 나섰다. 사람이 6명이나 죽어나갔고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강제철거 속도를 높이는 걸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 이어 누군가가 용역들에게 맞아, 실신해 119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철거 및 재개발 현장은 이처럼 매일 전쟁터다. 재개발 현장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다. 경찰은 용역업체를 상급조직으로 여기는지 그들의 폭력을 방관만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철거민들이 공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외곽 경비를 서고, 적당히 개입해서 철거민들만 잡아들이고, 채증에 심지어는 구속까지 시킨다. 그래서 법은 늘 가진 자들의 것, 부자들만의 법임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현장에 난 달려갈 수 없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여러 신부님들이 폭행을 당할 때도, 나의 동지들이 거리에서 매 맞고 끌려갈 때도 나는 그들과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괴롭다. 매를 맞더라도 같이 맞고, 끌려가더라도 같이 끌려가야 속이 편한데, 그들과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없어서 더 없이 괴롭다. 모름지기 활동가는 인권침해 현장에 있어야 한다. 내 몸 하나 보탠다고 상황이 변하지 않겠지만 활동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렇지만 활동가가 항상 현장에 있을 수만은 없다. 이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지금 내 처지와 같이 수배, 아니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개인적인 일이나 경제적인 문제, 정서적 문제나 병이 생겼을 때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 지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현재 내 처지를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밖에 나갈 때, 당당할 수 있도록 다리에 힘 붙이는 운동에도 열을 올린다.
이렇게 현장으로부터 오래 떨어져 있으면, 현장에 대한 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용산참사 현장이 있다. 내가 수배 전에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물론 그런 모습을 상상만 한다고 될 게 아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영상도 보고, 사진도 보면서 달라진 점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나는 언제쯤 인권침해 현장에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 몸이 될까.
지금으로서는 참 가늠하기 어렵다. 수배 끝이 감옥인데, 앞으로 얼마나 감옥살이를 할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하기 힘들다. 현장에서 멀어지는 동안 떨어진 감은 또 얼마나 지나야 회복될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참을 헤매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떠한 조건에서도 나는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올 것이고, 대중들과 만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고민하던 문제들을 나름대로 정리해야겠다. 특히나 대중적인 인권운동을 꿈꿔왔던 나로서는 단지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운동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제 대중들이 주체로 서는 운동을 만들어갈 것 인가가 오랜 숙제였다. 이런 숙제를 안고 지낸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감옥살이가 될 것 같다.
그리고 감옥이라는 곳은 인권활동가가 관심 갖고 개선해야 할 또 하나의 현장이므로 감옥살이도 나쁘지는 않다. 더욱이 그곳에서 오랜만에 안식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다. 용산참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열사들의 장례도 지내게 되면 내가 갈 곳은 감옥이고, 그 곳은 내게 중요한 인권현장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더 단단한 활동가가 될 나를 상상한다. 얼마나 좋은가. 많은 인권현안들이 즐비한 가운데 함께 하지 못하는 동료 활동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솔직히 이게 나의 요즘 심경이다.
나는 언제나 현장에서 대중과 만나는 꿈을 꾸는 활동가로 살고 싶고, 기억되고 싶다. 너무 큰 욕심은 아니겠지. 그런 날이 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