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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광고를 생각한다 – 이은우 변호사



 
올해는 스포츠 마케팅의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굵직한 스포츠 행사가 연이어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올해 광고시장은 8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런 행사가 있고 나면 으레 광고효과가 얼마나 됐는지를 따지는 보고서가 나오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후원하고, 유명 선수를 후원하거나 광고 모델로 기용한 기업들은 엄청난 광고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승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런 대규모 행사에 광고를 할 수 있는 기업은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리겠지만, 광고를 못 내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숨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작은 기업은 품질이나 가격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광고효과는 품질로 승부를 보려는 기업들에게는 시련이 아닐 수 없다. 광고는 기업의 빈부격차를 더 벌리고, 대기업 독식의 구조를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광고는 대중이 공유하는 문화적 공감을 상업적으로 전환시켜, 일부가 독점하도록 한다. 대기업들은 ‘살아 움직이는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김연아 선수에 대한 국민의 사랑을 재빠르게 광고 이미지로 치환시켰다. 광고 효과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사랑이 특정 기업의 사유물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드라마 주인공도 마찬가지고, 연예인도 마찬가지이다. 전파나 매체는 대기업 광고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통로 역할을 한다.


 


실로 광고는 자본주의의 첨병이고, 우리 삶 속에 침투한 기업의 메신저다. 우리는 광고에 파묻혀 살고 있다. 그 침투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집을 나서면 걷는 걸 방해받을 정도이다. 조금이라도 번화한 거리로 나가면 대형 엘시디(LCD) 전광판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번쩍번쩍하는 광고가 방송되고 있다. 지하철역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전철 안에서도 고개를 들면 광고가 눈에 띈다. 잠실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노라면 차단막 전체를 가득 채운 현란한 광고를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건 마치 봉변을 당하는 느낌이다. 집 안에서도 텔레비전을 켜면 광고가 쏟아지고, 심지어 하루 종일 광고만 내보내는 채널도 있다. 인터넷을 켜도 마찬가지다. 블로그에까지 광고가 들어와 있다. 광고는 우리 삶에 너무 깊숙이 침투해서 우리가 ‘조용히 사색할 권리’, ‘편안하게 걸을 권리’를 침해하고, 이젠 안방까지 들어와서 우리의 세포 끝까지 지배하려고 한다.


 


원래 광고는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서 소비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서 출발했는데, 지금 광고가 주는 정보나 이미지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역할이 더 크다. 원래 광고라는 것은 소비를 미덕으로 강조하는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는가. 세련된 이미지나 현란한 광고의 상술 앞에서 소비자가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신용카드 대란이 있기 전에 신용카드 광고나 마케팅이 극에 달했었다. 그것은 소비를 조장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탄산음료는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데, 청량음료라는 이름으로 가장 청량한 이미지의 광고를 한다. 보험, 다이어트, 성형, 아파트, 화장품, 자동차, 휴대폰 등등. 현대의 소비자가 솔깃한 광고에 속지 않고,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기적일 것이다.


 


광고의 더 큰 해악은 기업이 광고를 통해서 여론을 통제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특정 대기업을 비판하는 칼럼을 광고주를 의식해서 싣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언론의 광고에의 종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기업이 광고비로 언론기관을 합법적으로 매수하고 있다는 탄식이 뜻있는 언론관계자로부터 나오고 있다.


 


광고는 신문이나, 방송 등 미디어의 선정성, 상업주의를 강화한다. 막장 드라마,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연예 프로, 일부 연예인이 독식하는 선정적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을 높여서 광고수익을 올리려는 과정의 산물이다. 소비를 조장하는 방송은 광고주의 입장에서도 바라는 바이다. 포털의 선정성도 마찬가지다. 광고수익이 포털 수익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구조에서, 포털의 선정성 경쟁은 포털의 생존경쟁이다.


 


사회가 거대한 기업처럼 되어 가고 있는 현상, 사회 전반의 지나친 상업주의화, 그 중심에 광고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광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글_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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