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 칼럼] 인종차별과 외국인차별, 다르게 대응해야 – 박경신 교수
2007년도에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인종차별철폐국제협약에 대한 반박보고서’를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바 있다. ‘반박보고서’란, 각국의 정부가 자국의 국제인권협약의 준수 실태를 정기적으로 보고하는데 있어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이 보고서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보고서를 말한다. 우리 시민단체들은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우리와 다른 인종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외국인노동자문제에 보고서의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막상 유엔인권이사회는 외국인노동자 문제보다는 한국의 ‘단일민족 신화’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혼혈인에 대한 처우 문제를 언급하였다. 물론 이것은 정부 측에서 단일민족을 운운하며 인종차별 문제가 별로 없음을 강조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또 유엔인권이사회도 외국인차별 문제가 인종차별 문제와 중첩되었음을 인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인차별 문제를 인종차별의 중심에 두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본다.
외국인 차별과 인종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그 심각성을 달리한다. ‘누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질 수 있고 누가 외국인으로 남아야 하는가’는 국적법에 의해 정의된다. 그리고 ‘누구에게 국적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입법자의 재량이 널리 인정되어 거의 헌법적 통제가 없는 편이며 이는 국제인권협약 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난민에관한국제협약은 국적이 아니라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맥락이 다름.) 이는 ‘누구를 새로운 국민의 일원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 기존 국민들이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는 원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외국인과 내국인이 구분된 후에는 투표권, 병역의 의무, 공무담임권, 체류자격, 일할 권리 등에 있어 차별은 당연시된다. 애초에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분하는 이유가 바로 이와 같은 차등대우였기 때문이다. 즉, 외국인과 내국인의 구분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구분에 따른 차등대우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이런 면에서 외국인노동자 문제는 인종차별의 문제라기보다는 외국인노동자 보호의 문제가 되며, 정책의 문제이지 법적인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외국인차별의 문제는 국가주의(國家主義)를 포괄하는, 실정법에 의지할 수 없는 훨씬 더 높은 층위에서의 토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종차별금지원리는 헌법적 위상을 가지며 실정법에 의지한 집행이 가능하다. 애당초 한 인종을 다른 인종과 차등대우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은 이들의 인간성을 심대하게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인종차별금지원리는 국적법이나 출입국관리법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논리가 된다. 예를 들어 국적이나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어느 한 인종에게만 불리하게 이루어진다면 이는 헌법적 이의제기가 가능하다. 그리고 인종은 피부색, 출신국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으므로 조선족이나 카레이스키와 같이 오랜 기간 다른 문화권을 형성한 사람들도 인종차별을 주장할 수 있다. 인종차별은 성차별과 함께 절대적으로 선천적인 형질에 따른 차별로써 (장애는 상당부분이 후천적이다) 인간성에 대한 훨씬 더 궁극적인 부정이다. 따라서 인종차별은 외국인차별처럼 토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액션, 다시 말해 행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최근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발의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더불어 최근 인도인에게 ‘냄새난다’고 한 남성에 대한 모욕죄 기소가 이루어졌는데 모욕죄를 이렇게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모욕죄 자체는 단순한 감정과 의견의 표명에도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위축시킨다. 모욕죄 조항은 합헌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위헌적인 적용가능성이 상당히 폭넓고, 따라서 이런 가능성이 의견과 감정의 표명을 위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축효과 때문에 표현의 자유 분야에서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이렇게 위헌적 해석과 합헌적 해석이 동시에 가능한 경우 합헌적 해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법 자체가 무효화되어야 한다. 모욕죄는 폐기되고 혐오죄(hate crime)가 제정되어야 하며 이것은 다름 아닌 인종차별금지법이다. 이미 장애인혐오에 대해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규정되어 있다.
선진국들도 모욕죄 보다는 역사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겪어왔던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혐오죄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있다. 대규모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던 미국,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프랑스, 유태인을 학살한 독일 등은 모두 수탈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선진국 대열에 올랐고 그 업보로 인종혐오행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를 없애기 위해 미국에서는 소수민족, 장애인, 여성 등에 대한 모욕성 발언을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혐오성 발언이 동반된 범죄는 가중 처벌한다. 독일은 집단혐오죄와 유태인학살부인죄, 프랑스는 국적 인종 종교적 혐오발언을 처벌한다. 또한 2007년 4월에는 EU에서 인종, 원국적, 종교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언사를 처벌하는 법을 각 회원국이 만들어야 한다는 결정을 통과시켰다.
혐오죄는 모욕죄와 달리 ‘차별의 금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1) 차별을 당하여왔던 취약계층 만이 혐오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2) 사회적 약자가 당한 차별에 이용된 특정 문구만이 혐오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즉 모욕죄의 불명확성에서 오는 위헌성이 대부분 치유가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종차별과 외국인차별은 이런 면에서 다르게 대응되어야 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종차별에 대한 액션이다.
글_박경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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