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 칼럼] 평화롭게 살 권리? – 이상희 변호사
막내 딸이 크리스마스 때 전쟁이 날 거라는 소문에 우울해 한다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강을 마주한 중학교에 다녔는데, 학교 바로 앞에서 군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군사훈련을 했다. 보트를 가지고 상륙작전(?)을 펼치기도 하고, 시커멓게 분장한 얼굴로 총을 들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어느 날은 미군들이 우루루 몰려와 훈련을 했는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연례적으로 진행된 한미연합 팀스피리트 훈련이 아니었나 싶다. 좀 규모가 있는 훈련 날이면 학생들이 수업하는 대낮에도 대포를 펑펑 쏘아대는데, 대포소리 진동에 교실 유리창이 깨진 이후부터, 아이들은 대포소리만 들으면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호들갑을 떨며 교실 유리창을 열었다.
이렇게 ‘잠시 정지된 전쟁’을 가까이 지켜보아서인지, 사춘기 시절 전쟁에 대한 공포가 상당히 컸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악몽 중 하나가 중학교 1학년 때 꾼, 북한강을 따라 동네로 들어오는 북한군 탱크의 행렬에 전쟁이 일어난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꿈이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공포가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듯 했다.
그로부터 약 25년이 지났고, 그 동안 동서 냉전은 종식되었다하며, 한반도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성사되었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의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전쟁을 염려하고, 게다가 전쟁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다 보니, 당혹스러울 뿐이다. 연평도 사태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치닫고 전쟁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도, 강경대응만 되풀이하는 정부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아니 멀리 시선을 돌릴 필요도 없이 이번 연평도 사건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목격하면서, 과연 우리가 평화로운 나라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 정부는 우리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2006년 2월 평택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한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평화적 생존권’을 인정하였다. 즉,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으며, 침략전쟁이나 테러 등의 위험이나 피해를 받지 않고 평화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비록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열거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
이러한 평화적 생존권 인정은, 국가의 의무를 전제로 한다. 즉, 침략전쟁, 테러, 범죄 등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고, 불가피하거나 불가항력적이지 않은 침략전쟁을 회피하거나 부인하여야 할 의무를 전제로 한다. 그럼, 이명박 정부는 어떠한가?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으로 치닫고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는데, 정부는 북의 추후 도발에 강경대응을 하겠다는 입장 이외에,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략과 비전을 제시한 적이 있는가.
이런 사태를 예견한 것일까. 헌법재판소는 2009년 5월, 2007년 전시증원연습인 RSOI 연습 등과 관련한 헌법소원청구 사건에서 종전의 위 입장을 변경하여 평화적 생존권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 아니라고 보았다. ‘평화’란 개념이 추상적인 개념이고, 평화적 생존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평화’보다 더 추상적인 ‘행
평화로운 삶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이 땅에서, 크리스마스의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희망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글_ 이상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