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 칼럼]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한 재의요구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 한상희 교수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9일 서울시 주민들이 발의하고 시의회가 의결한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하여 재의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는 학생을 기계처럼 관리하고 통제하는 학교문화를 탈피하고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며 평화롭고 행복한 학교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과, 이에 부응하고자 하는 서울시 주민들의 바람을 일거에 무시하고 배척한 행위일 따름이다. 학생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며 그들의 천부적인 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우리 헌법의 이념과 국제인권체제의 보편적 규범 또한 일거에 부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무모함과 무가치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구나 그 재의요구의 이유들은 하나같이 법률과 법체계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 것으로 도저히 그 위법성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이다.
먼저, 재의요구안(의안번호 관련106호) 제1항은 학생인권조례안이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바 이는 서울시 교육청 스스로가 누차에 걸쳐 문제없는 것이라고 밝혀 온 것인 만큼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학교의 자율성이라고 해서 무한정한 재량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학생인권조례는 헌법의 기본권보장조항에 따라 학교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권의 법적 한계를 설정하는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재의요구안 제2항은 학생인권조례안이 법령의 근거 없이 학생인권위원회 및 학생인권옹호관을 설치하여 교육감의 인사권 및 정책결정권을 제한할 소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판단의 근거로 들고 있는 ‘「헌법」과 「지방자치법」 및 관련 판례’는 그 어느 것도 이 주장을 뒷받침 하지 않는다. 학생인권위원회나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생활교육과 관련하여 교육감의 업무를 보좌하거나 그에 자문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 법들의 규율대상이 아닐 뿐 아니라 그러한 조직에 관한 조례제정은 시의회의 입법재량에 해당하는 것이다.(오히려 지방자치법 제116조의2는 조례로써 자문기관 등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재의요구안 제3항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특정 이념에 의해” 학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그로 인해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거나 교사의 학생교육권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의견은 헌법상의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반한다는 점에서 위헌적·반인권적이며,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함양함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본법에 위반된다는 점에서 반교육적이다. 어쩌면 서울시 교육청 스스로가 “특정 이념”과 특정정파에 치우친 고려를 하면서 정치적인 세력을 따라 좌고우면하고 있음을 고백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 학생인권조례안은 집회의 자유와 학내질서를 조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학생들의 집회를 보장하되 그 시간과 장소, 방법에 대하여는 학교규정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학생들의 집회로 인해 다른 학생의 학습권이나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해 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학습권과 교육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육청은 이 학생인권조례안을 한번 읽어보기나 하였는지 되묻고 싶다.
“성적 지향”과 관련된 재의요구안 제4항은 허위의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은 “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 공청회에서 발표한 시안에도 논란 끝에 제외되었던 규정”이라 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자문위원회의 초기 논의과정에서는 이 규정이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았다. 학교에서의 “성적 지향에 관한 차별”에 대한 실태조사가 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예의 공청회에서부터 학생과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을 받았고, 면밀한 현장실태조사를 거치면서 성별정체성·성적 지향이 학교 내에서의 차별과 집단폭력의 원인이 되고 있는 현실을 교정하여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규정이 명문화되는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논쟁 끝에 삭제”된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검증을 통해 ‘적극적으로’ 규범화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거짓말에 그치지 않는다. 제4항은 이 조항이 청소년에게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명백히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따라서 반헌법적인 혐오발언(hate speech)이다. 교육청을 비롯한 국가기관뿐 아니라 일반인조차도 사용할 수 없는 위법한 발언이다. 의당 그 문구가 제정된 경위 및 의도, 그리고 그 취지 및 책임추궁 등과 관련하여 국가의 감찰기관 혹은 최소한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제3항에 의거, 직권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두발, 휴대폰 등의 규제금지 혹은 완화조항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제5항)은 이미 전시대적인, 낡은 의견에 불과하다.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합의를 집행할 의지가 교육청에 부족한 것일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차에 걸쳐 과도한 두발규제와 휴대폰사용규제는 인권침해라고 판단하였으며, 그에 관한 학교규정의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실제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국가인권위의 권고결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교육청과 단위학교의 직무유기일 따름이다.
또한 재의요구안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은 모든 교육벌을 금지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라고 서술한다. 하지만 이는 교육청의 사고능력이 평균 이하임만 드러낼 뿐이다. 실제 여기서 오해의 소지를 자아내는 것은 이 규정이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밑도 끝도 없이 만들어낸 “교육벌”이라는 용어이다. 교과부는 체벌금지라는 시대적 명령을 거스르기 위하여 우리 법제가 전혀 알지 못 하였던 “교육벌”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마치 학생훈육의 최후수단인 것처럼 떠벌려 왔다. 하지만 그 “교육벌”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어놓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오해”를 해소시켜야 할 책임은 조례안이 아니라 서울시 교육청이나 혹은 그 비법적 신조어를 창조한 교과부에 있다.
이렇게 보면 서울시 교육청이 재의요구의 근거로 제시한 모든 사항들이 다 근거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한마디로 이 모든 주장들은 하나같이 법리를 오해한 것으로 근거가 없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한 거짓말이거나 혹은 인권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교육적 목적이나 인권적 지향에 의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파적인 이해관계 내지는 편견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억지에 불과한 것인 양 읽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서울시 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지체 없이 이 재의요구를 철회해야 한다. 서울시 교육청의 재의요구는 위헌적이며 반인권적이며 반교육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은 학생인권조례안을 발의한 서울시 주민의 의사와 이를 의결한 서울시 의회의 권위를 무시한 반민주적인 것이기도 하다. 서울시 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이러한 잘못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재의요구를 즉각 거두어들여야 한다.
아울러 원래 재의요구의 의사가 없다던 교육청을 사주하여 학생인권을 향한 서울시주민들의 의지에 딴지를 걸게 한 교과부 역시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인권의 보편성은 물론 교육자치의 엄정함을 잘 알고 있을 교과부가 일부 종교단체의 주장과 일부 정파들의 이해관계에 가담하여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휘몰아 넣어 버린 작태는 문명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권을 방기하고 교육을 포기하는 교과부란 형용모순일 따름이다.
실제 이를 바로잡을 제1차적 책무를 지고 있는 곳은 서울시 의회다. 하지만, 이런 반시대적 폭거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 책임은 우리 모두에 있다. 두 눈 부릅뜬 우리의 시민의식이 살아 있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억장 무너지는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글 _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