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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피해자의 관점에서 인권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_ 황필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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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피해자의 관점에서 인권의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 난민의 경우


황필규_공감 변호사


6월 2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난민의 날이다. 난민이란 유엔난민협약 상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지닌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라크, 버마, 방글라데시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난민 혹은 난민신청자들이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법조인의 상당수도 이에 대하여 무지하다. 그리고 난민법 전문가라고 불릴만한 사람을 국내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일차적으로 보호해야할 정부와 관련 공무원 상당수가 이들을 귀찮고 처리하기 곤란한 ‘불법체류자’로, 자신의 정부마저 부정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의 생명 때문에, 가족의 안전 때문에 돌아갈 수 없기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출입국관리법령을 보면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은 법무부장관에게 난민신청을 할 수 있고,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다시 법무부장관에게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단계에서는 공무원과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난민인정협의회에서 ‘협의’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 역시 법무부장관이 행한다. 난민신청자, 난민인정이 불허된 자, 난민으로 인정된 자에 대한 처우 등에 대해서는 법령에 별다른 규정이 없다.


  난민관련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법무부에서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현행 법령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법무부도 시인한 것인데 그 자랑이 벌써 2년이 다되어 가고 있다. 개정안이 공개되고 의견수렴과정을 거쳤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신청기한을 없앴다”, “난민신청자에게도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 “난민지원시설을 설치하겠다” 등 1년 전에 했던 말들을 다시 새로운 이야기인양 퍼붓고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절차는 그 접근가능성이 생명이다.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지극히 곤란하다면 그 절차는 이미 죽은 절차다. 잠재적 난민신청자가 그 신청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특히 공항 등을 통한 입국 시에 난민신청을 하고자 하는 자는 출입국관리사무소장 등에 의한 임시상륙허가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 심사가 사실상 난민심사를 대체하고 있고 이런 절차를 통하여 난민신청에까지 이르렀다는 사례를 접해보지 못했다. 난민신청을 하러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면 신청하지 말 것을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사례가 아직도 확인되고 있다. 난민신청자에게 무료변론은 제공되지 않고 이의신청까지 기각된 후 소송으로 넘어가는 수는 극히 적다.


  일단 이 복잡한 절차에 대한 접근이 성공하더라도 누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는 남는다. 법무부에서는 난민인정협의회에 민간전문가의 비율을 높이는 등 심사에 공정을 기하고 있고 협의회의 의견을 법무부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은 예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협의회가 1년에 한두 번, 최근에는 서너 번 밖에 모임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 며칠 전에 자료를 받아 몇 시간 만에 수십 명의 난민인정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 협의회가 독자적으로 개별사건을 조사하고 평가할 별도의 인력 등 자원이 전혀 없다는 것, 이의신청자가 법무부에 제출한 증거자료나 참고자료가 협의회에는 거의 제출되고 있지 않다는 것, 협의회 위원들의 심사는 담당공무원이 제출한 의견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 등에 대한 그 어떠한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언어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난민신청자의 상당수는 한국말을 어눌하게나마 한다는 이유로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난민사건이 확고한 증거자료보다는 당사자의 진술의 신빙성, 일관성 등에 근거하여 결정이 내려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난민신청자들은 자세하고 구체적인 진술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함으로써 거의 유일무이한 자기보호의 무기를 박탈당하고 있다.


  법무부가 비공개하고 있는 난민인정처리지침은 난민신청자의 처우, 난민신청자 면담과 그 사실적 근거에 대한 평가절차, 난민신청의 불허근거, 난민으로 인정된 자 또는 난민인정이 불허된 자의 처우 등을 규정하고 있다. 비공개의 근거로 국가안보 및 공무수행의 곤란을 들고 있는데, 권리를 자세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개하면 남용의 우려가 있다고 한다. 형사소송법령, 행형법령에 규정된 권리의 남용을 우려하여 이들 법령을 비공개하여야 하는가. 헌법상 기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난민인정 불허결정을 할 때 법무부는 사실상 그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단지 난민협약상의 난민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한다. 불허처분이 있은 후 며칠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강제출국을 당하게 된다. 이의신청하는 모든 난민신청자들은 법무부의 알려지지 않은 불허사유를 상상하며 이의신청을 하여야 한다. 이들에 대한 불허사유는 관련 공무원의 언론 인터뷰나 소송에서의 서면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처분 시에 불허사유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사후적으로 마구잡이로 이유를 갖다 붙일 수도 있다. 


  난민으로 인정된 후에도 난민은 최소한의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외국의 경우 언어의 문제, 사회생활 적응의 문제를 매우 중시하여 이에 대한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난민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물어볼 사람이 없다. 법무부는 사회보장 등은 법무부 소관이 아니라고 하고 노동부, 보건복지부는 난민은 우리가 잘 모른다고만 답변할 뿐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전화해서 주소지나 직장변경여부를 묻는 것이 정부가 제공하는 유일한 편의이다. 공적 부조, 사회보장 등에 대한 국내법이 난민협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데도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다. 다행히 법무부 개정안에는 이를 협약에 따르는 것으로 한다고 하였다지만 언제 공개되어 통과될지 알 수 없고, 조항 하나가 난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회권의 실현에 얼마만한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난민은 형식적인 절차 속에 방치되어 있다. 난민이 그 인정신청에서 심사, 난민인정 후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고통과 아픔에 직면할 수 있고 직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 없이는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무수한 외국인 관련 정책논의도 결국 허구일 수 있다. 인권의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보지 못할 때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가해자가 인권을 논하는 웃지 못 할 슬픈 현실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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