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재외동포법은 재중동포차별법?! – 정정훈 변호사

재외동포법은 재중동포차별법?!
정정훈 – 공감 변호사

1. 배제의 기술로서의 재외동포법

“모든 사회는 그 사회가 배제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한 사회의 배제와 차별의 원리에 관한 역사학자 미셀 세르뚜의 설명은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출입국과법적지위에관한법률)과 그 법에 의해 형성되는 법현실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재외동포법이 집요하게 “배제하는 것”은 재중동포들이며, 이는 법이 철저히 경제논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법은 제정 당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이주한 동포”를 제외하는 방식의 재외동포 정의규정에 대한 개념적 조작을 통해 재중동포를 법의 적용에서 제외한 바 있다. 이러한 정의규정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받자 다시 법은 “불법체류 다발국가”라는 기술적 조작에 “직계비속 2대 제한”이라는 개념적 조작을 더하여 재중동포 배제의 의도를 철저히 관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과 법률 개정이 있었지만, 법 현실의 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법률이 또는 하위법이 집요하게 배제하고 차별하는 재중동포들이 이 법을 “재중동포차별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의 고통과 분노의 경험이 다다른 현실 인식의 정확성을 보여준다.
재외동포법이 본질적으로 “재중동포차별법”이라는 점은 한명숙 의원실의 조사자료에 의해서도 객관적으로 드러난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간 재외동포 91,062명이 재외동포비자(F-4비자)를 발급받았지만, 그 중 중국동포는 16명에 불과하며, 재외동포법(시행령) 개정 이후에는 단 한명의 중국동포도 동포비자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형식적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출입국과 취업상의 광범한 혜택을 차단당해온 재중동포 등에 대한 불평등을 해소하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내용과 취지를 법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법률 개정의 취지를 하위법인 시행령(“직계비속 2대 제한”)과 시행규칙(“불법체류 다발 국가”)에 의해 왜곡하고 있는 현재의 법 현실은 행정입법에 의한 국회입법권의 약화라는 대의제 원리 훼손의 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2. 고용허가특례제도, H-2비자의 문제점

재외동포 정책은 국내 비정규직 보호, 이주노동자와의 차별문제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입법 과정에서 개별법을 통한 실질적 보호론이 제기된 바 있고, 위헌 결정이 있었으며, 법 제정 및 개정 이후에도 법에 대한 재중동포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점은 일정 정도 이와 같은 문제 자체의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법에 의한 재외동포 정책의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법이 제정된 이상 구체적인 접근 방식은 재외동포법의 입법취지와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 재외동포법 및 재외동포 정책의 본질적인 과제는 경제주의 논리에 입각해 재외동포를 거주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별하고 있는 현실을 수정하여, 법과 정책의 형평성, 보편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재외동포법의 직계비속 2대 제한, 단순노무행위 금지, 불법체류 다발국가 동포의 출입국 봉쇄를 통하여 재중동포를 법 적용에서 배제하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의 고용허가특례제도를 통하여 일부 재중동포들에게 국내 취업상의 이익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수립?집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고용허가특례제도상 취업관리사증(F-1-4)의 발급대상자가 실질적으로 재외동포체류자격(F-4)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원화한 결과, 재외동포법에서는 “단순노무행위”를 금지하면서, 다시 고용허가제를 통하여 사실상 재외동포에게 “단순노무행위”를 허용하고, 결과적으로 재외동포체류자격은 부여하지 않는 모순된 방식의 접근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법무부에서 중국동포 등에게 1회 방문시 최장 2년 동안 국내 입국과 취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문취업(H-2) 비자를 신설하여, 시행 초기에는 3만명 정도의 쿼터를 정해 비자를 발급하고, 장기적으로 모든 동포에게 확대발급토록 하는 방문취업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보도내용에 비추어보면 방문취업제는 고용허가특례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재중동포들의 출입국과 취업에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한 진일보한 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고용허가특례제도와 마찬가지로 방문취업제도 역시 기본적인 관점상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들 제도는 재중동포에게 취업 등에 있어서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할 수는 있더라도, 재외동포법상의 재외동포체류자격은 부여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전제위에 서 있다. 특히 보도내용에 의하면 방문취업(H-2)비자는 그 성격이 “단순노무행위”를 제외하고는 재외동포(F-4)비자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체류자격을 구분하여 재중동포를 재외동포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는 기존의 정책과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취업과 출입국상의 실질적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재중동포들을 역사와 인권, 법 적용의 관점에서 정당하게 재외동포로 인정하여 체류자격(F-4)을 부여하고 법과 정책의 보편성, 형평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 방향은 재외동포법의 입법취지와 국내 노동시장 보호라는 외국인력정책의 현실적 문제점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의 모색되어야한다. 재외동포법이 존재하는 이상 방문취업비자(H-2)라는 묘수풀이를 통해 우회하는 접근 방식이 아닌, 정당하게 재외동포체류자격(F-4)의 틀 내에서 문제의식들이 고민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단순노무행위” 취업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재외동포체류자격(F-4)을 이분하고, 단순노무행위 취업 가능 제외동포체류자격의 경우에는 국내 노동시장 보호를 위해 비자발급 쿼터를 제한하는 방식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법 적용의 관점에서 재중동포를 재외동포로 인정하는 기본적인 관점과 함께 재외동포정책이 폐쇄적 민족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국내 이주노동자와의 차별문제를 최소화하는 방식의 관점도 필수적이다. 세계화라는 “객관적 조건”하에서 “열린 민족주의”로의 재외동포정책 지향이라는 근본적 취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나, 한국 사회의 “주관적 조건”하에서 “역사성의 문제”로서의 재외동포정책 과제들이 놓여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식민지 지배, 분단체제, 반공독재 등 왜곡된 근대 형성 경험이 야기한 여러 재외동포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은 민족주의를 넘어 다양성과 차이에 기초한 사회를 구성하는 실천적 과제와 함께 또는 그 전제로서 수행되어야 하는 과제라는 근본적인 관점의 정립이 필요하다.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