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송, 시민운동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최인욱
공감포커스
최인욱 -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감시국장
올해부터 주민소송제가 시행되었다. 주민소송제는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낭비 등 엉터리 행정에 대해 직접 소송을 제기하여 시정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로서, 시민단체들이 오래 전부터 도입을 요구해온 가장 중요한 주민직접참여제도 중 하나이다.
비록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소송 전에 주민감사청구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등 미흡한 내용으로 입법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이 지방정부 행정의 적법성을 직접 다툴 수 있는 법적 주체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2000년 10월 하남시민 266명이 시 정부의 ‘99 하남국제환경박람회 적자보전을 위한 보조금지급결정’을 무효로 주장하며, 이른바 ‘한국 최초의 납세자소송’을 제기하였을 때 법원은 각하 결정을 내렸었다. 즉 아무리 잘못된 행정이라 할지라도 일반주민은 직접적 자기 피해가 없는 한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권리도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사실 이 소송을 주도한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결정이 나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주민소송과 같은 특별한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우리 법체계에서 주민들의 소송 제기를 받아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질 것이 뻔한 소송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미 이 사건에 관해서는 감사원 등 행정부 내 감사도 다 끝나 버렸고, 시의회도 처음에는 ‘법적 근거 없는 엉터리 예산집행’이라고 비판하다가 갑자기 날치기로 예산사용을 승인해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행정부나 의회가 스스로 시정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남시 연간 재정규모의 1/10에 해당하는 190억 가까운 거액이 이 행사 지원금으로 퍼부어지고 있었음에도 시민들은 행정부와 의회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이처럼 불합리한 우리 법제도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납세자인 시민이 자신이 낸 세금으로 조성되는 예산사용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하는 ‘납세자소송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이길 수 없는 소송을 감행한 것이다.
아무튼 시민사회의 이런저런 노력과 시대적 상황 변화에 힘입어 드디어 지방자치 범위 내에서나마 납세자소송제가 도입되었다. 이제 주민들은 설사 결과적으로 재판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산을 함부로 쓰는 행정행위에 대해 자기 이름으로 끝까지 시비를 가려볼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활발하게 지방행정을 감시하고 문제가 있는 사안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소송을 전개하여 판례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지방정부의 청렴도와 효율성 제고는 물론 참여예산제 확대, 주민소환제 도입 등 참여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취지에서 전국 각지의 예산감시운동 협의체인 ‘예산감시네트워크’(간사단체 함께하는시민행동)는 젊은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주민참여법률지원단’을 구성하고, 주민참여제도에 관한 법적 자문, 정보 제공 등을 위한 ‘주민참여가이드’(guide.action.or.kr) 사이트를 개설하였다.
주민참여가이드 사이트는 주민소송뿐 아니라 주민감사청구, 주민발의(조례제정및개폐청구), 주민투표 등 중요한 주민참여제도에 관한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주민참여제도 활용에 관한 법률자문과 정보제공, 교육 등은 물론 시범적 주민소송을 제기하여 이후 지역에서의 주민소송이 보다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선례를 만드는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미 주민참여법률지원단은 20여 건 정도의 지역 예산낭비 사건에 관해 법률자문을 제공했으며, 그중 5건 이상이 주민소송 전 단계인 주민감사청구에 들어갔거나 곧 들어갈 상황이다. 이들 사건에 관한 감사결과가 나오면 내용 검토를 거쳐 이르면 4월중에 첫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참여법률지원단이 검토를 요청받은 사건들은 지자체장 등 고위공무원이 업무추진비를 단란주점 출입 등 유흥비나 선거운동용 선물 구입비 등으로 사용한 경우, 비상식적인 일처리 강행으로 기껏 지어놓은 쓰레기 처리시설이나 도로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합리적 이유 없이 토지매입 계약조건을 변경하여 수십억을 추가 지불하게 된 경우 등 매우 다양하다.
그동안 이런 사건들에서 문제가 불거져도 지방자치 이후 민선 지자체장에 대한 행정부 내 통제방안이 없고, 지방의회와 주민의 권리도 취약한 탓에 대부분 경고 정도에 그치거나 하위직 공무원만 징계당하는 식으로 유야무야 끝나기 일쑤였다. 낭비된 예산 환수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주민들이 직접 소송을 걸어 사업의 중지나 취소, 책임자에 대한 손해배상 등을 요구할 테니 자기들끼리 얼렁뚱땅 넘어가는 식으로는 처리가 곤란할 것이다. 이처럼 주민소송제 도입은 행정부와 정치권 내부의 자정능력도 향상시키고 강제하는 효과를 갖는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주민소송제가 본래 취지대로 잘 활용되고 좋은 사례를 축적해 나간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약 이전의 다른 주민참여제도와 같이 별로 사용되지도 않고, 힘들여 제기해봤자 결과가 시원치 않게 나오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있으나마나한 제도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소송제를 빠른 시일 안에 정착시키고 더 나은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해 시민사회의 긴밀한 정보공유와 공동행동이 필요하다. 법률가들조차 생소한 이 제도를 활용하여 기대한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당연히 이쪽도 상당한 준비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소송을 내는 데만 의의를 두거나, 자기 지역에 한정해서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제도는 항상 양날의 칼과 같다. 판례가 생기면 마치 법과 같이 이후 유사한 소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민들이 이겼을 때는 다른 엉터리 행정을 미리 예방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주민들이 졌을 때는 잘못된 행정을 합법화시켜 줄 수도 있다.
때문에 사법부에게 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 주민소송에 대한 세부적인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단체 등 조직된 시민들이 앞장서서 서로 긴밀히 연대하여 정보를 나누고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줘야 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주민참여법률지원단 및 주민참여가이드 사이트 활동은 이러한 지역간 연대와 정보공유를 위한 공간 및 전문역량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시민사회가 힘과 지혜를 모아 나간다면, 비록 미흡한 내용으로 출발하였지만 주민소송제가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혁신과 실험정신, 인터넷에 기반한 네크워크 정신, 정부와 기업으로부터의 재정독립,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꿈꾸고 이끌어내기 위해 힘 쓰고 있다. 시민행동은 예산감시운동, 좋은기업만들기운동, 정보인권운동, 인터넷시민학교의 팀을 집중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유관 단체들과의 협조아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