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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원단체탐방- 에이즈예방법 공동행동을 찾아서

2006년 7월 4일, 여의도 국회 앞에 감염인, 보건의료인, 동성애자, 인권시민단체 활동가들이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발족과 향후 투쟁계획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20여 년간 유지되어 왔던 공포의 예방 패러다임을전환하고, 감염인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공동행동이 몸을 던졌다. 공감 뉴스레터팀은 공동행동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 국가의 기원을 아시나요? ”

한 삽으로 우물을 팔 때 무조건 깊게 파서는 1미터도 못 가서 멈춰야 할 것이다.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파야한다. 12월 29일 공감이 만난 공동행동의 활동가 변진옥씨(서울 보건대 연구원)는 세상을 넓고 깊게 파는,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공동행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는, 우리를 보자 대뜸 “국가의 기원을 아시나요?”라며 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던져야 할 우리가 되레 질문을 받아서 당황하고 있는데 그는 웃으며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국가의 권력 행위가 개인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해요. 사는 지역, 소득 격차 교육 수준에 따라 건강 상태가 다르다는 건강 불평등 문제를 봐요. 흡연률이나 사망률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르잖아요. 개인의 건강은 공적으로 관리되어야 하죠. 건강권은 자유권과 같은 기본권이에요. 국가가 국민의 건강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을 설득하기 위해 그 의무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이에요.”

그가 제기한 철학적 질문이 에이즈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헤아리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에이즈는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동행동이 집중하는 질병은 에이즈이지만,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 전체를 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역시 우물은 깊고 넓게 파야 한다.

개인 정보를 개인의 허락 없이 사용한 것은 엄연한 불법

공동행동이 ‘인권이 에이즈 예방이다’라는 구호를 외칠 때 길가의 시민들은 갸우뚱 했다. 에이즈와 인권의 관계가 느슨해 보이기 때문이다. 공동행동이 뭉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에이즈 예방의 명목아래 에이즈 감염자의 인권이 침해당한 사건이었다.

헌혈을 통해 에이즈가 감염된 사고가 발생했다. 헌혈유통을 책임지는 적십자사는 큰 조직이지만 환경이 열악했다. 적십자사는 인력이 많이 부족하고 첨단 기기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헌혈하는 사람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는지를 세심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정부가 이에 내놓은 대책을 변진옥씨는 비판했다.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아세요? 기술을 갖출 생각은 안하고, 전염자들의 정보를 적십자사에 넘겼어요. 질병관리본부가 관리하던 감염자의 정보를 적십자사에 넘겨주면서, 감염자들이 헌혈을 못하도록 예방하면 된다는 거였죠. 정부는 이것이 혈액관리 법에 근거한다고 주장했어요. 말도 안되죠! 개인의 정보인 병력정보를, 개인의 허락 없이 사용한 것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그는 정부의 임시 대책을 너무 무책임한 태도라고 평가했다. 2005년 11월 공동행동은 감염자들과 연대하여 감염자 정보제공 철회를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를 진정하여 의미있는 판정을 받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적십자사에 감염자들의 정보를 제공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 혹은 근거가 있더라도 정보 공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결정을 인권위로부터 받아낸 것이다.

‘감염인조차 예방법 잘 몰라’ 간담회 개최

2006년 초에 보건복지부가 에이즈 예방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공동행동은 다시 움직였다. 나누리 플러스와 다른 인권단체들과 연대하여 예방법의 공동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방법은 감염인의 인권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법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익명검사 등의 발전된 조건을 담았다고 예방법을 선전했다. 공동행동은 투쟁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았다. 진보넷과 협력하여 외연을 넓히고, 활동의 원칙을 명확히 했다. 먼저, 예방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재개정 혹은 전면 폐지의 두 가지 안이 나왔다. 많은 감염인들은 의료비 지원이 예방법에 근거한 줄 알고, 법안의 폐지를 꺼렸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감염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예방법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폐지 후 개정으로 공동행동의 입장은 정리되었다.

두 번째로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감염인들 조차 예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대중 캠페인과 감염인 증언대회를 통해 시민과 감염인의 공감을 얻도록 노력했다. 매월 1회씩 ‘에이즈 감염인과 새끼손가락을 겁시다.’라는 테마 있는 캠페인에 시민들은 따뜻한 관심을 보였다. 치료제 접근권, 빈곤, 직장 내 차별 등 감염인이 겪고 있는 차별들에 대한 공연을 거리에서 열기도 했다.

“ 왜 감염인에게만 의무화하지요? ”

현재 공동행동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은 에이즈 예방법 전면 개정안 준비를 마쳤고, 정부안과 동시에 국회에 상정한 상태이다. 정부가 내놓은 예방법은 전파매개행위처벌, 직장 내 차별 등 독소조항을 여전히 포함하고 있다.

“전파매개행위 처벌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잖아요. 게다가 감염인에게만 콘돔사용을 의무화합니다. 예방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콘돔을 사용해야 하는 거지, 왜 감염인에게만 의무화하지요?”

에이즈 예방을 위해서 콘돔 사용은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방운동이 특정 집단에게만 콘돔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그 집단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고 변진옥씨는 지적한다. 성매매 종사자, 동성애자, 감염자만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법은 이들이 바이러스 전파자라고 알려주는 표지와 같다. 이런 ‘순결 이데올로기’는 질병에 부정적 인식을 씌운다. 오히려 에이즈는 다양한 결정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감염자 중에서 어린이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난한 여성이 주로 감염된다. 빈곤, 불평등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에이즈 예방의 걸림돌이다.

약품의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는 환자나 민중이 되어야

신약이 개발되어 에이즈는 만성질병이 되었다. 효과적인 약으로 꾸준히 관리를 하면서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성이 결여된 시장에서 약품을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에이즈 예방에 한계가 있다. “시장의 구조를 조정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예방이 불가능하다”고 변진옥씨는 지적한다. 2000년 이후에 개발된 신약 중에 한국에 들어온 약은 2종 밖에 없다. 한국의 에이즈 약품 시장은 감염인이 3600명 수준의 작은 규모이다. 제약회사는 한국 시장에 등을 돌린다. 반면 고혈압 약은 미국에서 출시되는 것과 동시에 한국에 들어온다. 한국의 고혈압 약품 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희귀성 질병의 약은 한국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 에이즈 신약은 백인 중산층을 위한 약이라고 봐야죠.” 너무 비싸서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약은 환자에게 그림의 떡이다. 그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약값을 높게 책정해서 국민의 치료접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환자의 재정부담을 덜기 위해 국가가 재정을 지원해야 하면 어떨까? 이에 대해 변진옥씨는 근본적인 대응이 아니라며 고개를 돌린다.

“근본적으로 문제는 제약회사와 자본주의에요. 제약회사는 시장원리에 따라 유통을 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있어요. 하지만 약품은 상품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공공재이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일방적으로 약값을 책정해서는 안되요. 약품의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는 환자나 민중이 되어야 합니다.”

변진옥씨는 공익을 무시하고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장원리를 비판하며, 민중이 주체가 되는 대안 사회를 제시했다. 공동행동의 직접적인 관심사는 에이즈이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공공의약권을 회복하는 공익의 실현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에 포함된 지적재산권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폭리를 심화하고 구조적 빈곤을 강화하기 때문에, 공동대응은 반 FTA 운동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인터뷰 초반에 변진옥씨가 우리에게 큰 질문을 던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물이 바다가 되기를

변진옥씨는 약국 운영을 접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보건의료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학교에서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 공공의약 운동을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활동가로서 공공의약 운동의 매력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없이 대답한다.

“공동대응 활동에서 사람들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점이 참 좋았어요. 사람들과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질병의 의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원인을 근본적으로 찾아 보거든요.”

그의 뒤편에 살짝 비친 컴퓨터 화면에는 국가의 기원에 관한 검색 목차가 떠있었다. 오늘도 변진옥씨는 깊고 넓게 우물을 파고 있었다. 자신이 발 딛은 세상을 향한 몸짓을 멈추지 않을 때, 그가 만든 우물은 바다가 될 것이다.

취재_이선희, 박영미, 전경태, 홍은기 인턴
글_이선희 인턴
사진_박영미 인턴
※ 에이즈예방법공동행동 소개

공동행동은 에이즈예방법 고발투쟁, 감염인 인권침해의 사회적 의제 형성, 감염인이 정책에 참여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국제 인권 및 감염인 네트웍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가 예방법 개정을 위한 운동에 뛰어들면서, 공감과 공동행동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공동행동에 참가한 단체는 공감 외에도 공공의약센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등 30여개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공동행동은 하나의 단일한 조직이라기보다는, 여러 단체들이 연합하는 유동적 조직입니다. 고정된 사무실은 없습니다.

하지만 매주 월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구여. 장소와 시간 공지, 자료 공유는 공동행동의 홈페이지 http://aidsact.or.kr 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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