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_ 송윤정 기부자님
[기부자편지]
“처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송윤정 기부자님
대학신문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해결책 없는 공허한 비판에 회의를 느끼며 실질적으로 내 스스로 말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끝에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얼마간의 치열한 삶의 과정을 거친 후 합격자 명단 속의 내 이름을 발견하고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면서 내 스스로 다짐한 말이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던 그 마음을 잃는다면 결국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은 허울일 뿐이고 나또한 허상일 뿐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의 연수원 생활을 하면서 등 떠밀리듯 임관지상주의로 인한 치열한 성적경쟁과 엘리트주의 속에 처음의 그 마음을 잃어가고 있었고 결국 연수원이 끝날 무렵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허탈감과 무력감에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찰라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공감입니다. 기부자님들과 조촐한 저녁식사를 하고 싶은데 시간이 어떠신지…”
연수원자치회 특강 때 “어느새 연수원에 입소한 후 8천원짜리 갈비탕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 어떠했습니까?”라는 공감 변호사님의 질문 앞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나를 돌이켜 보며 공감에 기부하기로 했던 나였다. 연수원을 마치고 사회로 나가는 그 경계에서 ‘돈 잘 버는 변호사’를 버리고 ‘남들이 보기에 힘들고 어려운 변호사’를 택한 그분들의 말을 듣고 싶었다.
먼 거리에, 추운 날씨로 집 밖으로 발을 내 딛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어느새 공감을 향해 가고 있었고 여느 로펌처럼 번화가에 높은 빌딩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일반 집을 개조한 듯한 사무실이 공감 건물이었다. 문 밖에서부터 들여오는 웃음소리만큼이나 큰 탁자를 가운데 두고 변호사분들과 참석한 사법연수원 기부자 3명 등(130여명의 기부자 중 3명만이 참석했다)은 서로의 소개와 공감에 기부한 동기, 사법시험을 준비한 동기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준비한 조촐하지만 여느 식사보다 따뜻한 식사를 했다. 준비한 공감의 활동영상을 보면서 어두운 사회에서 한 줄기 빛의 역할을 묵묵히 담당하고 있는 공감의 구성원 모두가 존경스러웠다. 뒤풀이 시간,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게 하는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변호사분들은 서로 소탈한 웃음을 지으시며 “사람이요.”, “유의미적 변화죠”…. “근데 이일이 힘들지가 않아요. 제가 선택했고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힘들어 보이는 일이니 당연히 직접 일을 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물었던 질문을 무색하게 만드는 답이었다.
대화 중간 중간 진행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분들이 얼마나 자신의 일에 열의를 갖고 일하고 있는 지 느낄 수 있었다. 검사였던 한 변호사님은 공감에서 일하기로 결정할 당시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고, 이러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정신적사치일 수도 있다고 충고하셨지만 지금은 공감의 기부자가 되셨다면서 좋아하셨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늦은 시각, 변호사분들은 다시 공감 건물로 향하셨다. 아직 더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많은 법학도들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법조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법조인의 길에 입문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그 처음 마음을 상실한 채 속한 그룹에서 패배감에 살거나 우월주위에 빠져 그 처음 마음을 잃어간다. 그렇기에 이런 말들은 합격수기에나 쓰는 말이 된 듯하다. 그러나 공감의 변호사들은 진정 주위에 돈 없고 ,빽 없고, 약한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분들의 너무나 밝게 웃는 모습과 아직 할 일이 많다며 늦은 시각 공감 건물로 향해 뒤돌아서는 모습은 앞으로의 나의 법조 생활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듯하다. 대화 중 인턴학생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공감에서 일을 하면 딱딱한 마음이 몽글몽글해 지는 듯한 느낌이예요.’
이제 사회의 일정부분에서 일하게 될 그 출발선에서 짧은 시간 공감과의 만남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딱딱해졌던 마음은 어느새 몽글몽글해 졌다. 그리고 잊었던 ‘처음’을 다시 붙잡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기 전 그 ‘처음’을 다시금 마음에 품게 해준 공감의 조촐한 식사 제공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