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신매매’와 ‘소비자 보호’의 딜레마
2010년 3월 초 캄보디아 재판부가 한국인 남성 한 명과 25명의 캄보디아 여성들을 집단 맞선 시킨 현지 브로커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재판 결과가 보도되자 캄보디아 국민 사이에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은 인신매매라며 사회적 여론이 거세게 들끓었고 그에 따라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영사관에 국제결혼 업무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사실 캄보디아 정부는 이미 2008년 3월 27일에 “한국인과의 결혼 방식은 여성들이 착취와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인신매매의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한국인 남성과 자국 여성의 국제결혼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그 직후 캄보디아 정부는 중개업체나 중개인 또는 결혼중개 전문회사를 통한 혼인은 절대 금지한다는 내용의 법규를 제정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국제결혼 중개 소비자, 보호기준 강화”라는 제목의 뉴스가 보도되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경우 소비자는 결혼 재주선을 요청할 수 있도록 표준약관이 마련되었단다. 지난 2007년 12월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이 제정되며 한국 정부는 상업적인 국제결혼 중개를 ‘등록제’로 관리·감독하겠다고 나섰고 그에 근거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표준약관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여기에서 ‘소비자’란 중개업자에게 수수료를 부담하는 한국인 남성을 지칭한다.
현행 국제결혼 중개 구조를 두고 국내 인권단체들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해왔다. ‘매매혼’과 다름없다는 시각과 비즈니스화된 국내결혼과 마찬가지라는 시각 사이에서, 영리 목적의 국제결혼 중개 행위는 ‘전면 금지’ 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적절한 정부 개입을 통해 문제적인 중개 행태를 ‘관리·감독’해 나가야 한다는 관점 사이에서, 동의를 불문하고 현재의 중개방식은 ‘여성 인권 침해적’이라는 주장과 ‘이주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북돋워야 한다는 시각 사이에서.
지난 2월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있었던 ‘문제는 다시 국제결혼 중개업이다’ 토론회에서 “현재의 중개방식 안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서 관계에 대한 책임이라든가, 결혼을 약속했던 타인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국제결혼 중개를 통해 이윤 취득을 용인하는 것은 중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상업용 물품이 아닌 이국적의 두 인간이며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중개되어야 할 두 남녀가 필연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음을 묵과하는 것이다”는 김정선 여성학 박사의 통렬한 지적이 가슴에 울린다.
캄보디아 상황을 배제하고 보면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정부 조치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 하에 자국 남성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외국인 여성의 인권 침해는 간과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제결혼이 일국의 문제가 아닌 국경을 넘는 이주의 문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비자 보호라는 협소한 접근방식으로 국제결혼중개 행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인신매매처벌법과 인신매매피해자 보호법을 준비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결혼중개법을 통해 처벌할 수 없었던 인신매매적인 국제결혼 중개행태를 처벌할 수 있고, 인신매매 피해자의 체류지원·생계지원 등이 가능한 법이 시급히 마련되어 ‘인신매매’와 ‘소비자보호’ 사이의 딜레마가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_소라미 변호사
이 글은 <여성신문> 오피니언 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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