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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지원단체 탐방_노숙인복지와 인권을 실천 하는 사람들

파견지원단체 탐방

노숙인복지와 인권을 실천 하는 사람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양 옆으로 쪽방들이 나 있는 통로가 이어진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문헌준 대표님의 손이 마루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사무실이 주가 아닌 주거공간이 주가 되어 있는 단체의 환경은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하 ‘노실사’)의 지향점을 말해 주고 있는 듯 보였다. “노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공간의 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저희가 적은 액수로 쪽방 임대업을 하는 것도 그런 취지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부랑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부랑자와 달리 노숙자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시기는 IMF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거가 없는 이들에게 이미 ‘가족’이라는 존재는 찾아 볼 수 없다. 개인으로 홀로 남겨진 이들에게 가족은 짐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당시, 정부를 주축으로 노숙인 쉼터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 때 쉼터실무자들이 실무자 스스로의 노동권익을 위해 노숙인복지실무자협의회를 창립하게 되었고, 이 후, 노숙인 당사자의 권익으로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지금의 단체가 결성되게 된 것입니다.”

노숙인들을 감싸고 있는 문제는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불완전한 소득수준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이는 개개인의 만성질환으로 이어지며, 이는 근로제공의 발목을 잡는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주거와 의료, 그리고 일자리창출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래도 이 중에 기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은 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시설정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그 마저도 수용인원이 많아,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밀집된 상태에서 칼잠을 자야한다고 한다. “우선 주목을 해야 할 계층은 아직 근로를 제공할 여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주거비가 소득에 비해 비중이 크다면, 이들의 주거환경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저렴한 주거 공급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경우, 저소득계층을 수용하고자 하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있을 경우, 일부 주거공급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임대료 상한액을 설정하는 주거정책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노숙인을 대하는 시각 또한 바뀔 필요가 있다. “서울역 사태 이후, 갑자기 상담보호시설이 늘어난 적이 있습니다. 거리급식도 늘어났구요. 하지만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는 당사자는 ‘의존형 인간’이 될 뿐입니다. 노숙인 스스로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요. 형색이 초라할지는 몰라도, 그분들도 인간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단체들의 구호사업 등도 필요하지만, 계속 이러한 방향으로만 해결점이 귀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빈곤의 대물림이 가족을 해체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단순히 주거비 지원으로 이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거와 일자리문제는 연동되어 일어나고, 그마저도 이들을 가로막는 것은, 대물림되는 빚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불법브로커들이 각종 장기밀매, 조선족 여성과의 위장 결혼, 불법 사업자명의등록에 있어, 노숙인을 악용하고 있는 세태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느 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채권자들이 몰려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채권자들도 황당해 하겠지만, 정작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힘없는 이분들이야 말로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노숙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부르짖지 못하는 계층이다. 법률적 상담은 요원한 영역이며, 그마저도 고소를 하려하면, 상대를 알 수가 없다. “소송까지 못가더라도, 노숙인들 스스로가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빚을 안게 된 이들은 ‘신용불량자’가 아닌, ‘금융피해자’라 할 수 있다.

노실사는 현재, 후원금과 활동가들의 부수적 수입활동(고물수집, 일용근로)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자원봉사자들의 꾸준한 손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지칠까 봐 고민이 된다는 문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외부의 활동가가 아닌, 노숙인 당사자가 연합되어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당사자 조직이 많습니다. 자판기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캔 수거를 통해, 공동생활을 이루는 재정적 바탕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당당함은 의존적이냐 자립적이냐에서 결정되어지는 문제이다. 노실사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복지정책도 아니고, 후원회의 거대한 기금도 아니다. 바로 노숙인 스스로가 당당함을 되찾는 것이다.

글.사진_이영주 공감인턴
취재_이상현, 이영주, 이정선 공감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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