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하면 안 될까? – 염형국 변호사
공감포커스
1.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가요?
장애인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라며, “함께 사는 세상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자기 아이의 짝이 장애인일 때, ‘친하게 지내라’는 말보다는 담임선생님에게 짝을 바꿔달라고 하거나, “특수학교가 있는데…” 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식당에 장애인 손님이 들어오려고 할 때에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한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자기 지역에 장애인학교나 시설이 생긴다고 할 때에는 ‘땅값이 내려간다’, ‘지역 이미지가 나빠진다’등의 이유로 결사반대하기도 합니다. 장애를 가지고도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격려하면서도 막상 직장에 장애인이 지원서를 내려고 할 때에는 “그 몸으로 일은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라며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합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위와 같은 반응은 그리 낯설지도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장애인들에게는 견고한 장벽과 굴레가 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배제로 인해 교육에서, 직장에서, 사회활동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어서 비장애인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는 장애인에게 열등하고 무능력하다는 낙인을 찍고, 그러한 낙인은 또 다른 차별을 낳게 되는 차별의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사회 일반의 인식은 장애를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신체적?정신적 결함으로 보고 장애를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만 취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시책과 법제도 또한 장애인 개인에 대한 시혜적이고 복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에서의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사회통합에 더 큰 장애물이 되어 왔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에서의 차별과 배제라는 측면에서 보게 되면 장애의 문제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차별적인 사회적 기제가 바로 장애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장애의 문제는 개인적 결함이 아닌 사회적 배제의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뿌리 깊고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장애인 차별문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시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부의 차별시정기구의 일원화 방침에 의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사회적 차별금지법을 준비하고 있고, 그 내용에는 장애?성별 등 20개의 차별사유에 대해 고용?재화 이용 등 4개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권리구제에 있어서도 입증책임의 전환, 시정명령권의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등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애인 차별문제는 다음과 같은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차별금지법?차별시정기구가 필요합니다. 우선 차별기간의 영구성입니다. 학벌이나 비정규직,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그 지위의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문제는 전 생애에 걸친 문제입니다. 둘째로 차별유형의 총체성입니다. 다른 집단에 대한 차별은 주로 고용 영역에 집중되어 있으나 장애인은 고용뿐만 아니라 교육, 이동, 정보접근, 사법절차, 문화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차별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로 장애 및 차별판단 기준의 다양함입니다. 다른 집단에 대한 차별에 대한 판단은 기준이 명확하여 그에 대해 큰 문제가 없으나 장애인의 경우에는 장애의 판정기준에서부터 차별의 판단기준이 다양하고도 전문적이어서 판단이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넷째로 장애인의 당사자주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유독 자신의 문제에 관해서도 주체가 아닌 정책의 대상이었고, 주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인권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과 선택을 존중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러한 논의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근거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어 장애로 인한 차별을 비롯한 18가지 차별에 대하여 조사하고 구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사건 2,600여건 중에서 차별에 대한 진정은 130여건, 장애로 인한 차별에 대한 진정은 고작 15건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는 사회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이 적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우선 장애로 인한 차별에 대한 지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차별을 받고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장애인 당사자 스스로 진정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장애로 인한 차별은 다른 분야에서의 차별보다 차별영역과 차별유형이 광범위하고, 차별기간이 영구적이며, 차별에 대한 판단기준이 복잡하여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로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고, 독일의 경우에는 장애인균등법이 있고, 영국과 홍콩 등 20여개 나라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장애인관련법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실질적인 강제수단이 없이 무늬만 장애인 인권을 보호하는 규정들 때문이고, 그것도 고용?교육?정보접근권?시설이용?이동권 문제 등 광범위한 장애인 차별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2. 무엇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인가요?
차별이라 함은 어떠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자의적인 기준으로 불평등하게 대우하여 그 특정개인과 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열등하고 무능력하다는 낙인을 찍고, 일반 사회활동에서 배제하고 격리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는 직접적 차별과 간접적 차별이 있습니다. 직접적 차별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장애를 이유로 구별하고, 배제하고, 제한하는 것을 말하고, 간접적 차별은 비장애인에게 적용할 요건을 무조건 동일하게 장애인에게 적용함으로써 비장애인에 비해 불리하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공무원 임용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만 면접에서 탈락시키는 것은 직접적 차별에 해당하고, 임용을 위한 필기시험에서 지체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간접적 차별에 해당합니다.
장애인 차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고용에서의 차별입니다. 장애를 이유로 채용면접에서 탈락시키거나, 중도에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발령을 내거나 아예 해고하거나 퇴직을 강요하는 예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장애를 이유로 승진에서 차별을 하고,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다음으로 교육에서의 차별입니다.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거부하고, 다른 학교로의 전학을 강요하는 사례가 많고,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이나 학습지원시설이 미비한 것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이동권 및 접근권에서의 차별입니다. 장애를 이유로 승차를 거부하거나, 장애인의 보조기구, 보조견의 사용을 거부하는 행위, 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의 미비 등이 이동에 있어서의 차별에 해당합니다. 수화통역, 점자로 된 책자, 자막방송 등 장애인이 정보를 접근하기 위한 장치가 되어 있지 않거나 이를 거부하는 행위 등은 정보접근에 있어서의 차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법절차에서의 차별입니다. 정신지체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에게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강요하거나, 적법절차를 무시한 채 인신을 구속하는 행위,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는 장애인의 진술을 무조건 배척하는 행위 등이 사법절차에 있어서의 차별입니다.
다섯째로, 문화향유권에서의 차별입니다.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문화시설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거나, 장애인임을 이유로 출입을 거부하는 일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섯째로 복지시설에서의 차별입니다. 장애인의 의사에 반하여 시설에 강제로 입소하게 하거나 퇴소를 거부하는 행위, 시설 내에서 외부와의 소통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억압하는 행위는 중대한 차별에 해당합니다.
일곱째로 의료에서의 차별입니다. 장애인임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거나, 과다한 신체노출을 요구하고 당사자의 동의 없이 장애 상태를 공개하는 행위 등이 의료에 있어서의 차별입니다.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한 차별은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여성장애인은 여성이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여성장애인은 여성이면서 장애인이라는 이중적인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으로 차별을 받고 있고, 그에 더하여 가정폭력과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 힘겹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아동은 장애를 가진 아동입니다. 아동학대의 문제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장애아동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이유로 버려지거나, 장애에 대한 무지와 경제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가정에서 버림받아 강제로 시설에 입소되고, 교육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중적인 차별의 대상이 되어온 여성장애인과 장애아동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고, 이들에 대한 이중적인 차별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3.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게 되면…
비장애인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 사회에서 비장애인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장애인을 배제하고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당사자에 대해서는 차별을 없애고, 비장애인에 대해서는 차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 사회 전체를 성숙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장애인에 관한 법제도와 정부시책은 복지의 관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장애인에 관한 문제는 모두 복지문제화되어 인권문제는 관심 밖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은 장애인의 문제에 있어 인권문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고 법제도와 정부시책을 복지에서 인권의 관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현재 소외계층에 대한 차별금지에 관한 법은 여성에 관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입법례를 보면 차별받는 계층과 영역마다 각각의 법률이 제정되는 추세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제정으로 인하여 다양한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입니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은 장애인은 사회에서 배제되어 사회부조와 시혜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대상에 불과하였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걷어내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똑같이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와 같은 진정한 사회통합의 기초를 마련하여 줄 것입니다. 장애인은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닙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잘못된(wrong) 사람이 아니라 다른(different) 사람들일 뿐입니다.
공감지기
- 이전글 : 더불어 함께 나눔, 즐거움이자 의무입니다
- 다음글 : 왜 별도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인가 – 박종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