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방이 닫힌 뒤, 그 방에 갇히지 않도록
부제 – 텔레그램 n번방을 포함한 사이버성범죄 피해자지원에 더 많은 관심을
1.
상담을 위해 피해자 분들을 만난다. “씩씩하고, 활기찬” 피해자를 자주 만난다. 어색한 수식어인가? 사건에 대응해야겠다 마음먹기까지 보냈을 시간, 법률사무소와 상담소, 수사기관을 전전하며 버텼을 시간, 운이 좋아 수사가 본격 진행되더라도 기소는 될 것인지 과연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얼마나 처벌을 받을지. “괜히 시작했나” 부터, “잊고 지내자” 만감이 교차하는 매 순간이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어떤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를 만나보고 싶다”고도 했다. “혼자” 화면 앞에 앉아 보낼 그 시간이 어떤 것일지 아니까,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의 주범이 잡히면서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피의자 신원, 가상화폐 수익, 피해영상의 가학성 말고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된다. 피해자 지원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2.
불법사이트 접속이 차단되어도, n번방이 닫혀도, 그 방에 갇힌 피해자들이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 영상을 구하려는 시도도 있고, 검색 포털에 관련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이 피해 영상을 노출시키도 한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죄는 동의없는 불법촬영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데도 수사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때 촬영 동의여부를 재차 확인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죄 유죄판결시 “피해 촬영물을 얻는 과정에서 협박 이나 강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을 형의 감경요소로 인정하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피해신고 초기단계에서부터 피해자국선변호사나 서울시 지지동반자 제도 등이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 사건처럼 개인정보가 다수 노출된 경우 피해자의 신원이 불필요하게 노출되거나 신고 과정에서 추가 피해를 받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익명신고를 바라는 경우도 많다. 수사과정에서 위축되지 않고 법원에서 안전한 상태에서 피해경험이 전달될 수 있도록 피해자를 조력하는데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이버성범죄는 유포 범위가 광범위해 그 증거 수집과 삭제 지원이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형사절차 보다 삭제지원만을 원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촬영물도 불법사이트에 공유되었다는 정황이 있어, 향후 이 부분에 대한 지원(증거수집 조력, 삭제비용지원 등)이 다각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심리상담지원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다만 사이버 성범죄 피해자의 특수한 맥락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경우 자칫 피해자의 부주의 혹은 자발적 요소들을 잘못 다뤄 피해자가 상담을 중단하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사회 전 영역에서 사이버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사회에서 몸이 소비되는 방식과 강제로 소비”당하며” 이미지로 떠다니는 나의 몸을 다시 이해하는 일. 피해 경험 “그 이후의 삶”을 섣불리 이해하려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시도를 안 해 본 것인지 모른다. 실태, 예방과 처벌. 거기에 더해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복합적 지지망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3.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상황을 접하며 얻은 단상을 정리하면, 닫힌 n번방에 갇힌 피해자가 없도록. 지금부터는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간을 들여 살펴볼 때라고 생각한다. 그 방에서 한 번도 ‘사람으로 있지 않았던’ 피해자가 거기 갇혀버리지 않도록.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관련 상담 기관에 유사 피해자들의 상담이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법률지원에 많은 변호사들이 팔을 걷어 올렸다. 공감에서도 연대 단체(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 나무여성인권상담소)를 통한 연계상담, 공익소송신청(https://www.kpil.org 팩스_02-3675-7742)을 통한 개별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 여성인권위원회⋅ 아동인권위원회 소속으로 피해자지원 공동변호인단에 참여하고 있다. 뭔가가 당신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면, 우리도 거기에 또 용기 한 스푼을 더하면서 지금을 함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