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그녀의 삶 가까이
1.
며칠 뒤 FTM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신청사건 기일을 앞두고 있다. 신청인은 지난 해 성별정정 불허결정을 들었다. 상심했을 법도 한데 꿋꿋하게 올해 있을 수능 시험을 준비 중이다.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면서 어려운 일이다. 일상을 잘 유지해주는 것에 응원 인사를 전했다. 독서실도, 화장실도 성별이 분리되어 이용하고 있을 터라 일상에서 겪고 있을 불편함을 짐작만 할 뿐이다. 누가 봐도 ‘남학생’인 신청인은 같이 공부하는 남학생 친구도 생겼다고 했다. 후에 시험 응시 과정에서 있을 엄격한 본인확인 절차도 잘 넘어가길, 합격해서 입학 할 때쯤에는 성별정정신청이 허가되어서 ‘일상’이 정말 일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신청인의 성별정정 신청을 불허한 재판부는 유방 제거 수술을 마치고 남성 호르몬투여 중인 그에게 여성으로서의 신체 일부가 남아 있기 때문에 허가할 수 없다고 이유를 짧게 밝혔다.
2.
편집디자인 일을 하는 MTF 트랜스젠더 신청자는 성별정정 불허결정이 있고 나서 일자리를 두 번이나 옮겼다. 꽤 능력있는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여직원’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지만, 신분증의 성별이 달라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아는 남자 사장은 여기 아니면 어디서 일하겠나 싶은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남자 상급자가 대놓고 신청자를 괴롭히기도 했다. 신청자는 직장을 쉴 수 없는 여러 사정이 있다. 노부를 부양해야 하고, 회생절차도 마쳐야 했다. 성별정정신청 신문 기일에서 법원장은 이미 생식능력을 제거한 신청인에게 반대 성별로의 성기 외형 수술을 마치고 다시 신청하면 허가를 해주겠다고 선처하듯 말했다. 성기 외형을 갖추려면 전문성을 확신할 수 없는 위험한 수술을 어디선가 해야 하고, 다른 부작용이 없다는 전제 하에 최소 6개월~1년 이상 일을 쉬어야 한다. 불허 결정을 받고 난 뒤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어렵게 이직했다.
3.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 신청사건 등 사무처리 지침”(이하 지침)은 2006년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정정을 허가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뒤 마련되었다. 법원이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어떠한 요건을 모두 구비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아니었다. 당해 사건 신청인의 구체적 상황을 살펴 볼 때 성전환수술을 모두 마치고 사회적으로도 여성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 등이 인정되는 자이므로 성별정정을 허가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판결을 계기로 만들어진 지침은 그 개별 사례에서 검토됐던 사실관계를 지침에 거의 그대로 담아 매우 엄격한 요건을 열거하고 있다. 원치 않는 의료조치 강요가 대표적이다.
부모동의서를 요구하던 내용이 삭제되기도 하는 등 변화가 이어져오다가 2020년 초에 이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지침이 개정되면서 필수서류는 참고서면, 참고사항이 되었다. 하지만 완화된 내용과 달리 심사절차는 더 주관적이고, 엄격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반대되는 성의 성기 외형 구비, 지정 성별의 생식능력 제거를 ‘반드시’ 요구한다. 개정 내용을 요건 ‘완화’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쐐기 박은 분도 있더라는 얘길 전해 들었다.
4.
연락이 닿는 성별정정 신청사건 의뢰인들에게 용건 없는 전화를 돌렸다. 주제 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몇 달 지나지도 않았다. 잇따른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스스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였다. 왜 전화했는지 서로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조금만 가까이서 트랜스젠더의 삶을 본다면 성별정정 허가로 모든 상황이 종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법원에 발을 들이기까지의 그와 그녀의 삶, 성별정정 허가 이후의 그와 그녀의 삶에 멀리서 말고 가까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요건을 더하고 빼고가 아니라 왜 이런 요건을 다 구비하여야 하는 거지 싶은 의문이 들 법도 한데, 판단을 “내리는” 법원은 너무 멀리 앉아있다. 관련 사건 신문기일 날은 신 앞에 심판“받으러” 가는 무력한 기분이 들(정도로 모든 게 법원에 맡겨져 있)어서, 저절로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하게 된다. 당사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감사 기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왔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신에게 기대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고 싶다. 관련 절차 보완과 요건 완화를 담은 특별법 마련 등으로 간절한 기도를 대신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